검은돈 들고 마구 뛰는 사설 경마
  • 정락인 기자·이유심 인턴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2.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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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10조원대 지하 자금’ 실상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는 얼마 전까지 수원 지역에서 가장 큰 ‘사설 경마센터’가 있었다. 일명 ‘개구리’로 불리는 정창수씨(가명·43)는 지난해 1월 자신의 부모 명의로 된 이 주택에 은밀하게 센터를 차렸다. 정씨는 같은 해 10월까지 9개월간 이곳에서 2백10억원대의 사설 경마 도박판을 벌였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주택이라서 누구도 이곳에 사설 경마센터가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인근 주민들도 의심은 했지만 ‘설마’ 도박장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2월22일 기자가 방문해 보니 철제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대문 앞에는 정씨 앞으로 배달된 각종 세금 고지서가 널브러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사람이 드나든 지 꽤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대문을 두드려보았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정씨는 현재 수배자 신분으로 검찰의 추적을 받고 있다.

정씨는 이곳에 사설 경마센터를 차리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원래 살고 있던 부모를 이사 보낸 후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그리고 한꺼번에 여러 대의 컴퓨터를 들여놓았다. 컴퓨터가 들어온 이후에는 신원 불상의 남자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정씨 집 골목은 차 한 대를 주차하면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무척 비좁았다. 그런데 이 골목에는 늘 5~6대의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된 차종은 고급 외제차인 아우디나 국산 에쿠스 등이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한동안 통행에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인근 미용실 주인은 “우리 미용실 앞에도 차를 세웠기에 차를 빼라고 말했더니 험상궂게 생긴 40대 남자가 나를 보고 눈을 흘겼다. 그때는 얼마나 무섭던지 겁이 났다”라며 짧은 숨을 내쉬었다. 한 번은 골목길을 차지하고 있는 차량 때문에 불편을 겪던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집 안에 있던 남자들이 혼비백산해서 뒷집으로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 그 뒤에는 덩치 큰 남자가 집 안에서 수시로 밖을 주시하는 등 망을 보았다고 한다.

도심 주택가 등으로 침투

올해 1월 검찰 수사관들이 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정씨는 다른 곳으로 도주한 후였다. 사설 경마센터는 수원의 오피스텔, 경기도 오산의 아파트, 서울 강남의 아파트 등에 위치해 있었다. 이처럼 사설 경마는 도심 빌딩, 아파트, 조용한 주택가 등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현행 마사회법에는 ‘마사회가 아닌 자는 경주에 관하여 승마투표와 유사한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주면 불법 ‘사설 경마’가 된다.

사설 경마의 수법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전체 시장의 40~50%를 차지하는 일명 ‘맞대기’이다. 이것은 판돈 금액이 가장 크다. 인터넷보다는 주로 전화를 이용한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탓에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지 않고, 인맥을 통해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맞대기 룰은, 가령 5천만원이 있으면 게임을 벌여 이기는 사람이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마권 구매 대행 사이트’이다. 전체 시장의 30% 정도가 여기에 속한다. 경마 시장을 가장 크게 교란하는 것이 이 수법이다. 마사회와 같은 베팅 판을 사용하고, 100원부터 베팅이 가능하며 상한선이 없다. 돈을 잃어도 20%를 환급해주기 때문에 소액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모바일이나 컴퓨터로 모두 가능해 접근성도 쉽다.

사설 경마업자들은 “도박은 하면 할수록 베팅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그 시발점이 바로 구매 대행 사이트이다. 일반인들은 ‘1만원’부터 시작하다가 ‘10만원’이 되고, ‘100만원’이 된다. 그러다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라고 말한다. 구매 대행 사이트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문자를 보내 마권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 서버는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중국 등 해외에 두고 있다.

세 번째는 고액 베팅과 소액 베팅을 혼합한 ‘프로그램 경마’이다. 일명 ‘추노’ ‘판도라’ ‘알라딘’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맞대기와 마권 구매 대행 사이트의 장점을 모은 것이다. 2010년쯤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급속도로 시장을 잠식해왔다. 그러다 이번 수원지검의 대대적인 수사로 인해 조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사설 경마 피해가 ‘중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피해를 당하고도 몰래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1억원 베팅에 성공했다고 치자, 불법 사이트의 운영자는 환급금을 주지 않으려고 사이트를 폐쇄해버린다. 그러면 이용자는 사이트를 찾을 방법이 없다. 환급금 1억원은 고스란히 날아가버린다. 사이트 운영자는 다른 사이트를 개설해서 운영하면 그만이다. 이럴 경우 환급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는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신고하면 자신도 처벌받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왼쪽)‘추노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설 경마 조직 센터가 있던 경기도 수원의 한 단독주택. (오른쪽)경찰이 사설 경마 조직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우연 인턴기자
수익금, 범죄 조직 운영 자금으로 흘러가

인천 지역에서 작은 건설업체를 운영한다는 박 아무개씨는 “우연찮게 사설 경마를 접하게 되었다. 어느 날 4백배에 당첨되어 돈을 받을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사이트 운영자가 사라졌다. 속 터져서 마신 술이 강을 이룰 정도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설 경마의 규모는, 적게는 9조원에서 많게는 30조원에 달한다. 한국마사회의 총 매출액이 연간 7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마사회 조직이 약 4개가 더 있는 것과 같다. 그만큼 지하 자금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불법 사설 경마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공익 기금에 기여하는 부분도 전혀 없다. 국가적으로 보면 엄청난 재정적 손실이 발생한다. 불법 사설 경마 규모를 연간 10조원으로 추산하면 탈루되는 금액이 1조6천억원에 이른다. 이 돈은 범죄 조직과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사설 경마에 중독된 사람들의 경우 가산 탕진이나 패가망신하는 상황에 이르러 심각한 민생 폐해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사설 경마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이처럼 사설 경마가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고 있지만, 여전히 단속은 어렵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사설 경마가 가능해지면서 경마 조직의 실체 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직의 실체에 접근하려고 해도 대포폰을 사용하거나 도박 자금을 현금으로 전환해,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불법 사설 경마 확산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마사회는 ‘신고 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단순 범죄로 한국마사회법에 의해 처벌하다 보니 단속에 걸려도 벌금을 내는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또, 단속 경찰관들에 대한 인사 가점이나 기관 평가 항목에서 제외되다 보니 수사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경마업계에서는 “계좌 추적만 해도 사설 경마를 막는 데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지금보다 처벌을 현실적으로 강화하고 단속 경찰관들에 대해 인사 가점을 주는 방식이 도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각 지방청에 전문 단속요원을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사설 경마에서 거래한 금액 대비 몇 배의 금액만 벌금으로 부과해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설 경마가 사회 곳곳을 좀먹기 전에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나와야 한다.

 


ⓒ 우연 인턴기자
국내에는 약 7백여 명의 경마 전문가가 있다. 이 중 상위 20명(0.5%) 정도만 돈을 번다고 알려져 있다. 연봉으로 따지면 약 1억~2억원이다. 사설 경마업계에서 ‘전문가’ 수준에 오르려면 밑바닥에서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어야 한다. 그만큼 베팅한 경험도 많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한다.

기자는 어렵게 수소문해 이 분야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최양복씨(가명·44)와 접촉할 수 있었다. 최씨는 사설 경마 시장에서는 일명 ‘최박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2월21일 저녁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최씨는 올해로 17년째 경마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한때는 마사회 경마장에도 다니고, 사설 경마 시장에서 직접 베팅도 했다. 지금은 주로 경마 정보를 팔아서 돈을 번다. 최씨에 따르면, 경마 정보는 ‘060 전화’는 30초에 5백원이다. 한 콜당 4천~5천원인 경우도 있다. “경마 정보 서비스업으로 분류되어 합법적으로 세금을 낸다”고 말한다.

사설 경마업자들에게 경마는 ‘도박’인지, 아니면 ‘사업’인지가 궁금했다. 최씨는 “이건 도박이 아니다. 나한테는 비즈니스이자, 사업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최씨뿐만 아니라 사설 경마에 빠진 사람들 상당수가 ‘도박’이 아닌 ‘직업’으로 여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다른 사행 산업과 마찬가지로 경마는 중독성이 강하다. 한번 사설 경마에 빠져들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최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환급금’과 ‘고액 베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사회의 경주권은 수익금의 약 35%가 세금이다. 내가 1만원을 베팅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은 6천5백원 정도이다. 하지만 사설 경마는 개인이 경주권을 발행하고, 세금도 안 낸다. 1만원을 베팅하면 돈을 잃더라도 20%(2천원)를 돌려준다. 내가 본전을 찾으려고 해도 베팅 상한선(10만원)이 걸림돌이다. 때문에 사설 경마는 원금 보장과 투명성이 없지만, 20% 환급금이 있고 베팅 제한이 없어서 끌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경마 중독’은 아주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도박 중에서 그 끝은 경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마에 중독된다는 것은 ‘인생의 끝’ 즉 패가망신이라고 했다.

최씨는 “사설 경마 해결 방안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면, 경마장에 현금인출기만 없애도 많이 줄어든다. 경마장에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아줌마들만 쫓아내도 불법 경마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현금인출기를 없앨 이유가 없을 것이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설 경마 거물의 ‘화려한 생활’  

사설 경마 시장에서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일명 ‘추노’이다. 2010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추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추노는 사설 프로그램 경마 시장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추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유통한 조직을 적발했다. 규모만 해도 2천억원대로, 지금까지 사정기관에 적발된 것 중 최대이다.

이 조직의 주범은 이동익(가명·46)이다. 지난 1월 수원지검 강력부 수사관들이 이동익이 사는 서울 광진구의 ㅅ아파트에 들이닥쳤다. 이씨는 마침 집에 있었고, 검찰은 그를 긴급 체포했다.

그런데 이동익은 체포된 지 2일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씨를 잘 아는 지인은 “당시 유명 로펌에 1억2천만원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긴급 체포 이후 풀려날 확률은 1천분의 1이라고 하는데, 바로 풀려났다”라며 혀를 찼다.

이동익은 검찰에서 풀려난 후 곧바로 잠적했다. 검찰은 이씨에게 지명수배령을 내리고 행적을 뒤쫓고 있다. 출입국 기록 등을 통해 해외로 나가지 않은 사실은 확인되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동익은 2010년 1월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사설 경마 중간센터 7곳에 프로그램을 유통하는 등 약 8백97억원대의 사설 경마 조직을 이끌었다.

그는 오랜 기간 사설 경마 조직을 운영했지만 수사기관에 적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사기관의 칼끝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원지검이 이씨에게까지 수사망을 좁힐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사설 경마 조직에 대한 척결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동익은 사설 경마로 번 돈으로 호화 생활을 했다. 지인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의 아파트는 유명 연예인이 많이 사는 최고급 아파트이다. 집 안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을 정도로 화려하다고 한다. 승용차는 고급 외제차인 벤츠를 타고 다녔다.

돈이 많다 보니 따르는 후배나 건달들도 많았다. 이씨의 지인은 “동생들을 수백 명 거느리고 있다. ‘암흑세계의 왕’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동익이 ‘내 사람이다’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씀씀이도 컸다. 자기를 따르는 ‘동생’들의 부모 칠순잔치나 결혼식에 다른 사람들이 10만원을 낼 때 이씨는 ‘100만원’을 냈다고 한다.

그러면 이동익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무성하다. 이씨의 머리가 상당히 비상했다는 지인들의 말을 감안하면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또, 돈이 충분한 만큼 신분증 등을 위조해 특급 호텔 등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씨의 지인은 “동익이가 검거되면 1~2년은 징역을 살아야 한다. 여기에다 50억원 정도의 추징금을 내야 하니 잡히는 것보다는 몇 년 도망 다닐 생각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추적하고 있는 만큼 그의 도피 생활도 곧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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