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영상 체험방’ 간판 걸고 버젓이
  • 정락인 기자·이유심 인턴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2.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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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입 취재 서울 강남에 위치한 ‘사설 경마 게임장’

스크린 경마는 2003년쯤부터 우후죽순 도심 깊숙이 파고 들었다. 말 경주를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불법이다. 업주들은 ‘건전하다’고 말하지만, 게임산업진흥법에 의하면 사행성 게임은 ‘게임 등급 분류’조차 받지 못했다.

기자는 스크린 경마장을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2월20일 밤 10시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역 인근으로 나갔다. 그런데 스크린 경마장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속칭 ‘꾼’만 아는 은밀한 곳이 아니었다. 음식점이 밀집한 대로변의 한 상가에서 버젓이 영업 중이었다.

간판에 ‘스크린 경마’라고 내걸지는 않았다. ‘스크린 영상 체험방’이라는 모호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경마·도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스크린 영상 체험이 곧 스크린 경마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건물 아래층 보쌈집에서 회식 중이던 직장인 최 아무개씨(여·32)는 “설마 저런 곳에서 불법 영업을 하겠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자가 찾은 스크린 경마장은 밤 9시에 영업을 시작해 다음 날 새벽 6시면 끝난다. 옆 사람의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컴컴한 실내에는 1개의 대형 스크린, 32개의 작은 스크린이 있었다. 기자가 찾았을 때 남자 8명이 스크린 경마를 하고 있었다.

20대 여성인 기자가 오자 주인은 의아한 듯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어보았다. 일반 손님인 것처럼 보였는지 근처에 현금인출기(ATM)는 어디 있으며, 경마 룰은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업소측에서 주는 카드에 현금 충전을 하면 게임이 시작된다. 1만원당 100포인트이다. 업소에 따라 포인트는 다르다. 1만원당 4백 포인트인 곳도 있다. 베팅에 성공할 경우 포인트가 올라가고, 이를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 짧게는 1분30초에서 길게는 2분이면 한 경기가 끝난다.

돈을 잃는 것은 2분이면 충분했다. 기자는 순서에 관계없이 1위, 2위를 맞춰야 하는 복식 게임에서 애를 먹었다. 30분도 채 안 되어 100포인트를 거의 다 잃었다. 반면 경마 전문가인 R씨는 하룻밤이면 1천만원도 벌 수 있다고 했다. 스크린 경마가 불법이자 사행성 게임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스크린 경마장에 설치된 소형 스크린(위)과 게임장이 들어서 있는 건물(아래). ⓒ 이유심 인턴기자
1대당 1시간에 5만~10만원 벌어

정래철 게임물등급위원회 불법게임물감시팀장은 “통상 스크린 1대당 1시간에 5만원에서 10만원을 베팅한다고 본다. 10시간 영업하면 업주는 대당 50만원에서 100만원을 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찾아간 스크린 경마장의 경우 32대의 스크린이 모두 이용된다고 가정하면 하루 최소 1천6백만원, 최고 3천2백만원의 수익(이용객에게 현금 환전 이전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엄청난 돈이 불법으로 오가지만 한국마사회측은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영업 중인 스크린 경마장 수를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불법 사설 경마 사이트를 운영하는 ㄴ씨는 “최근에는 단속이 워낙 심해 스크린 경마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스크린 경마와 같은 등급 미필 게임물이 지난 한 해에만 총 1백12건 적발되었다.

한편, 경마 게임 내내 스크린 오른쪽 하단에는 도박 중독에 대한 경고와 치료를 안내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도박 중독을 해결할 수 있다’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렇게 겉으로는 도박 중독에 대해 경고하고 있지만, 기자가 밤 11시30분, 스크린 경마장을 나설 때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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