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러운 민달팽이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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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못 구해 헤매는 청춘들의 고민

‘민달팽이 유니온’이라는 대학생들의 모임이 있다. 대다수 달팽이가 등에 집을 이고 있지만 대학생들은 ‘집 없는 달팽이’와 같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단체이다. 지난해 11월29일, 달팽이보다 비루한 이 시대의 청년들이 국회의사당 의정관 105호에서 논의의 장을 만들었다. 청년 주거 토론회 ‘민달팽이의 반란’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리였다. 영상으로 시작된 ‘반란’은 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영상 속에서 대학생들은 ‘시작’ ‘공기’ ‘피로회복제’ 등 집에 대해 다양하게 정의를 내렸다. 그러나 정말 이들에게 집이란 그런 의미를 가진 곳이었을까. 그들에게 집은 더 이상 긍정의 의미를 가진 장소가 아니었다.

‘주거’를 고민하는 대학생들은 또 있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의 이민규 교수 탐사보도팀(이규민·정승환·황반반·황영아)이 작성한 GIS(지리 정보 시스템) 분석 보고서에는 지금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대학생 주거권’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정승환씨(중앙대 신문방송학과)는 “나는 지방(광주광역시) 출신이다. ‘주거’는 조원들이 직접 겪는 문제였다.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주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중앙대 앞의 모습. 임대사업자들이 대학생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만든 유인물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시내 대학 기숙사 수용률 11.8%

이들은 서울시 표준 공시지가를 GIS의 보간법 중 공간 분석의 한 방법인 ‘크리깅(Kriging)’으로 분석해 네 단계로 구분한 지도를 발표했다. 크리깅은 관심 있는 지점에서 특성을 알기 위해 이미 그 값을 알고 있는 주위의 값들의 선형 조합으로 해당 지점의 값을 예측하는 지구통계학적 기법이다. <시사저널>은 이민규 교수 등의 협조를 얻어 이 GIS 분석 보고서 전문을 입수했다. 그리고 이 보고서를 기초로 대학가 주변을 탐문 취재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예상했던 대학가 주변 방값의 비밀을 실증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GIS 분석 보고서의 지도에서 녹색은 상대적으로 지가가 낮은 곳이며, 붉은색은 상대적으로 지가가 높은 곳을 의미한다. 대학 주변의 원은 2백50m 반경을 뜻한다. 빨강·주황·노랑·초록 중 빨강과 주황은 50% 중위 평균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비싼 곳이며, 노랑과 초록은 상대적으로 싼 곳을 나타낸다.

붉은색이 가장 도드라지는 지역은 서초구·강남구·송파구이다. 이곳은 대학과 상관없이 서울에서 원래 지가가 가장 비싼 곳이다. 이와 같은 강남 3구를 빼면 대학가 주변은 어디든 빨간색과 주황색으로 색칠된다.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대와 성북구에 위치한 국민대는 데이터가 없어 푸른색으로 나타났지만, 다른 대학의 경우 모두 서울 평균보다 지가가 비싸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대학 주변의 지가가 비싼 것은 당연하다. 대학이 생기면 상권이 형성되고 임대 수요가 생긴다. 지가가 높으면 건물의 월세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임대료의 합리성이다. 대학 주변 방값의 시세에는 건물의 설비나 노후 정도 등이 크게 작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대학 주변에 있다’는 것만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요즘 서울시에 위치한 대학가 주거비는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학가의 기본적인 방이라는 6~7평 정도의 원룸을 얻으려면 대부분이 전세가 아닌 월세를 내야 하는데, 그 가격이 40만~60만원 선으로 형성되어 있다. 반지하 쪽방이나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고시원 정도가 이보다 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곳이다. 건국대 주변의 ㅇ부동산 관계자는 “은행 이자가 워낙 떨어져서 월세를 많이 받는 게 낫다고 건물주들이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요 근래 건국대 일대에도 건물 신축 붐이 일고 있다”라고 말했다. 건물주들이 받는 40만~60만원의 임대료는 학생들이 숨만 쉬어도 내야 할 고정비인 셈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기숙사를 갈망한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보금자리로 그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서울 시내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턱없이 낮다. ‘대학알리미’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의 2012년 총 재학생 수는 45만4천2백37명이다. 이 중 기숙사에 들어가 있는 대학생은 5만3천6백명에 불과하다. 서울 시내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11.8%이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했다. GIS 작성에 사용된 서울 시내 주요 대학 중 수용률이 가장 높은 곳은 성균관대로 21.6%였다. 20%를 넘는 곳은 2012년을 기준으로 성균관대·서울대·경희대 세 곳이었다. 반면 한 자릿수 수용률을 보인 곳은 많다. 조사 대상 17개 대학 중 11곳은 수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청춘들은 ‘방’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야 한다. 전세부터 월세, 원룸부터 반지하방까지, 그들은 ‘을’이라는 명패를 달고 ‘갑’인 집주인을 만난다. 중앙대 학생들은 GIS 지도에 나타나는 대학 주변의 빨간 점들의 원인을 찾기 위해 좀 더 세밀하게 분석했다. 대학 주변 2백50m 내의 평균 지가를 도출한 뒤 주변 지가와 비교해보았다. 비교 대상은 ‘대학 주변 1천5백m 지가’ ‘대학이 속한 동의 지가’ ‘대학이 속한 구의 지가’ ‘서울 평균 지가’ 등이다.

세종대의 경우를 보자. 세종대 주변 2백50m 이내 지역의 지가는 주변의 다른 지역 지가보다 비쌌다. 1천5백m 이내와 비교하면 26.3%, 세종대가 속한 서울시 광진구 군자동과 비교하면 29.2%가 높았다. 숭실대도 마찬가지다. 주변 2백50m 이내 지역의 지가는 1천5백m 주변과 비교해 12.1%, 상도동보다는 15.9%가 높았다. 지도에서도 재개발의 여파로 지가가 높은 주변 지역에 비해 붉은색을 띠고 있다.

대학교 주변의 토지는 대부분 지가가 높아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학 주변 지가, 기숙사 수용률에 ‘반비례’

대학 주변의 지가가 높은 것은 당연한 상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흥미로운 대목은 지가 상승과 기숙사 수용률과의 관계이다. 앞서 살펴본 세종대의 경우, 기숙사 수용률은 1.4%에 불과해 조사 대상인 서울 소재 17개 대학 중 가장 낮았다. 숭실대의 기숙사 수용률 역시 9.7%로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학생이 인근에서 방을 구해야 하는 곳이다.

부동산 가격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서울의 대표적 대학가인 신촌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학가 인근의 수요가 예전에 비해 많다. 과거보다 회전 속도가 느려졌다. 졸업생이 나가고 신입생이 들어오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 취업난과 높은 방값 때문인지 졸업생이 대학 근처를 떠나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느려졌다”고 말했다. 수요라는 명확한 변수 외에 기숙사 수용률도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중앙대 학생들은 대학 주변 2백50m 이내 지역의 평균 지가가 1천5백m 이내의 지역과 비교해 얼마나 비싼지 혹은 얼마나 싼지를 비율로 나타낸 뒤 그 값을 기숙사 수용률과 연관 지어 선형 예측 추세선을 만들었다. 마케터들이 판매량 예측 등에 주로 사용하는 간단한 함수이다.

가로 축은 각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이며, 세로 축은 대학 반경 1천5백m 대비 대학 주변 2백50m 이내 지역의 평균 지가이다. 가운데 추세선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음(-)의 기울기를 가지고 있다. 즉, 기숙사 수용률이 높을수록 대학 주변 2백50m 이내 평균 지가는 낮고, 반대로 기숙사 수용률이 낮을수록 대학 주변 2백50m 이내 평균 지가는 높다는 뜻이다. 기숙사 수용률과 대학 주변 2백50m 이내 평균 지가가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반비례 관계는 비교 대상을 확대해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대학이 속한 동 지역, 구 지역, 서울시 평균 지가와 비교해도 모든 추세선은 음의 기울기를 보였다. 지가가 임대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숙사 수용률과 임대료 역시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학생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자료와 실제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처럼 기숙사가 늘어난다고 해서 대학 주변 임대료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실제 대학가 주변을 탐문 취재한 결과,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곳도 있었지만, 무덤덤한 곳도 있었다.

대학로에 위치한 성균관대 서울캠퍼스는 조사 대상 대학 중 기숙사 수용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현재 성균관대 서울캠퍼스는 기숙사에 학생 1천19명을 수용해 21.6%의 수용률을 기록하고 있다. 기숙사 수용률이 높아지면서 주변 임대료는 영향을 받고 있다. 성균관대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공통적으로 “방을 보러 다니는 입학생들이 예전에 비해 줄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주변을 찾는 수요가 줄어들면서 시설에 비해 과도한 월세를 책정했던 ‘배짱 자취방’들이 먼저 타격을 받고 임대료를 낮추는 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새로운 기숙사를 개장한 건국대는 성균관대와 조금 다르다. 1만6천여 명의 재학생 중 3천70명을 수용해 19%의 수용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방을 구해보면 건국대 주변의 가격에는 영향이 없다. 건국대 주변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기숙사를 신축했지만 월세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 7호선이 지나는 곳이라 청담동·학동·논현동 등지에 직장이 있는 회사원들의 수요가 많다. 오히려 집주인들의 신축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조금 하락한 측면이 있다. 기숙사 때문에 떨어진 영향은 10% 정도 될까 말까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변수가 작동하는 부동산 시장이지만 기숙사 수용률을 물고 넘어지는 이번 보고서는 적지 않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민규 교수는 “경험으로는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변수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데이터이다. 학생들의 보고서는 GIS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은 자료로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본다.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픈 계층이고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계층인데, 조명을 잘 받지 못한다. 등록금 문제만큼 중요할 수 있는 것이 주거 문제인데, 이를 종합적으로 풀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외면하는 동안 월세는 치솟았고 “숨만 쉬어도 50만~60만원”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서울YMCA는 2011년 10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수도권에 소재하는 대학에 다니는 비수도권 출신 대학생 5백26명(남 2백11명, 여 3백15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주거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현실은 심각했다. 현행 주택법 5조 2항에 따르면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1인 가구의 경우 14㎡(4.2평)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YMCA의 조사에서는 대학생의 절반 이상(52%)이 법으로 정한 기준보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특히 ‘고시원에 살고 있다’고 응답한 86명 중 83명의 실태는 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고시원과 하숙을 포함해 21명은 5㎡(1.5평) 이하의 면적에서 생활한다고 답했다. 서울YMCA는 “대학생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면 교육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절반 이상 최소 주거 기준 못 미쳐”

주거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는 곪은 곳을 치료해줄 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 시행하는 대학생 전세 임대 지원 사업도 대안은 되지 못한다. 국토해양부는 2009년 9월 ‘보금자리주택업무 지침’을 개정해 대학생을 위한 주거 지원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12·7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9천명의 대학생에게 최대 7천만원까지(광역시와 도 지역은 4천만~5천만원) 전세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입주 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이 자신이 거주할 주택을 물색해 신청하면 LH가 주택 소유자와 전세 계약을 맺은 뒤 학생에게 재임대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공급 물량이 워낙 부족해 ‘1순위’인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의 대학생, 한 부모 가정 가구의 대학생,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대학생 등이 선정되고 나면 남는 자리가 거의 없다. “LH공사의 부채는 1백30조6천억원이며, 금융성 부채가 90조원에 달하고 있어, 대학생 주거 대책에 전력을 기울이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장경석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는 지적처럼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내 한 몸 누일 안정적인 방 한 칸을 갖는 것,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청년들에 대한 고통 치유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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