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대망론 함정에 빠져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3.12 10: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철수, ‘악수’ 평가 속 4월 재·보선 출마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변했다는 말이 많다. 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제야 진짜 정치인이 됐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고, “정치의 때가 묻기 시작했다”는 상반된 의미로 풀이될 수도 있다. 아무튼 약 3개월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은 안 전 교수가 지난해 대선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이른바 ‘안철수 세력’도 내부적으로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 안 전 교수가 지난해 대선 때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변신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안 전 교수에게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대다수 정치권 인사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안철수의 위기론’에 좀 더 방점을 찍는다. “그렇게 조급해할 이유가 없는데, 왜 서두르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아직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전 교수가 오는 4월24일 있을 서울 노원 병 재·보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한 데 따른 반응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안 전 교수 주변 측근들 사이에서도 4월보다는 10월 재·보선 쪽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 사실이다. 안 전 교수의 대선 캠프에서 자문위원을 맡았던 한 인사는 기자에게 “우리 쪽 의견은 서둘러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은 후 “본인이 일정을 그렇게 정했으니까 그대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우려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안 전 교수의 정계 복귀를 놓고 시기와 방식 모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4월 재·보선 출마는 사실상 ‘조기 등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정계 복귀는 10월쯤이 무난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을께에는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전열을 정비 중인 민주당에 대한 평가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시기다. 기존 여야 정치권이 새롭게 움직이는 상황을 지켜본 뒤 ‘새 정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대선 때 안 전 교수 지지를 선언했던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준비를 더 하고 나오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민주당의 새 지도부는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이런 평가들이 나오는 시점에 안 전 교수가 ‘나는 이런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나올 것으로 보았다.”

안철수 전 교수의 측근 ‘변호사 4인방’. 왼쪽부터 강인철·조광희 변호사, 송호창 의원, 금태섭 변호사. ⓒ 시사저널 임준선
내부 권력 지형 변화…‘법조계 측근’ 부각

주목되는 부분은 안 전 교수의 결단이 어느 때보다 확고해 보인다는 점이다. 안 전 교수측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의 전언이다. “주변에서도 처음에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전 교수 특유의 승부 근성이 작용했다. 결단을 했을 때는 정면 돌파를 서슴지 않는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안 전 교수 자신은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재·보선 참여는 곧 출마라고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안 전 교수의 정계 복귀 과정에서 그를 둘러싼 내부 지형에 변화의 조짐도 일고 있다.  안 전 교수 캠프에서 활동한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정치권 출신 인사들은 “서두르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정치권 밖의 인사들은 “이번에 나서자”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안 전 교수가 출마 쪽을 선택하면서 정치권 인사보다는 외부 사람들에게 힘이 더 실리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실제로 안 전 교수의 정계 복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가장 먼저 시선이 쏠린 곳은 금태섭·조광희·강인철 변호사 등 정치권 바깥의 이른바 법조 멤버들이다. 현재 안 전 교수의 공보 역할을 하고 있는 송호창 무소속 의원도 오랫동안 민변에서 활동한 변호사로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주로 민주당 출신인 정치인과 선거 전문가들은 대부분 뒤로 물러난 상태다. 캠프에서 팀장을 맡았던 한 인사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재·보선은) 변호사 그룹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변인을 맡아 안 전 교수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한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도 “새 학기가 시작돼 학교(한림국제대학원)로 돌아왔다. (재·보선은) 정치를 할 분들을 중심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컨설턴트로서 각종 선거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던 김윤재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이후 공식적인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고 했다.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아 후보 단일화 협상을 주도했던 박선숙 전 의원도 현재로서는 합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금 더 쉬고 싶다. 당분간 쉴 계획이다”고 밝혔다. 대선 이후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건강은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많이 좋아졌다”라고 답했다. 건강 문제와 상관없이 정치권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안 전 교수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단일화 프레임에 갇힌 데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서 당시 단일화에 앞장선 정치권 인사들과는 당분간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해석이다.

안철수 전 교수가 지난해 10월7일 선거 캠프에 합류한 박선숙·김성식 전 의원과 손을 잡고 있다. ⓒ 안철수 제공
지난 대선 때처럼 했다가는 또 실패

반대로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안 전 교수를 멀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는 안 전 교수 캠프에서 일하면서 쌓인 불만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당시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안 전 교수의 독특한 리더십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야권의 한 인사는 “안 전 교수의 캐릭터가 정치권에 오래 있었던 사람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외부에서 투입된 안 전 교수의 측근들과 의견 대립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캠프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전반적으로 그런 기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선거를 많이 치러본 사람들은 답답했을 것이다. 일을 같이 하면서 서로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박선숙 전 의원의 경우도 독박을 쓴 측면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박 전 의원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는 했지만 이는 안 전 교수를 위한 것이었다. 역할을 맡겼으면 역량에 맞게 권한도 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통제하기 시작하면 일을 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정치와 선거를 잘 아는 인사들이 안 전 교수 곁을 떠난 상황에서 그가 과연 유력 대권 주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겠느냐이다. 안 전 교수의 정치 행보에 우려를 보이고 있는 캠프 출신 인사들은 “이번에도 지난 대선 때와 똑같이 하면 힘들 것이다. 재·보선은 어떻게 해서 당선될 수도 있겠지만, 더 큰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알을 깨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한 인사는 “대선 과정을 거치고 난 후 많이 느꼈다고 하는데 지금 이야기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 ‘글쎄’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안 전 교수 쪽으로 합류할지 여부에 대해 “대선 때의 방식대로 (캠프가) 운영된다면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별로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안 전 교수의 궁극적인 로드맵은 2017년 대선에 맞춰져 있다. 4월 재·보선에서 승리해 ‘금배지’를 다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유력 대권 주자로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야권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놓을 필요가 있다. 안 전 교수의 이번 선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야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안 전 교수는 시대적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야권의 정통성은 외면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야권의 지도자로 자리 잡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대선 캠프에서 세 명의 공동선대본부장 중 한 명이었던 김성식 전 의원의 역할과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지난 대선 때는 박선숙 전 의원에게 힘이 실리면서 그가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뒤로 물러난 상황이라 정치 경험이 풍부한 그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전 의원은 안 전 교수의 부산고·서울대 3년 선배이며, 안 전 교수와 연대설이 나도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경기도지사로 있을 때 정무부지사로 일했다. 김 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 전 교수의 재·보선 출마와 관련해 “캠프를 꾸려서 조직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신의 부산 영도 출마설에 대해 “안 전 교수가 직접 출마했으니까 (우리들도)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히며 우회적으로 출마 가능성을 차단했다.

안철수의 조급증에 문재인 반사 이익

안 전 교수가 이번 정계 복귀를 통해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나선 것 또한 민주당 출신들이 뒤로 물러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 전 교수 쪽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정부·여당은 물론 제1 야당인 민주당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민주당 내 주류인 친노(친노무현) 진영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분위기다. 안 전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친노 진영의 핵심인 문재인 민주당 의원과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놓고 맞섰다. 양 진영의 내부 사정에 모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대선 때 단일화 논의를 하고 나서 캠프로 돌아간 안 전 교수가 문 의원을 격렬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평소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같이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안 전 교수의 이러한 ‘강경 노선’이 친노 진영 입장에서 ‘나쁠 것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내 비주류 진영의 한 수도권 인사는 “시기적으로 정계 개편이 일어나기에는 이르다. 총선까지 3년이나 남았다. 안철수 신당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도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면 일부 동요가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단합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안 전 교수가 정치 세력화에 나서면 결국 민주당 내 주류인 친노 진영이 반사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주로 민주당을 상대로 컨설팅을 해온 한 정치 전문가도 같은 예상을 했다. “민주당 내 비노 진영이 안 전 교수와 가깝다고 본다면 당내에서 친노 진영이 상대적으로 존재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현재 야권의 권력 지형상 안 전 교수가 부각되면 될수록 민주당 쪽 파트너는 문 의원이 될 공산이 크다. 안 전 교수측 의도와 무관하게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의 중심에 문 의원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이는 지난 대선 때의 형세가 연장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잇따른 선거 패배 이후 돌파구를 찾지 못해 갑갑한 상태인 친노 입장에서 ‘안철수 대 문재인’ 구도가 복원되는 것은 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4월 재·보선 출마를 결정하고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을 두고 “안 전 교수의 정치력에 의문이 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안철수 대망론’이 점차 ‘안철수 위기론’으로 옮아가는 분위기다. 


‘안철수 신당’ 창당 시나리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은 지난 대선 전부터 제기됐다. 기존 정당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안 전 교수이지만 ‘무소속 대통령’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특히 민주당 후보로 나선 문재인 의원과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당이라는 정치 세력의 뒷받침 없이 대권 도전에 나서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느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그때는 창당 가능성 정도만 거론됐지 실제 창당에 돌입할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 안 전 교수의 정책 개발을 도왔던 한 인사는 기자에게 “창당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불명확하다. 안 전 교수가 창당을 할 능력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단순히 민주당의 공백을 메우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창당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선 당일 미국행에 올라 두문불출하던 안 전 교수가 4월 재·보선 서울 노원 병 출마를 선언하면서 신당 창당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 전 교수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 인사는 “민주당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신당을 만들어 정치 세력화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안 전 교수와 측근들 사이에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예상되는 창당 로드맵은 4월 재·보선을 계기로 삼아 창당 발기인을 모으고, 10월 재·보선에서 창당준비위를 띄우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내년 초에 창당 깃발을 올리는 수순이다. 현재 안 전 교수 쪽에서 보이는 발 빠른 행보를 감안한다면 그 시기가 당겨질 수도 있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4월 재·보선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둘 경우 창당 작업에 필요한 큰 동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