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봄날은 오고 언젠가 갈 것이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3.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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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만난 사람│등단 50주년 맞은 소설가 최인호씨

최인호 작가가 신작 에세이집 <최인호의 인생>(여백 펴냄)을 내면서 기자에게 엽서를 보냈다. 만나서 인사도 나누고 그간에 어떻게 지냈는지 환담도 나누고 싶었는데 ‘가톨릭 피정(避靜)’ 중이라 그럴 수 없다고 엽서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올해로 문단에 데뷔한 지 50년을 맞은 소회도 전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즐거운 잔치의 모임’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책은 그가 한동안 무얼 하며 지냈는지 알려주는 내용이다. 책을 열자 “그동안 나는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지금껏 나는 몸이 건강하여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게 병상에 누웠던 적은 있어도 병에 걸려 입원 생활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 병원은 나와 상관없는 별도의 공간이며 운이 나쁜 사람들이나 가는 격리된 수용소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5년째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금언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 요즈음이다”라고 그간의 사정을 압축해 설명했다.

ⓒ 연합뉴스
작가는 암 선고 이후 깊은 좌절에 빠졌다. 이 책은 그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담담히 담아낸 일기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다.

“2008년 여름, 나는 드디어 ‘내 차례’를 맞아 암이라는 병을 선고받았다.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가톨릭 신자로서 절망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기도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 의식을 치렀다. 나는 이 할례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지었다. 아직도 출구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의 피정 기간 동안 느꼈던 기쁨을 많은 분께 전하려고 한다.”

일상에 짓눌리고 세상의 명성에 도취되었던 지난 시간을 뒤로한 그의 새로운 삶은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전에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으며 꽃을 발견하고 계절을 느끼고 아낙의 순수함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에 빚을 지고 있으며, 자신의 아픔으로 인해 누군가의 건강이 회복되리라는 세계의 질서와 이치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책의 맨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썼다.

‘나는 비틀거리며 봄빛이 가득한 언덕길을 올라갔다. 어쨌든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에. 어느 날 봄날은 오고, 그리고 봄날은 언젠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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