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병과 더불어 살면서도 늘 즐겁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3.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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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아카데미아 운영하는 이근후·이동원 부부

꽃샘추위를 몰고 온 바람이 북한산을 휘감는 3월 중순. 북한산 자락에 둥지를 튼 가족아카데미아(서울 신영동 소재) 건물은 훈훈했다.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려 이곳을 운영하는 이근후(78·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이동원(76·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부부를 찾았다.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 법’을 듣기 위해서다.

볕이 드는 쪽으로 큰 창을 낸 가족아카데미아 건물 3층에 이근후 대표의 사무실이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평생을 살아온 때문인지 기자가 찾았을 때 편하게 상담해주는 표정으로 맞았다. 그는 최근 저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내면서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철들지 않는 소년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의 위기를 몇 차례 넘기고 일곱 가지 병과 더불어 살면서도 일상을 즐겁게 보낸다. 젊은 사람도 이런저런 이유로 살기 힘들다고 툴툴대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그는 아내 이동원 대표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노후의 삶에 대해 풀어놓았다.

“옛날에는 쉰 살 넘어가면 노인 취급했다.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농경 사회에서 당시는 환갑 지나면 완전 노인이고, 그 이상은 상노인이었다. 그 시절 50, 60이라는 나이는 장수를 의미하는 숫자였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수명을 연장시켜놓으니까 문제가 생겼다. 수명만 연장시키고 정년은 예전 그대로 끊어버리니까 얼마나 당황하겠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건강하게 일을 하면서 100세까지 살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농경 사회는 경쟁 사회가 아니었지만 산업 사회는 경쟁 사회인 것이 문제다. 노인 세대의 불안이 갈수록 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이라는 위치가 더는 인생의 끝자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강한 노인이 넘쳐나니 그들의 역할이 새롭게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노인이 되었지만 상노인 대접을 받기도 힘든 산업 사회에서 뭔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그래서 가족아카데미아에서는 10년 가까이 ‘조부모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교육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반응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주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고 전했다.

“지금은 할아버지 역할을 해줄 것이 없다. 우선 지식에서 뒤떨어지는 옛날 지혜라고, 가지고 있어도 아이가 듣겠나. 그러나 생각을 해보라. 우리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웃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밀려난다고 섭섭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으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틈새에서 지혜롭게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 옛날에는 늙었다고 모시고 그랬지만 지금은 모시는 문화가 없잖은가. 내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부모의 역할’ 잘하게 돕는 사업 펼쳐

그는 조부모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스페셜리스트(전문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손자를 돌보는 경우가 그렇다. 손자를 잘 돌보기 위한 교육을 받고, 당당하게 손자를 돌보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노인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었다. 손자를 돌보지 않으려면 ‘내가 영어 가르쳐줄게’ 그러면 됐다. 그러면 안 맡겼다. 발음이 시원찮으니까. 아이 맡겼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그랬지. 그런데 요즘에는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맡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다시 하는 노인이 있더라. 꼭 그 이유가 아니라 해도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 노인을 많이 봤다.”

이근후 대표 또한 몇 해 전 고려사이버대학교에서 평생 전공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공부에 도전했다. 그는 사이버대학에서 공부한 것이 일생 동안 해온 공부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고, 내처 장학금을 받아 돈 한 푼 안 들이고 졸업했다. 졸업할 때 미안해서 다른 친구들 장학금 주라고 500만원을 돌려준 사실도 털어놓았다.

“학창 시절에는 의무감으로 공부했지만 나이가 들어 공부를 하니 순수하게 즐기면서, 놀듯이, 오로지 공부만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경쟁을 하거나 누구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기에 배움의 뿌듯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차를 내온 이동원 대표는 가족아카데미아를 운영한 보람에 대해 ‘일의 재미’를 앞세웠다. 그는 “사회가 내 능력을 찾아줘서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해 사회에 돌려주고 떠나자고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일을 하다 보니까 교수로 있을 때보다 이 일이 더 재미있는 게 아닌가. 오히려 더 혜택을 받는 셈이 되어버렸다. 남편도 나도 대학에서 강의할 때보다 더 바빠졌다”고 말했다.

이동원 대표는 남편을 살짝 흘겨보며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을 타박했다. 그러자 이근후 대표는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하는 게 아니라 일요일에 여기 와서 쉬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동원 대표는 지지 않고 “쉬지 않잖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잖아”라고 쏘아붙였다. 이 말에 또 이근후 대표는 “각자 쉬는 방법이 다른 거지. 그걸 자기 기준으로 말하면 쉬는 게 아니지”라고 응수했다.

부부 싸움(?)을 말리려 이동원 대표에게 노인의 역할 찾기 사업이 시급하다며 노인 교육 사업을 벌이게 된 배경을 물었다. “나이 들어서 역할이 없으면, 빨리 늙고 상실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도로 빚졌다고 말한 것이다. 역할이 주어지면 노인이 되어 나타나는 증상, 예를 들어 주위에 섭섭하다고 말하는 등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다. 조부모도 교육을 받아야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사업을 벌였다.”

줏대와 의지는 모든 세대가 가져야 할 태도

이근후 대표는 생활 전반에 걸쳐 지식뿐 아니라 ‘스킬(기량)’을 높여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부모 역할을 하는 데 더는 뒷방 노인네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화제를 바꿔 그의 책에서 ‘노후 자금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축복일 수 있다’는 대목을 읽었다고 하자 이렇게 설명했다.

“적고 많고는 상대적인 것이라 그렇게 말한 것이다. 사실 노후 자금이 없으면 불행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을 느끼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줏대가 없어서 그렇다. 왜 다른 사람이 기준이 되어야 하나.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물만 마시고도 살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고기도 부럽고 딴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이 다 부러운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가치 있는 인생이다. 내게 가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치가 없을 수 있다. 골프 치고 맛있는 것 많이 먹는 것보다 올레길 한 번 더 걷는 것이 행복하다면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취약하면 보는 것마다 부러운 것이다. 거기서 갈등이 생긴다. 격차가 있다고 하지만 격차는 외관상의 격차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이 불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그는 한때 봉사 활동차 네팔을 오가며 가진 것이 없어도 당당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도 가져야 안심이 되는 법인데, 네팔인은 그러지 않더라는 것이다. 자기 주관을 확고히 가지면 필요 없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는 실패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실패라고 말하는 그 정도의 삶을, 나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는 산을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히말라야 정상을 정복한 사람이 히말라야 7000m까지 갔다 온 사람에게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히말라야 7000m까지 간 것도 칭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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