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눈물’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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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김재철, 감독: 이명박 정권

3년간 MBC 경영을 맡았던 김재철 사장이 물러났다. 3월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김 사장의 해임을 의결했다. 이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재철 체제’가 종지부를 찍었다. 그간 안팎의 숱한 퇴진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다.

이미 3차례나 상정된 방문진의 해임 건의는 번번이 부결된 바 있었다. 그만큼 김재철 사장의 자리는 견고했고, 권력은 그를 보호했다. 하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다시 확인됐다. 김 사장은 ‘MBC 역사상 최초로 방문진이 해임한 사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퇴장했다.

3월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임시이사회를 열어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가결했다. ⓒ 연합뉴스
김 사장은 MBC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불명예스러운 족적은 여전히 MBC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당장 겉으로 드러난 지표만 봐도 그렇다. 지상파 방송국의 얼굴 격인 메인 뉴스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방송 3사 중 최하위다. 좀처럼 두 자릿수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KBS와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뉴스데스크> 시간대를 오후 9시에서 8시로 바꿨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예능 및 드라마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때문에 프로그램 신설 및 폐지의 주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짧다.

MBC는 최근 단행한 봄 개편에서 대대적으로 편성을 뒤흔들었다. 위상 추락에 따른 위기감이 잦은 프로그램 손질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예능 및 드라마 비중을 상대적으로 늘렸다. 어떻게든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다. 평일 메인 뉴스를 8시에 전진 배치하고 그 앞뒤로 드라마를 편성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럼에도 MBC의 영향력은 좀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이 있다. 기존 MBC가 가졌던 긍정적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점이다.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언론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자.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20% 안팎의 수치로 3~4위권에 머물렀던 MBC는 지난 2009년 31.3%라는 높은 수치로 다시 1위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당시 “KBS가 공영방송이 아닌 관영 방송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MBC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분석이 나왔다. 2010년만 해도 MBC는 1위(28.4%)를 수성하며 승승장구했다.

신뢰도·메인 뉴스 추락 거듭

하지만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1년 3위(24.9%), 2012년 4위(17.2%)로 지난 2년 동안 MBC의 신뢰도는 추락을 거듭했다.

외환(外患)만큼이나 내우(內憂)도 컸다. 김재철 사장이 재임하는 동안 두 차례의 파업이 있었다. 특히 2012년 터진 두 번째 파업은 170일간 지속됐다.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다. 파업이 끝난 후 김 사장은 대대적인 숙청으로 대응했다. 200여 명에 달하는 사원이 해직·정직·교육 등 징계를 받았다. 그 사이 MBC 구성원과 사측 사이에는 소송전이 오갔다. 극렬한 노사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재철 체제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김재철 체제의 MBC는 왜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됐을까. 멀쩡하던 공영방송이 불과 몇 년 만에 급격히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MBC가 걸어온 3년간의 발자취를 역추적했다. 그 결과,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첫째는 경영자의 독단적 리더십이다. 둘째는 그 배경에 있는 정권의 ‘방송 장악’ 의도다. 전자가 표면적인 요인이라면, 후자는 좀 더 심층적이며 근원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김재철 사장은 재임 기간 내내 독단적인 리더십을 보였다. 그의 행태를 겨우 용인하던 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조차 끝내 돌아서게 만들 정도였다. 특유의 독불장군식 태도가 경영자로서의 명줄마저 단축시킨 셈이다. 여당 추천의 김용철 방문진 이사장은 “(김재철 사장의) 경영상 문제가 많았다. 앞으로 (MBC는) 사내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사장의 독선적인 모습은 2010년 3월 취임 직후부터 나타났다. 당시는 김우룡 전 이사장 체제의 방문진이 친정부 성향 인사를 보도본부장에 앉히려는 시도가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이때 김 사장은 해당 인사를 무임소이사(임원이면서도 특정 부서의 장이 아닌 이사)에 임명하겠다고 약속하며 노조의 반발을 잠재웠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후 그 인사는 부사장에 전격 선임됐다. 노조는 이를 인사 전횡이라 규정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가뜩이나 ‘낙하산 사장’이라는 의혹을 받던 김 사장의 공정 방송 의지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독단적 리더십이 부른 무리수

2010년 4월 시작된 파업은 35일간 지속됐다. 노조는 이후 “공정 방송 못 지키면 한강에 매달아버려라”라는 김 사장의 공언이 있은 후 파업을 철회한다. 하지만 김 사장의 약속과 달리 이후 MBC에서는 공정 방송에 어긋나는 일들이 이어졌다. 정권에 민감한 이슈 등은 보도가 축소되거나 아예 누락됐다. ‘반값 등록금 이슈 소극적 보도’ ‘4개 부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보도 누락’ ‘KBS 도청 의혹 축소’ 등이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질 노사 간 대화 창구가 거의 봉쇄됐다는 점이다. 매달 열려야 할 공정방송협의회(공방협)와 노사협의회 등이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2010년 5월부터 12월까지 각각 3회, 1회씩만 열렸을 뿐이다. 더구나 여기에 김 사장은 매번 불참했다.

사측은 2011년 1월 노사 간 단체협약(단협)에 대해 일방 해지를 통보하기에 이른다. 단협이 없다는 것은 곧 양자가 대화할 창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은 노조가 단협 체결을 위한 파업을 결의할 정도로 험악하게 흘러갔으나 9월에 이르러 양자 합의에 의해 새로운 단협이 체결됐다.

노조는 기존의 ‘국장 책임제’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일부 ‘본부장 책임제’를 수용했다. 경영자의 입김이 닿는 고위 직급의 통제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것이다. 대신 사측은 공방협을 통한 MBC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공방협은 끝내 활성화되지 않았다. 2011년 11월 10·26 재보선과 관련해 공방협이 열린 것이 전부였다. 당시 김 사장은 편파 보도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편파 보도는 이어졌다. 한·미 FTA, BBK 의혹, 김문수 경기도지사 119 전화 등에 대한 보도가 누락됐다. 노조는 해당 사안을 두고 공방협을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회의 일정을 지연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계속 묵살했다. 김 사장의 이런 행태는 MBC 기자회의 제작 거부로 이어졌다. 이는 곧 2012년 1월30일부터 장장 170일가량 이어진 파업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김재철 사장은 공정 방송을 공언한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MBC 구성원들이 대화를 요구했을 때는 불성실한 자세로 임하며 사실상 묵살했다. 불만이 폭발한 노동조합측이 파업을 감행하자 이를 징계로 맞받아쳤다.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김 사장 특유의 독단적 리더십이 있었다는 게 방송가의 분석이다.

김재철 사장이 공정 방송을 포기하면서 집착한 것이 시청률이다. 김 사장이 악화된 여론과 내부 불만을 잠재울 유일한 카드로 내세운 게 시청률이었던 것이다.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은 가차 없이 폐지 수순을 밟아야 했다. 박재훈 MBC노동조합 홍보국장은 김 사장에 대해 “공영방송의 가치, 보도의 중립성·공정성을 희생하더라도 자기가 돈을 많이 벌어다주면 구성원들에게 사랑받는 사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듯하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그 과정에서도 독선적인 모습을 보였다. 프로그램 폐지의 당사자들과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밀어붙였다. 이는 일선 제작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8년간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폐지된 ‘<놀러와>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MBC 예능국의 간판인 신정수 예능1 책임PD는 “사장의 독단에 의해 프로그램들이 너무나 쉽게 없어졌다.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정말 <놀러와> 같은 경우는 너무했다. 최소한 (마지막) 인사라도 하게 해줬어야지. 시청자나 출연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권의 ‘MBC 길들이기’ 다리 역할

김재철 사장은 왜 그렇게 무리수를 뒀을까. 이에 대해 김 사장이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 교두보 역할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간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MBC 안팎에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이미 KBS 및 YTN에 친정부 인사가 들어서면서 방송 장악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8년의 ‘광우병 파동’이 한몫했다. <PD수첩> 보도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소고기 협상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졌던 탓이다.

이 시기 청와대에 출입했던 MBC 보도국 기자는 “당시 정부 당국자 및 내부 참모들은 (광우병 촛불 시위를) <PD수첩>이 선동했다는 논리를 만들어갔다. ‘MBC 때문에 정권 초반 1년을 날렸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정서였다”고 회고했다. 이명박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MBC를 장악해 기존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도록 할 것이라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던 이유다.

전례에 따라 ‘엄기영 사장 중도 해임-친정권 낙하산 사장 투입-조직 장악-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 통제’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이는 현실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김재철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PD수첩> 통제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시사교양국 소속의 한 PD는 “시사교양국의 경우 <PD수첩>을 없애는 게 목표라고 보일 정도였다. 김 사장은 그 부분에 집중해 자기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내려보냈다. 이들에 의해 아이템 검열이 시작됐다.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노동 이슈 등이 주 대상이었다. 연성화 내지는 황색 저널리즘 쪽으로 아이템을 유도하면서 시청률이나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 2월에는 <PD수첩>이 소속된 시사교양국이 편성본부로 이관됐다. 3월에는 전체 11명의 PD 중 6명을 강제 전보한다. 당시 시사교양국 소속 50여 명의 PD 가운데 26명이 순환 전보될 정도로 경영진의 조치는 이례적이었다. 뉴스를 제작하는 보도국도 마찬가지였다. 보도국 소속의 한 기자는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2010년 이후 뉴스 아이템 간섭이 본격화됐다. 정권에 불리한 기사나 진보 세력과 관련한 기사 아이템 등에 대해 특히 심했다”고 밝혔다.

2012년 파업 사태를 거치며, 사측은 계약직 인력을 대거 채용한다. 보도국의 주축이 대거 징계 조치를 받은 뒤 그 자리를 이들 계약직이 메웠다.

특히 정치부의 경우 20여 명 중 2~3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새로운 인력으로 바꿨다. 18대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다. 이에 대해 김효엽 MBC 기자협의회장은 “계약직 인력 개개인의 능력 문제는 아니다. 과거 기자들이 데스크의 취재 지시에 복종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다만 새로 채용된 계약직 인력은 불합리한 취재 지시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훨씬 통제하기 쉬운 사람들로 보도국을 채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송 장악’이라는 달콤한 유혹

지난 18대 대선 당시 MBC는 각종 악의적 보도로 구설에 올랐다. 한 예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보도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인 ‘경고’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언론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김재철 사장 이후 ‘MBC 보도가 공정성에서 후퇴했다’고 본 응답자가 63%, ‘신뢰도 역시 전보다 떨어졌다’고 답한 사람이 68%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총선 및 대선 보도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은 MBC의 신뢰도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굴종한 경영진이 오늘날 MBC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MBC가 봉착한 비극의 근본 배경에는 방송 장악을 노린 정권의 전 방위적 압력이 있었다. 이것이 김재철 사장 개인의 독단적 리더십과 맞물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시사저널>은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에 대한 사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MBC 홍보국 관계자로부터 ‘회사로서는 답변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제 여론의 관심은 후임 사장에 쏠린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MBC 정상화’를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 전제라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여야를 불문하고 나타난다. 이에 대해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차제에 방송사 사장 선임과 관련된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 공영방송의 독립성 확보는 하루 이틀 제기돼온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각종 외압에 의해 공영방송의 위상이 흔들릴 때마다 반복돼온 해묵은 주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공영방송을 각자의 ‘입맛’대로 길들이려는 정권의 욕구가 큰 탓이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그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김재철 사장이 물러났으나 MBC가 제자리를 찾는 일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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