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가 주동한 개성공단 폐쇄 협박
  •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4.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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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공격 등 말로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는 북한이 개성공단 카드를 꺼냈다. 우리 근로자와 물자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넘어 공단 폐쇄를 위협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는 것이다.

3년 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도 불구하고 기계 소리가 멎지 않았던 개성공단에 대한 위협의 이면에는 북한 군부 강경파의 오랜 불만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부는 “남조선과 전면 대결전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분계선(휴전선)을 통해 하루 수백 명의 남측 사람과 차량이 오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하지만 경협을 담당하는 북측 부서와 노동당 통일전선부 등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개성공업지구 사업은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께서 생전에 마련한 유훈 사업”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5만여 명의 공업지구(개성공단) 노동자는 물론 그들의 부양가족 등 20만~30만명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며 폐쇄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4월3일 북한이 개성공단 출경을 불허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을 기다리던 개성공단 차량이 되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때문에 개성공단 문을 닫는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 권력 내부에서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개성공단이 강·온파 사이 갈등의 핵으로 처음 등장한 건 2000년 6월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개성을 내주겠다. 군인들을 제대시켜 공업지구에 30만명의 노동력을 대주겠다”고 말했다. 해주 대신 개성을 남북 경협공단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후 공단 조성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이 지역에 주둔하던 북한군 부대는 모두 개성공단 부지 조성 사업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전략 요충지를 남쪽에 내주고 어쩌자는 말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절대 권력자의 한마디에 묻혀버렸다.

1998년 11월 시작된 금강산 관광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부는 군사 작전상의 문제를 들어 금강산 관광은 물론 장전항 개방에 반기를 들었다. 관광선의 정박을 위해 군항인 장전만을 내줘야 하고, 군사 요새로 여기는 금강산에까지 남한 관광객이 드나드는 상황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요구였다.

그해 6월 이뤄진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 때도 북한 군부는 반대했다. 소 떼를 실은 남한 트럭이 줄지어 판문점을 넘어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우리 군부가 어떻게 지킨 분계선(휴전선)인데 남조선의 재벌 영감탱이가 소를 끌고 넘어가게 하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그렇지만 김정일은 현대와의 대규모 경협 프로젝트로 달러벌이라는 실리를 챙기자는 김용순 노동당 통전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군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소 떼 방북과 금강산 개방은 안 된다고 김정일을 압박해 답을 얻어냈지만, 김용순이 직접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번복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 대남 사업 종사자들 사이에 ‘용순 아바이’로 불리던 김용순의 이런 무용담과 군부와의 갈등 스토리는 북측이 남한 당국자들에게 귀띔하면서 알려졌다.

북한의 이번 개성공단 폐쇄 위협 강도는 전례 없이 높다. 공단 관리를 담당하는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3월30일 담화를 통해 “우리의 존엄(김정은 지칭)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려 든다면 공업지구를 가차 없이 차단, 폐쇄해버리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연간 800억원이 넘는 달러 수입이 고스란히 김정은 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는 남한 언론의 지적에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개성공단은 북한 권력 내부 갈등의 향배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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