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테마 잡으려다 바람 맞을라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4.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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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등 투자 늘려…추격 매수는 위험할 수도

IT 붐 이후 활기를 잃었던 코스닥 시장이 최근 헬스케어 테마주로 들썩이고 있다. 국민연금 같은 큰손도 새 정부 들어 헬스케어주가 주목받자 관련 종목에 관심을 보이며 매수세에 합류했다. 국민연금은 최근 바이오업체 메디톡스와 약품 조제 업체 제이브이엠의 주식을 각각 6.22%, 5.03% 매입했다.

헬스케어 분야는 새 정부가 강조하는 산업이다. 창조경제를 앞세운 박근혜정부는 부가가치가 큰 지식 산업으로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치료와 진단, 예방이라는 의료·보건 전 과정을 아우르는 헬스케어 산업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한국투자증권의 한지형 연구원은 ‘100세 시대 웰에이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시장의 특성을 짚었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4조3063억원으로 세계 13위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8%에 이를 정도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한지형 연구원은 “한국 사회의 유례없는 급속 고령화와 웰빙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 의료 시장은 2015년 5조6553억원으로 팽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3년 안에 내수 시장에서 1조원 이상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증권가의 관심사는 ‘누가 이를 주도하고 먹을 것이냐’다. 일단 국내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것은 대기업 몫이 될 것 같다. 삼성·SK·LG·KT 같은 대기업이 헬스케어 산업에 속속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의료 정밀기기 산업-U헬스케어 기반 기술로 부상’이라는 보고서를 낸 유진투자증권 박종선 부장은 “U헬스케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강조했다. ‘U헬스케어’는 통합 건강관리를 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치료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통신 기술과 통신 장비, 의료기기 등 하드웨어의 급속한 발달과 인구 고령화, 의료비 증가라는 소비자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U헬스케어’라는 기술 융합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소비자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혈당이나 혈압 같은 개인 데이터를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로 병원에 보낸다. 담당 의사는 이를 보고 환자와 화상전화를 통해 원격 진료를 하는 것이 U헬스케어의 모델이다. 이 서비스는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의 의료법으로는 원격 진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통신기기를 통한 개인 의료 정보의 관리 주체가 누구인지, 통신회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다.

그런데 최근 SK텔레콤이 서울대병원, KT가 연세대의료원과 손을 잡고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SK텔레콤은 진단과 데이터 보기 기능을 의사(서울대병원)에게 맡기고 통신사는 망 서비스만 제공해 논란을 비켜가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빅플레이어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은 삼성의료원과 통신 단말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솔루션 제공업체인 삼성SDS, 의료보험 사업자인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통신 서비스를 제외한 U헬스케어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어 잠재력이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9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2013)’에서 삼성전자가 의료기기를 선보였다. ⓒ 삼성전자 제공
헬스케어 시장 빅뱅 이끄는 삼성전자 

삼성은 2007년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헬스케어를 선정한 이후 2010년 치과용 CT 업체인 레이 인수, 초음파 의료기기 업체인 메디슨 인수를 통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은 2011년 심장질환 진단 솔루션 업체인 넥서스도 사들였다. 올 초에는 미국의 이동형 CT 장비 전문업체인 뉴로로지카를 인수해 적어도 CT 분야에서는 글로벌 플레이어인 GE·지멘스·필립스에 버금가는 기술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 국내 의료기기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삼성의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따라 GE·지멘스 등 국내에 CT 생산 시설이 있는 회사에서 삼성 의료기기 사업부로 무더기 이직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선 삼성이 추가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몇몇 업체가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매 분기 10조원대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는 삼성전자가 헬스케어 기기 분야를 미래 수익원으로 삼을 만하냐는 것이다. MRI·PET 등 첨단 영상 의료기기가 대당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 장비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수요는 제한적이다. 분기별로 수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안기는 반도체·휴대전화 같은 규모의 마케팅을 기대하기 힘들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U헬스케어를 가미한 기기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상반기 중 시장에 선보이는 갤럭시4에 U헬스케어가 가능한 앱을 탑재했다. 휴대용 또는 병원용 혈당 측정기에 Wi-Fi, 블루투스 기능을 집어넣고 측정된 혈당 수치를 스마트폰의 혈당 관리 프로그램(앱)으로 전송해 관리하는 것이다. 이 혈당 분석용 앱은 국내 혈당 측정기 제조업체인 인포피아가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는 당장 삼성이 어떤 의료기기를 내놓을지보다 태동기인 U헬스케어 산업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낼지에 관심이 크다. U헬스케어 시장이 열리면 수많은 홈 헬스케어 기기가 상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SK텔레콤과 SK케미칼을 통해 두 갈래로 헬스케어 산업 진입을 타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서울대병원과 헬스커넥트를 설립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중국 의료기기 업체인 티엔롱 인수에 이어 나노 바이오 의료기기 업체인 나노엔텍도 매입했다. 통신 단말기 업체와 통신 서비스업을 함께 하고 있는 LG그룹은 다소 신중한 편이다. 일단 LG전자를 통해 정수기나 안마의자, 공기청정기 등 가정용 홈 헬스케어 제품을 내놓으면서 시장 진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수많은 헬스케어 관련 기업이 실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헬스케어주가 각광받는 현상에 대해 보수적인 투자를 하는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 같은 이들도 “방향은 맞지만 신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채원 부사장은 “문제는 누가 성공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바이오기업의 내재 가치를 누가 측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는 바이오 관련주는 “손을 못 댄다”고 했다. 다만 헬스케어 관련주 중 의료기기 분야는 그도 이미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시켰다. 그는 현재 주가 수준으로는 “어떤 종목은 가치 투자라고 부르기엔 너무 올라 일부 처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일반 투자자가 헬스케어 테마에 편승해 추격 매수에 나서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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