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의 말, 증시는 안 믿는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3.04.1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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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세 차례 핵실험 모두 ‘하루짜리 이슈’로 끝나

요즘 국내 증시 관계자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이슈는 ‘북한’이다. 남북 간 전면전으로 치달을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상황이 엄중해서다. 북한은 지난 2월 세 번째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연일 협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북한발 소식이 나올 때마다 코스피도 제법 출렁인다. 북한이 도발을 시도하면 투자 심리가 급랭하면서 주가가 떨어졌다 회복하는 양상이 반복돼왔다.

하지만 ‘북한 리스크’는 국내 유가증권 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거 서해교전과 같이 국지적인 갈등이 빚어질 수 있지만 전면전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북한의 ‘엄포’가 장기화하면서 투자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은 또 다른 요인이다.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 것은 한두 차례가 아니다. 그때마다 증시가 반응을 보였지만, 그 영향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북한발 위험이 커졌다고 해서 이것이 코스피의 추세 전환 요인으로까지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해 12월12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로켓 발사장에서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했다. ⓒ 연합뉴스
일부 전문가 “이번엔 다르다” 주장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크게 세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것이 핵실험이고, 교전(국지전)과 미사일 발사도 중요한 축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뒤이어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 올해 2월에 3차 핵실험을 했다. 하지만 국내 증시에선 모두 ‘하루짜리 이슈’에 불과했다. 충격의 강도가 제한적이었다. 1~3차 핵실험을 실시한 당일엔 코스피가 0.2~2.41% 하락했지만, 5일 후에는 모두 1.01~2.83% 올랐다. 핵실험 당일 주가가 많이 떨어질수록 회복 속도가 빨랐다. 핵실험 10일 후에는 대체로 상승 폭이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1996년 6월 서해교전이 발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식시장의 충격은 당일에 그쳤다. 2002년 2차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는 이 경험이 ‘학습 효과’로 작용했다. 증시에 충격이 거의 없었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때는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주가가 급락했지만 단기간에 회복됐다.

코스피의 조정 기간이 다소 길어졌던 것은 지난해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은하3호’를 발사했을 때다. 발사 당일 코스피가 0.81% 하락한 데 이어 5일 후 1%, 10일 후 0.53% 각각 하락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은하3호 2호기를 발사했을 때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당일 코스피가 0.55% 상승한 데 이어 그 이후에도 꾸준히 오름세를 보였다.

코스피는 오히려 글로벌 경기와 국내 기업의 실적 발표에 따라 더 크게 움직인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개별 기업의 실적이 북한 문제로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북한 리스크는 항상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며 “증시는 중·장기적인 추세를 반영해 움직이기 때문에 북한 이슈와 같은 정치 리스크는 단기 변동성만 키우고 종료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증시 전문가는 이번 북한 리스크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북한의 공격 범위와 대상에 대한 불안 수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 근거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체제 결속 등을 위해 지난해 12월12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 2월엔 3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이를 통해 살상력이 극대화된 무기(핵)를 대륙을 넘어 원거리까지 실어 나를 수 있다는 점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북한군이 미국, 유럽 등에까지 직접적인 공격을 퍼부을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종전과 달리 다양한 해상·항공 제재를 포함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 리스크가 훨씬 광범위해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통제 능력에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중국은 수차례에 걸쳐 북한의 자제를 촉구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 위험이 부각되면 자국 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북한의 군사적 긴장 유발이 일본의 재무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 지도부가 신경 쓰는 대목이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중국이 4월 초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를 북측에 전달했지만 북한의 입장 변화는 없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중국의 대북 억지력이 의심을 받고 있는 데다 김정은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오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북한발 다양한 위험 요소를 과거와 같은 잣대로 판단해선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전쟁 가능성 희박…“방산주 의미 없다”

신한금융투자는 이와 관련해 ‘주식시장에선 북한 리스크를 경제 외적인 변수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짙지만, 과거와 다른 양상도 적지 않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적극적인 매수를 권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의 시황 보고서를 최근 내놓았다.

한반도에서 실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우선 군사력에서 크게 밀리는 북한이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은 최근에도 한·미 정보 당국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열차를 이용해 무수단미사일을 동해안으로 운반했다. 잇따른 도발이 실제 교전보다는 대외 무력 과시용 성격이란 점을 시사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3월 말 김정은이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전략군 미 본토 타격 계획’이라는 작전계획도를 뒤로 한 채 군사 작전을 짜는 사진이 공개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따라서 북한 리스크는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식의 대내 선전 효과 및 상징성이 큰 장거리 미사일을 쏘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남북 간 전면전만 발생하지 않으면 북한발 위험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란 게 공통된 분석이다. 북한의 도발이 새로운 형태가 아닐 경우 과거와 같은 학습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얘기다.

과거 남북 간 위기가 고조됐을 때마다 방위산업주가 급등하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 등 남북 경협주가 급락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단기 등락에 그쳤다. 국내 증시에서 대표적인 방산주로는 스페코·퍼스텍·휴니드·빅텍·풍산·HRS 등이 꼽힌다. 방산주 주가와 반대 흐름을 보이는 남북 경협주로는 인디에프·신원·좋은사람들·로만손 등이 있다.

‘가치 투자’ 전문가인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북한 리스크는 주식시장에 이미 다 반영돼 있다. 방위산업주에 추종해 투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북한 관련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증시의 상승 모멘텀을 가로막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대규모 국지전이 발발할 경우 단기적으로 큰 충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지금으로선 북한의 도발이 어떤 형태를 띨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라며 “급변 사태에 대비해 투자 자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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