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총기가 인터넷을 떠돈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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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 강화됐지만 은밀한 사이버 거래 계속 늘어

출처가 불분명한 불법 살상용 총기가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다.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총기 사고는 불법 총기 거래의 산물이다.

4월12일 서울 신길동에서 한 식당 주인이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자살자가 사용한 총기는 미국 제닝스 사에서 20여 년 전에 생산된 J-22구경 권총이다. 경찰이나 민간에서 보유할 수 없는 총기다. J-22는 초소형으로 6발의 총탄을 장전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특수 사이즈 권총이다. 크기가 작고 휴대가 간편해 호신용이나 사격용으로 주로 쓰인다.

관할 영등포경찰서는 이 권총의 반입 경로를 추적하고 있는데, 소지자가 사망해 출처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경찰서 이상욱 경위는 “매년 총기 자진 신고 기간을 둬 불법 소지한 총기 일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고 있다. 하지만 신고하지 않는 것을 캐내거나 불법 유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모의 총기를 판매한 일당에게서 압수한 총기류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인터넷 중고 장터에서 실제 총기 직거래

총기 관련법이 강화되면서 총기를 합법적으로 소지한 사람은 크게 줄어들었다. 총기 규제가 강화될수록 총기를 사용한 범죄가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 통계는 정반대다. 미국의 경우 까다로운 총기 규제법을 집행하는 시카고가 미국 내 대도시 총기 사건·사고 사망률 1위를 기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가까운 중국에서도 총기 규제를 강화하면서 영화처럼 총기를 불법 제조하고 유통하는 거대 조직이 적발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자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살상용 무기로 쓸 수 있는 불법 총기가 유통되는 경로를 추적했다. 인터넷 구매 사이트나 블로그를 뒤지고 서울에 있는 총포상들을 상대로 수소문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총기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 을지로에서 총포상을 운영하는 이기훈씨는 “총포 관련 단속법이 해마다 강화됐는데, 2010년에는 모든 총기와 용도에 대해 소명하고 확인 절차를 거치게 해 호신용 분사기(가스총) 구입조차 꺼리는 게 현실이다. 허가 제외 품목은 가스 스프레이 정도”라고 말했다. 법이 예전보다 엄중해져 쉽게 팔지도, 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불법 총기가 유통되고 있다면, 단속 장비가 부실했던 10여 년 전에 들여왔거나 미군부대 요원이 분실했거나 선물로 주고 간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마약이 여전히 밀거래되듯이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범법자 세계에서 불법 총기류가 매매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에 대해 경찰청 총포화약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일부 항구 도시나 항공 화물편으로 밀수되기도 했지만, 단속이 강화되면서 요즘은 장난감 총 말고는 반입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제보 등을 받고 탐문 수사를 벌여도 밝혀진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정말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제보해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살 수 있는 곳은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소문처럼 서울 황학동 시장과 영등포 일대 찜질방, 인천 항구 등을 어슬렁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1000만명 넘는 회원을 가진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에서는 가스총, 공기총, 엽총뿐 아니라 모의 총기까지 사고팔고 있었다. 한 중학생이 부모 명의로 모의 총기를 팔았다가 게시물을 지우지 못해 경찰에 적발된 사례가 있는 것을 보면, 단속을 피해 얼마든지 불법 총기류를 직거래할 수 있는 듯했다.

권총처럼 생긴 탄환 장착용 가스총이 중고 장터에 올라 있어 구입을 시도해봤다. 총포상 말에 따르면 이 총을 개조하면 실제 권총으로 쓸 수 있다.

판매자는 구매자가 소지 허가증을 관할 경찰서에서 발부받아 오면 양도할 수 있다는 설명을 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은 카페에서 강제 퇴출되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올리는 글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 구석에 적어놓은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해 봤다. 허가증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더니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불법 소지한 총을 1 대 1로 만나 아무런 절차 없이 살 수 있는 듯했다.

경찰청 총포화약계 관계자는 “소지 허가 품목이 중고 장터에 올라 있는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소유권을 양도하는 것”이라며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살상용으로 둔갑한 모의 총기 매매

하지만 치고 빠지듯 불법 소지한 것을 팔고 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엽총도 여러 정 올라 있었는데, 그중 한 건에는 카페 운영자의 경고 글이 올라 있었다. 경고 글이  오르기 전에 누군가와 불법 거래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의심된다.

3월21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모의 총기를 불법 개조해 인터넷에서 판매한 혐의로 판매자 김 아무개씨와 구매자 등 6명을 검거하고 다른 구매자 10명을 추적하고 있다. 김씨는 모의 총기 개조업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 회원 수가 5만명에 육박한 사이트를 운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정부의 현행 모의 총기 관련 규정에 불만을 제기한 글이 게시된 블로그를 찾아냈다. 블로그 개설자는 비비탄총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총기 사진을 올려놓고 방문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강력한 성능을 가진 비비탄총을 수입하고 싶다는 글도 게시판에 올라 있었다. 문제는 튜닝 코너를 만들어 비비탄총 등을 직접 개조한 사진을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비밀 댓글과 비밀 답글도 더러 달려 있어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게 했다.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다 그만둔 한 비비탄총 애호가는 “개조된 비비탄총이 문제다. 서바이벌 게임 동호회나 사냥꾼들이 실제와 같은 느낌을 얻기 위해 많이 개조한다. 사람 잡는 총으로 충분히 개조가 가능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단속·처벌 강화로 총기류의 해외 반입이 힘들어지면서 주목받는 것이 ‘모의 총기’다. 이것은 구조나 크기 면에서 실제 총기와 다름없는 완구용 총기를 불법 개조한 것이다. 플라스틱 부품을 금속 소재로 똑같이 만든 부품으로 바꾸는 등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불법 개조된 모의 총기는 차량 유리를 뚫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4월15일 대구 도심에서 발생한 모의 총기 난사 사건은 모의 총기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웠다. 30대 남성이 탄창을 개조한 모의 총기로 길 가던 여대생을 쏴 부상을 입혔는데, 이 남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도 모의 총기를 겨누고 흉기까지 꺼내들었다고 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모의 총기를 포함해 불법 총기류를 국내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건수는 총 119건이다. 모두 141정을 회수했는데 그중 실제 총기는 18정이다. 나머지 120여 정은 모의 총기라는 말이다.

한 총포상은 “이 수치는 해마다 조금씩 증가한다. 적발 건수가 이 정도라면 실제 밀반입되거나 국내에서 제조된 모의 총기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밀반입 혐의자를 붙잡아도 진술하지 않는 이상 경로를 알아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경찰도 모르는 밀반입 경로와 불법 유통 경로가 널려 있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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