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하늘이라 이름 붙여주세요”
  • 최혜미 인턴기자 ()
  • 승인 2013.04.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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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에 아기 버린 엄마들의 슬픈 사연

어린 미혼모는 고시원에서 아기와 지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옆방 사람들이 신고해서 사무실 직원이 방문을 두드렸다. ‘왜 여기 아기가 있느냐’는 물음에 불안해진 엄마는 아기랑 죽자 마음먹었다.

그는 아기를 창밖으로 던지고 자신도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리고는 아기를 창밖으로 내놓았다가 다시 방 안으로 들여놓으며 울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베이비박스라는 게 있대”라는 말에 신발 신는 것도 잊고,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린 미혼모에게 베이비박스(영아유기 방지를 위한 아기보호소)는 구세주였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들려준 한 미혼모의 사연이다.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벼락에는 ‘베이비박스’가 있다. 아기를 낳았지만 기를 수 없는 부모들이 이곳에 아기와 편지를 두고 간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안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입양특례법이 불법 입양 부추긴다?

한 미혼모는 ‘입양특례법 때문에 호적에 아기를 올려야 한다는 말에 무섭고 그럴 수가 없어서 베이비박스를 찾았다’고 적었다.

개정 입양특례법이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됐다. 핵심 내용은 출생신고다. 입양 기관에 아이를 맡기려면 출생신고를 하고 부모 양쪽의 입양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 미혼부·모들에게 출생신고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호적에 아이의 기록이 남아 향후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 절차가 완료된 후 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아이 관련 기록이 말소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이가 입양에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다.

여자아이보다 선호도가 낮은 남자아이거나 장애아인 경우 입양 대기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운 좋게 입양에 성공해도 문제는 남는다. 성장한 입양아는 친부모 정보가 담긴 ‘친양자관계증명’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입양아와 ‘혼인을 하려고 하는 자’도 친양자관계증명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규정이 애매하다 보니 사실상 혼인을 주장하면 누구나 ‘친양자관계증명’을 뗄 수 있는 것이다.

법무법인 마당의 송윤정 변호사는 “가족관계등록법 관련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입양특례법에 손을 댔어야 했는데,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버리면서 놓고 간 편지. ⓒ 시사저널 임준선
불법 입양에 노출된 아이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새로운 부모나 가정을 만날 수 없다.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아이를 입양시키지 못한 엄마는 ‘아이가 좋은 곳으로 입양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아이와 함께 남겼다. 한 엄마는 ‘병원에 한번 가보지 못하고 집에서 낳은 게 너무 미안해서 앞으로 네가 아플 것 내가 대신 다 아팠으면 좋겠다’며 좋은 부모를 만나길 바라면서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넣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입양 가정이 아니라 보육원으로 가야 한다. 입양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종락 목사는 “이 아기들도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면 법이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렵다.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음지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입양이 그렇다. 정식 입양 절차를 밟지 못하는 아이들이 불법 입양에 노출되고 있다. 인터넷 불법 입양은 아동 학대, 파양 등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적발하기가 어렵다. 아동·부모의 권리 보호에 속수무책이다.

대구에 사는 한 미혼모는 원룸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입양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인터넷에서 불법 입양 정보를 접했다. 그는 불법 입양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베이비박스를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면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 2월 광주에서는 대형 마트에서 버려진 아기가 발견됐다. 4월6일에는 한 병원 화장실에서 아기가 발견됐다. 2년여 전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러 온 한 미혼모는 “아이를 죽이려고 목을 몇 번씩이나 눌렀다”고 털어놓았다.

입양이 가로막힌 부모들에게 해결책이랍시고 떠오르는 것은 불법 입양이나 유기, 동반 자살 등이다. 궁지에 몰린 부모들이 내리는 최선의 선택이 베이비박스다.

아이를 몇 달 길렀다는 부모들도 있다. 양육비를 마련하려고 대출을 받았다는 사연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려야 했다. ‘동녘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달라’고 요청한 한 엄마는 ‘어떻게든 아이를 다시 찾을 수 있게 어디든 꼭 아이와 함께 보내달라’며 사진첩을 함께 맡겼다. 그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저에게는 돈으로만 해결되는 사회가 무섭고 싫다. 나중에 꼭 아이를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고 직접 기를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양육 지원책이 충분히 제공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현재 미혼부·모가 받을 수 있는 양육비 혜택은 크지 않다.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 따르면 현재 정부에서 한부모 가족에게 지원하는 금액은 만 24세 이하인 경우(최저생계비 150% 이하 기준) 월 15만원이다. 이종락 목사는 “한 달 15만원으로 아이를 기를 수 있겠느냐. 그건 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버려지고 죽어도 정부는 무대책”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베이비박스가 아동 유기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생사의 현장에 있다. 여기 와서 보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아동 유기 조장’ 같은 말을 하면 안 된다. 나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베이비박스가) 합법화돼 있다.

아이들은 어떤 상태로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나?

알몸으로 베이비박스에 들어와 있거나, 탯줄을 단 채 엄마 윗옷에 싸여서 놓여 있기도 한다. 핏덩이라 양수 냄새가 나고 그런다. 어떤 엄마는 그런 아이를 안고, 걸음도 잘 못 걷는데 자리에 앉으니까 양수가 쏟아졌다.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추운 겨울에 아이들이 제일 많이 들어온다. 그 아이들을 다른 데 버렸으면 다 죽었을 것이다.

정부는 베이비박스에 부정적이다.

국민이 이렇게 죽으면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이들이 버려지고 죽어도 무반응·무대책이다. 그러면서 하나밖에 없는 대안인 베이비박스를 철거하라고 한다. 웃기는 일이다. 이건 개인이 해서 될 일이 아니고, 나라가 해야 한다. 나는 베이비박스의 문이 열리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는 사람이다.

향후 계획은?

허가가 나면 일시 보호소로 운영하려고 한다. 그러면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여기서 보호했다가 입양 기관으로 바로 보내는 식으로 하고 싶다. 지금은 여기 들어오면 미아신고를 하고 입양 부모를 만나려면 다섯~여섯 단계를 거쳐야 한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자기가 버려졌다는 것을 다 안다. 구청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있는 한 어떤 허가도 내주지 않겠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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