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빚더미 올라도 낙하산 사장 연봉 두둑
  • 엄민우 기자·문정빈 인턴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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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공기업 40곳 임직원 연봉·기관장 업무추진비·부채 비율 등 경영 상태 분석

“정권 바뀌면 공기업 사장도 당연히 바뀌는 것 아닌가?”

한 현직 국회의원이 기자가 공기업 낙하산 인사 관련 취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말이다. 공기업 낙하산 인사 실태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대통령의 손발이 돼 정책을 펴는 곳은 각 주무 부처다. 부처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곳이 바로 공기업이다. 때문에 각 부처 장관이나 공공기관 대표 자리에는 정권의 이해관계와 맞는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관례다. 선임 절차가 있으나 사실상 이미 정해져서 내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신 아무개씨는 “사실 공기업 임원은 거의 정해져서 온다고 보면 된다. 면접도 보기 전에 회식 자리에 참석해 본부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더라”며 씁쓸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공기업은 일반 기업보다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전기·철도 등 공공재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낙하산 인사다. 낙하산 인사는 정부 사업으로 부채를 늘린다. 그 부채를 갚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더 큰 빚을 떠안게 되기도 한다. 정권과 관련 있는 사람이나 관료 출신이 대표로 오다 보니 외부 눈치도 잘 보지 않는다. 견제해야 할 감사도 낙하산 출신인 경우가 많다. 빚은 쌓여가지만 기관장·감사 등 임원 연봉은 억대를 넘어선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낙하산 인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시사저널>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주요 공기업 및 공공기관 40곳의 임원 평균 연봉, 기관장 업무 추진비, 부채 비율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 기관 대다수의 임원 연봉이 억대가 넘었다. 그중에는 부채가 자본의 3배 이상인 곳도 있었다.

조사 대상 기관 중 기관장·감사·이사 등 임원 연봉이 높게 나온 곳은 주로 금융 공기업이었다. 기관장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수출입은행으로 4억9000만원에 달했다. 감사와 이사의 평균 연봉도 각각 2억원, 3억원을 웃돈다. 수출입은행의 부채 비율은 60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입은행의 부채는 특히 MB(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크게 늘어났다. 2007년 수출입은행 부채는 18조7093억원이었으나 2011년 47조원대로 2배 이상 불어났다.

디폴트로 개발이 무산된 용산역 서울정비창 부지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방만한 경영으로 부채 눈덩이

수출입은행에 이어 기관장 연봉이 높은 곳은 한국정책금융공사다. 기관장 연봉이 4억원을 넘었다. 한국정책금융공사는 부채 비율이 179%로 자본보다 부채가 많다. 코스콤의 기관장 연봉은 3억9000만원이다. 코스콤 노동조합은 지난 4월24일 ‘노사 파탄과 독단 경영 일삼는 비전문가 MB 낙하산 코스콤 사장은 퇴진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노조는 현직 사장을 ‘낙하산 비(非)전문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 정부에 새로운 사장을 임명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성명서에 담았다.

조사 대상 기관 중 기관장 연봉 상위 3곳은 모두 금융 공기업이다. 금융 공기업 연봉은 일반 공기업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국거래소는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 한국거래소의 경우 임원진이 낙하산으로 대거 채워져 야당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 공기업에 대해 높은 연봉을 지적하면 우수한 인재들이 고액 연봉을 주는 금융권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보수가 좋다 보니 권력 주변 인물들이 군침을 흘린다”고 말했다. 낙하산이 오면 고위직들 사이에 줄서기 바람이 불기도 한다.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 노조 관계자는 “낙하산 사장이 오면 고위급들은 특히 더 줄을 서려고 한다”며 “MB 정부가 임원 임기를 기존 3년에서 2년 후 1년을 연장하는 식으로 바꾼 다음 더욱 심해졌다”고 밝혔다.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은 높은 임금 때문만은 아니다. 내부 경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거짓 출장 보고를 올리는 것이 그중 하나다. 2009년부터 2년간 공공기관에 근무했던 신 아무개씨는 “간부들이 워크숍을 가기 위한 비용을 만들기 위해 일반 직원들이 출장 간 것처럼 올려 그 돈으로 워크숍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신씨는 또 “직원들 업무용 관용차를 고위 간부가 주말 내내 타고 다니고 월요일에 기관 돈으로 기름을 채워놓기도 한다. 주변 음식점과 짜고 거짓 영수증을 만드는 이도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직원들이 회의를 하거나 특정 업무를 진행할 때 규정상 1인당 최대 3만원의 식비가 나온다고 할 경우 3만원을 다 채우기 위해 식사를 나눠서 한다. 신씨는 “1인당 최대 식비가 3만원이 나오고 10명이 회식을 했는데 20만원이 나오면, 일단 30만원으로 영수증을 끊고 남은 10만원은 나중에 가서 먹는 식으로 기어코 한도를 채운다”고 말했다.

단순히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지적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수 있다. 일반 기업의 경우 성과가 좋으면 고액의 성과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액 연봉을 받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중 많은 곳이 큰 부채를 떠안고 있으며, 방만한 경영에 소요되는 돈이 혈세라는 점이다. 이원희 정부회계학회 회장은 “일반 기업의 경우 잘못되면 망하지만, 공기업은 위험하면 정부 돈이 투입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공기업 부채는 대부분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기업의 부채 문제를 들여다볼 때는 그 부채가 정부 사업을 대신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된 것인지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수자원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정부 사업을 떠맡았다가 부채가 늘어난 전형적인 경우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 토지주택공사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으로 부채가 늘어났다. 수자원공사 부채는 12조원을 넘어서고 부채 비율은 116%다. 토지주택공사의 부채 비율은 468%에 달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인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추진하면서 금융 부채가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채를 갚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빚을 더 늘린 경우도 있다. 코레일이 용산 개발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정부로부터 떠안은 고속철도 부채 4조5000억원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민간 사업자에게 땅을 팔고 개발 이익만 챙기려 했는데 이후 직접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용산 개발 사업이 좌초하면서 코레일은 엄청난 빚을 더 떠안을 상황에 놓였다. 초기 출자금 2500억원은 물론, 땅값으로 받았던 2조4000억원도 되돌려줘야 할 처지다. 코레일의 부채 비율은 지난 2011년 기준으로 154%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수자원공사와 코레일의 경우 워낙 힘든 상황이라 누가 사장으로 가려고 할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은 공기업 부채를 늘린 대표적 국책 사업이다. ⓒ 연합뉴스
낙하산 출신 오면 감사도 제대로 안 돼

사기업이 운영을 방만하게 하면 그 피해는 해당 기업 구성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수자원공사와 코레일의 부채 문제와 함께 수도요금과 철도요금 인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전기요금 인상도 방만한 운영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인 전정희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전력거래소는 여름철과 겨울철 예비 전력을 과다하게 확충해 연료비를 낭비했다. 현행 전력 시장 운용 규칙은 운영 예비력 400만kW를 유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전력거래소는 2012년 여름 피크 기간 예비 전력을 760만kW, 겨울 피크 기간에는 690만kW씩 예비 전력을 유지했다고 전 의원은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의 유재국 조사관은 “예비력 400만kW도 미국 기준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라며 “과도하게 발전기를 돌려 예비력을 늘리면 적자를 유발시키고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의원은 전력 계통 운영 시스템인 EMS를 활용해 운영 예비력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력 운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EMS 시스템이 지금껏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EMS 시스템에 대한 조사위원회가 구성됐고 두 달 후면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EMS 문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계속 살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낙하산 인사와 방만한 경영의 상관관계는 내부에서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준정부 기관의 전무로 근무하다 퇴직한 김 아무개씨는 “내가 있던 곳은 특히 전문성이 필요한 기관이었는데 비전문 낙하산 인사가 기관장으로 와서 폐해가 많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한 전직 직원은 “기관장이나 임원으로 낙하산 관료 출신이 오다 보니 외부에서도 쉽게 감사를 하기 어려워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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