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후보 추천하면 “집에 돌아가”
  • 김윤태│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3.04.3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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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 정치적 중립성과 능력 검증받은 사람 임명…이사회에 시민단체 등 참여

그는 미국 휘그당 출신으로 연방정부 하원의원이 된 후 우체국 분과위원과 국방성 세출위원을 지냈다. 분과위원회에서 열심히 일했고 하원에 정확하게 보고했다. 그는 지역구에서 아는 사람들이 연방정부 일자리를 부탁하면 열심히 알아봐줬다. 민주당 정부에서 야당 신참 의원이 부탁한다고 순순히 들어줄 리는 없었다. 안 될 줄 알면서도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역구 민원인과 취직 청탁에 답변하는 편지를 쓰는 데 썼다. 당시 하원의원은 보좌관이 없었기 때문에 비서의 도움은 생각지도 못했던 때다. 그의 이름은 바로 1864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링컨이다.

지금도 미국 연방정부와 공기업 인사는 대통령이 결정한다.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이 승자 독식의 원칙에 따라 집행한다. 대통령은 장관 이하 3600여 개 자리에 대해 임면권을 행사한다. 연방정부 차관보와 같은 정무직뿐만 아니라 실무 국장과 보좌직까지 정치적 채널을 통해 충원한다. 이렇게 임명된 공직자는 대통령 퇴임과 함께 물러난다. 임기 말이 되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하고,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는다. 설령 대통령이 지명해도 상원에서 인준하지 않으면 임용이 불가능하다. 하위직과 공기업 임원도 임기 말에 정치적으로 충원하는 사례는 피한다. 대선 직후 정권 인수팀이 중요 공직을 임명한다. 당연히 낙하산 시비도 없다.

프랑스의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2012년 2월14일 자신이 임명한 앙리 프로글리오 프랑스전력공사 CEO와 함께 태양광 패널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 EPA 연합
관료제와 엽관제의 한계

흔히 낙하산 인사는 엽관제(nepotism)라고 부른다. 이 말의 의미는 원래 조카(nephew)를 공직에 임명하는 고대 로마의 관행에서 비롯됐다. 로마 공화정에서도 유력 가문의 친척을 공직에 등용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에 비해 고대 중국과 한국에서는 과거를 통한 관료제가 발전했다. 조선 시대에 음서제가 존재해 유력 가문의 후손이 특혜를 받기도 했지만, 대체로 능력주의에 입각한 관료제는 지배 계급의 통일성과 우월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됐다.

현대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서양에서도 엽관제를 몰아내고 관료제가 도입됐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조직으로 봤다. 규칙의 준수, 문서를 통한 행정, 위계질서에 따른 지휘와 명령, 연공서열, 업적에 따른 평가 등이 관료제의 원칙이 됐다. 이는 유럽의 절대왕정이 현대 국가로 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베버의 예측과 달리 관료제가 반드시 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지나친 형식주의에 집착해 오히려 비효율적 결과를 만드는 사태가 비일비재했다. 연말만 되면 밀린 예산 집행을 위해 도로 공사를 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관료제는 민주적 통제의 원칙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집권당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정당이 관료를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0세기 초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관료제가 자신들의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사회주의 단체인 페이비언 협회도 영국의 관료제가 지배 계급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보고 관료제의 중립성을 의심했다. 부유층 출신 관료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에 대해 충성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대처 보수당 총리는 관료제가 기득권을 수호하는 세력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가 바로 문제’라고 공격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관료제가 반드시 불편부당하게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엽관제는 정치 지도자들이 민주적 책임성의 원칙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행정부가 교체되면 정부에 입각했다가 선거에서 지면 물러나는 워싱턴 특유의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가 오랜 엽관제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국에서도 공공기관 인사에 정치권 인맥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관료제가 막강한 나라에서는 주로 관료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많다. 프랑스에는 낙하산이라는 의미로 ‘파라쉬타주(parachutage)’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의 ‘아마쿠다리(天下り)’라고 부른다.

인사 검증의 민주적 통제 중요

프랑스에서는 철도공사(SNCF)·전기공사(EDF) 등 대규모 공기업 사장은 대통령이 미리 내정한다. 대체로 정치적 중립성과 능력을 검증받은 후보가 임명되기 때문에 논란은 없다. 그러나 무능한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거부할 수 있다. 이사회에 노동조합·시민단체·언론인 등 외부 인사가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다. 반면에 중소 규모 공기업은 이사회에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일본은 공직 퇴임 후 공기업에 임용되거나 민간 기업으로 이동하는 전통이 뿌리 깊지만, 2010년부터 독립 행정법인 이사장과 감사직을 공모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공무원 제 식구 챙기기’ 관행을 막기 위해서다.

관료제의 힘이 막강한 한국에서도 정부 투자 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군사 정부에서는 군부 출신이 낙하산으로 내려갔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등산화’, 노무현 정부에서는 ‘코드 인사’가 논란을 일으켰다. 1980년대부터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기업을 ‘정부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을 통해 감독하고 있지만, 아직도 낙하산 인사는 무능과 비리의 요인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낙하산 인사 문제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은 ‘주인-대리인 이론’이다. 대리인이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야기하며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증가시킨 원인으로 지적된다.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신공공 관리(new public management)’의 관점에 따라 공공 부문 개혁을 추진했다. 공기업 인사 과정에서 사장추천위원회, 계약직 사장, 사장경영평가제도, 경영 정보 공시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새로운 인사 제도는 일정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낙하산 인사가 군인과 정치인에서 관료와 민간인으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비판도 많다. 다른 한편으로 공기업 내부 승진이나 외부 전문가의 경우에 정치권 연줄로 임명되면 넓은 의미의 낙하산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대선에 공을 세운 뒤 임명된 공기업 감사가 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논란에 이어 박근혜정부에서도 전문성 없는 인사의 정부 투자 기관장 임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낙하산 인사는 민주적 통제라는 관점에서 대통령과 집권당의 철학을 공유하며 선거 공약을 실천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에서 산은금융그룹 회장으로 경제 민주화의 핵심 내용인 금산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반대한 인사를 인준한 것처럼 무책임한 인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의 공직임용위원회와 영국 하원 공직선발위원회 같은 다양한 인사 검증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투자 기관 이외에도 정부 산하 기관, 지방 공기업까지 인사 과정의 개혁이 필요하다. 유능한 인재를 널리 등용하는 대통령의 철학도 중요하지만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제도적 설계를 보완해야 한다.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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