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 휴게소도 대기업 입안에 ‘쏙’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5.07 09: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형 쇼핑몰 속속 개점…골목상권 이어 도로상권까지 장악 우려

“도로공사가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대형화 바람을 타고 있다. 휴게소 바로 옆에 대형 쇼핑몰이 속속 들어서는가 하면, 아예 대기업이 직접 투자해 운영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침체해 있던 휴게소 상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기존 입점 업소가 된서리를 맞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도 나온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민주화 정책에 역행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정권은 한국도로공사가 쥐고 있다. 새롭게 사업에 진출한 업체도, 기존 사업자도 모두 “도로공사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기흥휴게소에 최근 아웃도어 전문 쇼핑몰이 들어섰다. 오른쪽 사진은 코오롱글로벌이 운영하는 덕평휴게소. ⓒ 시사저널 전영기
기흥·마장 휴게소에 롯데 입점

5월1일 근로자의 날, 경기도 용인에 있는 기흥휴게소를 찾았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30분 남짓 걸리는 기흥휴게소는 170개가 넘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가운데 매출액 순위 10위권에 드는 알짜배기 휴게소다. 이날도 건물 앞 주차장은 시동을 끈 채 잠시 휴식에 들어간 승용차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만큼은 못하지만 다른 휴게소에 비해 형편이 낫다고 한다. 위치부터 좋다. 서울에서 출발한 차량이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거리에 휴게소가 자리 잡고 있다.

교통 안내 표지판을 따라 기흥휴게소로 들어서자마자 먼저 눈에 띈 것은 새롭게 문을 연 쇼핑몰이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소 요란하게 치장한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25개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가 입점한 쇼핑몰은 중견 의류기업인 평안엘앤씨가 자회사 격으로 설립한 평안세븐스마일이라는 회사가 관리·운영하고 있다. 3월22일 공식 개장했는데 기존 휴게소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뒷말이 흘러나왔다.

해당 쇼핑몰을 관리·운영하고 있는 책임자에게 물었더니 고개부터 내저었다. 평안세븐스마일 관계자는 “식음료 부문은 휴게소에서 맡고, 패션 부문은 우리가 맡기 때문에 겹치는 게 없다. 이미 협의된 사안으로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식음료와 패션 부문을 나눠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협의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쇼핑몰에는 대기업인 롯데에서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이 들어와 있다. 이는 상호 주력 업종은 보호한다는 원칙에 어긋나 보인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유명 브랜드의 경우 낙후된 휴게소에 안 들어오려고 한다. 유치하려고 해도 못 하던 곳이다. 휴게소 입장에서는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 또한 “협의하고 입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흥휴게소측 입장은 달랐다. 휴게소 운영업체 관계자는 “도로공사에서 민자(민간 자본)를 유치해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아직은 매출에 변동이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쇼핑몰 운영과 관련해 “우리와 협의한 사항이 아니다. 오픈하기 이틀 전에야 뭐가 들어오는지 알았다”고 밝혔다. 쇼핑몰에 구체적으로 어떤 업체가 들어올지 사전에 몰랐다는 의미다. 이미 협의했다는 쇼핑몰측과는 말이 다르다.

양측이 모두 도로공사를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기존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업체는 5년마다 도로공사의 평가에 따라 계속 휴게소를 운영할지 여부가 결정된다. 휴게소 건물·주차장 등 모든 시설은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도로공사 소유다. 운영업체는 이를 임대해 사업을 펼치는 일종의 하청업체에 불과하다. 도로공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쇼핑몰의 경우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건물 신축 등 비용을 대는 대신 장기 사업권을 보장받는다. 그 이후에는 기부 채납하는 형태로 도로공사와 계약을 맺는다. 쇼핑몰 운영업체로서는 그 안에 본전 이상을 뽑아내야 남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평안세븐스마일 관계자는 “기흥휴게소 매출이 떨어지는 추세인데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니까 반응이 좋다. 고객 편의시설도 확충하고 있다. 우리 쪽이 활성화하면 휴게소 쪽도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흥휴게소 운영업체측은 “쇼핑몰에서 홍보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속도로 휴게소 직접 운영 대기업 늘어

앞으로 휴게소에 쇼핑몰이 더 들어설 전망이다. 최근 중부고속도로에 있는 마장휴게소에는 롯데마트가 입점하기도 했다. 휴게소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기는 처음이다.

대기업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도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해온 대표적인 대기업은 한화그룹이었다. ㈜한화와 한화케미칼㈜이 각각 50%, 48%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주유소 운영을 포함해 고속도로 휴게소 13개를 운영하고 있다. 공주휴게소, 부여백제휴게소, 진안휴게소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대기업도 속속 휴게소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외식업을 선도해온 CJ그룹과 SPC그룹이 이미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 운영권을 갖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SK이노베이션㈜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SK에너지가 서해안고속도로 매송에 복합 화물차 휴게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 휴게소도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휴게소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곳은 경기도 이천시 영동고속도로에 있는 덕평휴게소다. 2007년 개장한 이 휴게소는 코오롱글로벌이 운영하고 있다. ㈜코오롱이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매출에서 다른 휴게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7년 개장 첫해 57억원의 매출을 올린 후 2011년 420억원, 2012년 507억원 등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매출 부문 부동의 1위다.

대기업이 앞다퉈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에 뛰어드는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유통 채널은 이미 포화 상태다. 비집고 들어갈 곳이 없다. 그런 면에서 고속도로 휴게소가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고속도로 이용 차량은 14억900만대이며, 휴게소에서 쓴 돈은 2조8000억원에 이른다.

휴게소 매출이 늘어날수록 도로공사 수익도 늘어난다. 도로공사는 덕평휴게소 매출의 11%를 임대료로 가져간다. 휴게소 한 곳만 가지고 연간 55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공기업인 도로공사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 휴게소에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많다. 골목상권에 이어 도로상권마저 대기업이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민자 유치 방식으로 휴게소를 건립할 경우 자본력이 뛰어난 대기업이 경쟁에서 앞설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는 한 사장은 “도로공사에서 휴게소의 고급화와 선진화에 대한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게 점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