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수술 기술, 한국이 세계 최고”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5.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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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훈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

미국에서 위암 권위자인 샘 윤 하버드 의대 교수는 2008년 어머니의 위암 수술을 한국에 맡겼다. 그만큼 한국의 위암 치료 수준은 세계 최고이다. 한 해 1000명에 육박하는 외국 의사들이 한국 의술을 배워 갈 정도다. 한국을 위암 치료 강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이 노성훈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외과 교수)이다. 그의 수술법과 연구 결과는 세계 의대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 실렸다. 그를 4월30일 만났다.

 

ⓒ 시사저널 임준선
두통을 알약 한 개로 해결하듯이 위암도 수술 없이 약으로 치료할 날이 올까?

현재까지의 의학 수준으로는 아쉽게도 요원해 보인다. 약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암처럼 환부가 있는 질환은 약만으로는 치료가 힘들 것 같다. 만성 골수 백혈병은 글리벡이라는 약으로 치료한다. 이는 한 개의 유전자 이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위암은 여러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킨 현상이다. 즉, 원인이 복합적이어서 약으로 치료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수술 후 항암제 투여를 병행하면 위암 치료 효과가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실제로 환자에게 적용할 시점은 언제쯤일까?

그것과 관련된 연구 결과를 7월 세계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미리 밝힐 수는 없지만, 수술 후 항암 치료를 하면 환자 생존율이 10% 이상 상승한다. 수술 후 항암 치료 병행으로 전체 위암 환자 가운데 10~15%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진행성 위암도 상당 부분 완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짧으면 2~3년, 길어도 5년 이내에 일반 환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어떤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 점이 딜레마다. 그래서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다. 정상세포가 암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분명히 단백질이 관여하므로 이를 차단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10년 이내에 어떤 식으로든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복 수술·복강경 수술·로봇 수술 등 치료 방법이 많은데, 환자는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

장단점이 있다. 개복 수술은 안전하고 치료가 확실하지만,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심한 편이다. 복강경과 로봇으로 그 고통을 줄일 수는 있지만, 시야가 좁고 수술비가 비싼 것이 단점이다. 중요한 것은 수술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환자가 수술할 의사를 선택할 때는 의사와 충분히 상담해서 자신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먼저 정한 뒤 그 치료법에 맞는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즉, 개복 수술 전문의에게 로봇 수술을 맡기면 아무래도 질이 떨어지지 않겠나.

냉장고 발명 후 미국에서 위암 발병률이 감소했는데 실제로 관련이 있는가?

1930~40년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암이 위암이었다. 하지만 냉장고의 등장으로 20년 만에 발병률이 급격히 낮아졌고 현재는 10대 암에 들지도 않을 정도로 위암 환자가 없다. 이 때문에 신선한 음식이 위암 발생을 줄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서도 냉장고를 사용하지만 위암 발생이 줄어들지 않았다. 냉장고, 즉 신선한 음식과 위암 발생 사이에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시점이다.

짠 음식과 헬리코박터 균 등 환경적 요인이 위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전적 요인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연구 진행 정도는 어떤가?

위암에는 환경적 요인이 유전적 요인보다 2배 정도 많다. 상대적으로 중요성은 떨어지지만 유전적 요인도 위암의 원인임에 틀림없다. 위장 점막세포가 조기 위암으로 변하는 데 4~18년 정도 걸린다. 또 조기 위암이 진행성 위암으로 바뀌는 데 약 4년이 걸린다. 이렇게 변하는 과정에서 유전자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것으로 본다. 어떤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진행 중이다. 한 예로, 세포와 세포를 연결하는 유전자(이-케드헤린)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위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을 대상으로 한 결과여서 한국인에게도 적용될지는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위암 치료 성과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선 배경은 무엇인가?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일본을 제치고 위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다. 그만큼 위암 환자를 치료하는 기술이 축적돼서 치료 성과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한국 의사들의 손기술이 좋아서 수술 로봇을 다루는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미국에서 로봇을 만들었지만 그 로봇으로 수술하는 법은 한국에서 만들었을 정도다. 세계 최고 암센터로 꼽히는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의 수술 후 사망률이 2%인데, 한국의 수술 후 사망률은 0.5% 정도다. 이런 까닭에 일본·미국 등 의료 선진국 의사들이 위암 치료나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의료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과 일본이 유독 위암 분야에서 한국에 뒤진 까닭은 무엇인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본에서 치료법을 배워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역전되기 시작했다. 일본도 위암 환자가 많지만, 환자들이 임상시험에 잘 응하지 않아 의술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위암이 한국처럼 많지 않아 치료 기술이 축적되지 않았다. 중국도 위암이 흔한 나라이지만, 인구가 워낙 많고 지역이 넓어서 추적 관리·검사를 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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