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지만, 왕이 아니로소이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05.15 10: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유럽의 왕실들 경제난과 부정부패 따른 비난 여론도

대학원에서 중세 독일문학을 전공하는 크리스티아네 에델만은 매주 유럽 귀족 전문 잡지 <아델 악투엘>을 사 본다. 유서 깊은 가문의 여성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누가 어떤 스캔들에 휘말렸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주변 친구들은 그녀가 <아델 악투엘>을 즐겨 본다는 얘기에 “농담하지 마라”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유럽 왕실과 귀족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사뭇 진지하다. “왕실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델만은 특히 왕족과 귀족들의 전통에 관심이 많다. “독일에는 왕실이나 귀족이 없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외국 왕실 사람들이 흥미롭다”고 말하는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물론 귀족 여성들이 쓰는 화려한 모자에도 관심이 많다. 나는 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유럽에서는 대의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지만 노르웨이·네덜란드·덴마크·룩셈부르크·벨기에·스웨덴·스페인·영국 등 일부 국가에는 여전히 왕실이 남아 있다. 현대 유럽의 왕족은 정치적 권한이 없는 상징적 인물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거대한 팬덤을 누리고 있다.

대중의 관심은 오로지 ‘왕실의 젊은 여성’

특히 영국 왕실에 대한 관심은 유럽 전역에서 뜨겁다. 지난 2011년 4월 거행된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의 결혼식은 유럽의 지상파 방송사들이 동시에 생중계할 정도였고, 음식점들은 앞다퉈 중계방송 단체 관람과 식사를 묶은 기획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월드컵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이런 현상을 놓고 언론들은 왕실의 힘을 재평가했다. 당시 독일의 주간지 <디 차이트>는 “왕가의 식구들은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그 어떤 정치인보다 더 사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대로 룩셈부르크 출신 파비엔 길버츠는 이러한 왕실의 인기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대중이 결혼식이나 옷차림 등 왕실 문화의 일부만을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들은 단순히 대리만족을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길버츠 씨는 “여성들이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낭만적인 현실이 실존한다는 점 때문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 도피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어느 국가의 어느 왕가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젊은 여성, 특히 ‘공주’나 ‘왕비’에게 쏠린다. 4월30일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이 33년간의 통치를 마치고 아들 빌렘 알렉산더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1890년 빌렘 3세 왕이 사망한 후 이어져온 여왕 통치 시대가 막을 내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날 대중의 시선은 75세의 여왕도, 123년 만에 탄생한 왕도 아니었다. 막시마 초레귀에타 왕비만이 주목받았다. 왕실 가십 잡지는 물론 유럽의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막시마 왕비를 중심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예를 들면 베아트릭스 여왕과 막시마 왕비의 스타일을 비교하는 식이다. 왕위 승계의 정치적·역사적 의의는 후순위였다. 라이프스타일과 왕비 탄생의 서사가 보도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유럽 왕실은 주로 신문 가십 란에 등장한다. 하지만 때때로 현실 정치와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2008년 12월 룩셈부르크 의회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헌법상 의회의 결정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도록 돼 있는 헨리 1세 대공이 인준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도덕적 신념과 어긋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룩셈부르크에서 대공이 법안의 서명을 거부한 시기가 1912년이었으니 100년 만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스페인 왕실, 경제난에도 코끼리 사냥 빈축

룩셈부르크 의회는 ‘대공이 법령을 최종 승인한다’는 헌법 문구를 삭제하고 ‘공포한다’로 수정했다. 대공은 법령에 대한 권한은 상실하고 공포할 권한만 갖게 되었고, 헌법 수정 이후 안락사 허용 법안은 통과됐다. 50센트짜리 룩셈부르크 동전에 새겨진 헨리 1세 대공의 얼굴만이 현실과의 유일한 접점으로 남았다. 길버츠 씨는 “그나마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룩셈부르크 동전은 자취를 감췄다. 안락사 논란 때 왕실이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내린 결정을 ‘상징’에 불과한 인물이 가로막을 수 있다는 데 놀랐다”고 회상했다.

헨리 1세와 달리 대다수 유럽 왕족들은 현실 정치 문제에 연루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2002년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왕자와 막시마 초레귀에타의 결혼은 당시 정치적 논쟁을 일으켰다. 막시마의 아버지인 호르헤 초레귀에타의 경력 때문이었다. 그는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네덜란드 의회는 논쟁 끝에 “신부의 아버지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결혼에 동의했다. 군사 독재 정권의 유력 정치인이 네덜란드 왕실의 일원으로 등장할 경우, 왕실의 품위가 실추될 수 있고 자칫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호르헤 초레귀에타는 지난 4월 열린 사위의 대관식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왕가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 왕실은 ‘평민 며느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바란다. 안나 고메즈 알바레즈는 스페인 출신이다. 스페인에도 왕실이 존재한다. 그녀는 “왕조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특히 민주적으로 자란 스페인의 젊은 세대 중에는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왕실의 필요성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스페인 왕실이 신뢰를 잃은 이유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부정부패 의혹과 스캔들 때문이다. 지난해 초 스페인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코끼리를 사냥하고 기념 촬영을 해 국내외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사위인 이냐키 우르당가린이 한 아동복지재단의 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법원 출두를 면제받았고, 해외로 도주할 가능성이 큰데도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해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게다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스페인의 경제 위기는 스페인 왕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왕족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아프리카에 사냥을 가고 수백만 유로를 스위스 은행에 빼돌렸다는데 누가 좋아하겠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꼭 경제난 때문이 아니더라도 알바레즈는 왕가의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오늘날 더는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왕실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는 “스페인 왕자비인 레티치아는 결혼 전 저널리스트로 일했지만 결혼 후에는 남편의 들러리만 서고 있다. 그녀 개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의 여론조사 기관인 메트로스코피아가 지난 4월 중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처음으로 스페인 국왕의 통치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찬성한다’는 응답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화 같은 현실을 더는 믿지 않는 국민이 많아진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