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계급의 야바위 노름은 가라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5.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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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다시 쓴다> 펴낸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아이를 가진 엄마들에게는 동화작가로 잘 알려진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70). 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가 철학을 다시 썼다. 오래전에 철학 전문지에 기고했던 연재 글과 2008년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강의했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철학을 다시 쓴다>인가 물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와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철학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자리에서다.

“쉬운 우리말을 놔두고 힘 있는 사람들이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어려운 말로 ‘이게 철학이다’라고 말해왔다. 교수나 언론이나 모두 그래 왔으니 누가 철학을 제대로 배우고 익혔겠나. 그래서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철학을 풀어 썼다.”

윤 작가는 어려운 말을 쓰는 교수나 언론인을 ‘식민지 지식인’이라고 일컬었다. 꼭 써야 할 말을 없애버리고 힘센 나라에서 빌은 필요 없는 말을 쓰는 데 대한 비판이다. 그는 “정신노동자가 육체노동자를 속이고 겁줘서 그 사람들 몫을 가로채려 정보 소통에 인위적 난관을 조성한 혐의가 물씬 풍긴다. 특권 계급이 자기들끼리 정보를 독점하려 한 야바위 노름의 속임수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1976년 <뿌리 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 시절부터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에 이르기까지, 40년 가까이 우리말을 바르게 되살리는 일에 애써왔다. 그런 그인지라 강단에서 흔히 쓰는 ‘존재’나 ‘무’ 같은 말 대신 ‘있음’과 ‘없음’이라는 우리말로 서양 존재론을 새롭게 해석했다. “어른들은 열 마디 말을 할 때 필요 없는 아홉 마디를 하는데, 아이들은 필요 없는 말을 안 한다”며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철학 이론을 펼쳤다. 서양 철학 이론에 기대지 않고 우리 땅에서 우리말과 우리 생각으로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줬다.

ⓒ 시사저널 전영기
있을 것 있고 없을 것 없는 곳이 좋은 세상

윤 작가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려움에 부딪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거야’ 하고 공유하는 생각이 철학이다. 교양을 쌓을 목적이라면 철학을 배울 생각을 하지 마라. 철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싹 버려야 한다”고 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철학은 뿌리를 찾고 까닭을 캐는 학문이다. 그러자면 가장 큰 하나부터 가장 작은 하나까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끈질기게 논증 과정을 펼치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끝까지 왜냐고 따지고 물어서, 그 뿌리를 찾고 까닭을 캐는 것이 철학의 본질이다.

그의 강의는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좋은 세상’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좋은 세상을 앞당기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통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있을 것이 무엇이고, 없을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 있으면 얼마나 있고, 없으면 얼마나 없느냐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보수주의가 좋으니 진보주의가 좋으니, 수구니 개량이니 혁신이니 혁명이니 다투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참과 거짓이 쉽게 가려지고 좋음과 나쁨이 뚜렷이 드러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것이다. 억압, 착취, 탐욕, 전쟁, 증오, 이기심 등은 모두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없을 것, 또는 없애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있어야 할 것과 없앨 것을 가리는 것은 ‘비판의식’이다. 윤 작가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의식으로 무장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야 하고,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 교육은 그렇지 않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모든 일에는 하나의 정답밖에 없다는 식으로 세뇌가 됐다. 그런 교육 환경에서는 비판의식을 가지기는커녕 있을 것과 없을 것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까지 오로지 돈 많이 버는 것을 유일한 가치인 양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윤 작가가 대안 교육에 관심을 갖고 변산공동체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다.

“좋은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자유, 평등, 공정, 우애, 관용이 꼭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없다면 가꿔내거나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창조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비판의식과 창조의식이 꼭 필요한 것이다. 획일적인 교육이 이걸 막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교육의 궁극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 사람도 대대로 살아남아야 하니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둘째, 사람이란 서로 도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인 만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알게 해야 한다. 그는 “삶터와 일터가 하나이던 시대가 저물면서 교육의 비극은 시작됐다. 배움터는 삶과 일과 밀착해 있어야 참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경험 나눠야 

윤 작가는 1943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위로 형이 여덟 있었는데 가장 큰 형의 이름은 일병이고, 아홉 번째 막내로 태어난 그는 구병이 되었다. 구병은 공부를 제법 했으나 말썽도 많이 부리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칠순을 넘겼지만 어린이 책 기획자로서 열정은 그대로다. 윤 작가는 보리출판사 대표로서 한국 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일러주는 전집형 어린이 백과사전을 만드는가 하면, 번역서가 판치던 유아 그림책 시장에 한국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을 담는 창작 그림책 시대를 열었다. 그를 동화작가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해오는 사람도 늘어났다.

“꽃은 피라고 강요한다고 피지 않는다. 스스로 그러하니까, 그것을 자연이라고 한다. 하는 것도 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아이를 그렇게 자라나게 하고 있나? 어린 시절 행복을 맛보지 못한 아이는 자라서도 행복을 맛보지 못한다. 끝까지 살아서 지켜주지도 못할 것이면서 통제하고 간섭하는데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겠나. 작은 것에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행복을 느끼는 경험을 많이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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