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을사조약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05.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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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창간 직후의 일입니다. 편집국에 두 가지 지침이 내려졌습니다. 첫째 ‘촌지를 받지 마라’, 둘째 ‘취재원에게 밥을 얻어먹지 마라’. 대신 회사에서는 취재에 필요한 밥값이나 품위 유지 비용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시사저널>이 촌지 거부나 취재원 식사 대접을 행동 강령으로 삼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자들의 어깨에 들어가 있는 힘을 빼자는 것입니다. 부정한 돈이나 식사 대접 받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다 보면 자칫 인정에 이끌리고 기자로서의 사명감이나 근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이른바 ‘갑(甲)’의 함정에 빠지면 처신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갑을’ 논쟁이 시끄럽습니다. 계약의 주체인 ‘갑’이 피계약자를 일컫는 ‘을(乙)’에 대해 부당한 처사를 일삼는 행위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갑의 횡포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대리점주를 끝내 죽음으로까지 내몬 물량 밀어내기 논란이나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내 소동 등 세칭 사회 지도층(사회가 정말 그들의 지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소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른바 갑들이 일으키는 ‘갑자사화(甲者事禍)’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방미 중 성추행 사건도 엄밀히 따지면 ‘갑’의 횡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약자에 대한 억누르기 혹은 괴롭힘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힘없는 대리점 업주에게 극단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자기 밑에서 일하는 연약한 인턴 직원에게 지위를 이용해 몹쓸 행위를 하는 것이나 모두 스스로 ‘갑’이라고 여기는 데서 나오는 만용과 기고만장의 결과입니다. 배려 없는 인성이 만들어낸 천박한 ‘막장 극장’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기업에서 하청업체, 재하청업체로 이어지는 관계처럼 강자의 탐욕과 약자의 비명으로 얼룩진 먹이 사슬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을사조약(乙을 죽이는 계약)’이라고 일컬어지는, 강자가 살기 위해 혹은 강자의 자기만족을 위해 을을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이 불평등 계약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위압이 위압을 재생산하고, 불만이 불만을 재창출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궁극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입니다. 갑과 을의 대립은 사회의 생산성만 무한정 떨어뜨릴 뿐입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는 한 중소기업인이 해외에 나갔다 들어오면 서 ‘GA?’라는, 우리말로 읽으면 ‘갑’이 되는 유명 브랜드의 옷을 수십 벌 사왔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옷이라도 입어 ‘갑’의 느낌을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 기업인의 사연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을’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죽는 ‘갑론을박’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갑은 갑끼리 ‘밀어주기’를 하면서 을을 향해서는 ‘밀어내기’를 일삼는 나라는 캄캄합니다. 상생의 청사진 없이는 미래가 없습니다. 모두가 함께 손잡고 미래로 가는 나라를 만들려면 우선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갑’이라는 권위와 압력의 깔창을 빼내고 을과 똑같이 키를 맞추어야 합니다. 상생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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