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웃음
  • 김선우 | 시인 겸 소설가 ()
  • 승인 2013.06.18 13: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두고 ‘악의 평범성’을 개탄할 때, 그 악의 근원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있다. 한국의 정치판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많은 아이히만이 있다.

강제 폐업된 진주의료원에 대한 국회의 ‘공공의료 국정조사 특위’가 7월13일까지 가동된다고 한다. 국정조사를 하기로 한 건 다행한 일인데, 왜 내 마음은 이렇게 찌뿌듯할까. 뭔가 미덥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성 없이 하나 마나 한 형식적 조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으며, 내용 없는 시간 끌기 절차들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번 특위의 위원장인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진주의료원 폐업 과정을 종합 검토하는 등 지방의료원 운영 전반을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두루뭉술한 ‘종합 검토’의 수준에서 멈추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작 문제가 불거진 ‘바로 그곳’을 어물쩍 덮어버리고 ‘지방의료원 운영 전반’의 일반론만 펼치다가 특위 활동 기간을 채우는 일일랑은 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를 보면서 여러 번 속이 상했다. 환자들과 시민들이 반대하고 의료원의 중요 구성원인 직원들이 눈물로 호소해도, 힘 가진 한 명의 독선이 그대로 관철돼버리는 그 과정 어디에 ‘민주주의’가 있단 말인가. 설마 의회를 통과하면 민주주의 절차를 밟은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당의 도지사와 도의원들에 의해 날치기 통과된 진주의료원 폐업 과정. 거기에는 독단적 권력의 힘이 상식을 장악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이 잊히지 않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도청 회의실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에 따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웃고 있는 사진. 그토록 밝은 웃음의 기괴함이라니! 직접적인 사인이 무엇이든 폐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퇴원당한 환자들이 여러 명 숨졌다. 쫓겨난 지 하루 반 만에 사망한 환자도 있다. 퇴원한 환자들의 80% 이상이 공무원과 의사들에게 퇴원을 종용받아온 것으로 드러났고, 퇴원 환자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던 경남도청의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도지사가 폐업을 발표하며 보인 저 웃음은 뭐랄까, 이런 비유를 할 수 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아이히만을 떠오르게 했다.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당장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저 웃음. 수렁 같은 웃음. 삶에는 최소한 웃어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듯한 무지한 웃음. 그런 웃음은 자기의 행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라야 웃을 수 있는 그런 종류에 가까워 보이므로, 거기에 아이히만이 겹쳐온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두고 ‘악의 평범성’을 개탄할 때, 그 악의 근원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있다. 한국의 정치판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많은 아이히만이 있다.

공공의료기관은 돈을 벌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홍준표 지사가 밝힌 폐업의 근거는 ‘적자’인데, 공공의료기관이 적자 때문에 폐업한다는 것은 ‘공공’의 의미를 망각한 어불성설이다. 유럽의 몇몇 복지국가들처럼 모든 국민이 주치의를 갖지는 못하더라도,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국민은 없어야 한다. 한 사회에 공공재가 존재하는 이유는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권을 위한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