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지 싱거운지 간을 봐야지
  • 차윤주│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6.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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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안철수’ 의정 50일…기존 정치인과 ‘차별화’ ‘임팩트’ 없어

“우리는 어항 속 금붕어다.”

최근 기자와 만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한 측근은 안 의원과 자신들의 처지를 이렇게 빗댔다. “사람들이 일거수일투족을 다 들여다보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스럽다”는 의미였다. 한 달 전에 만났을 때 그는 “6월까지 우리는 개학을 앞둔 학생”이라고 했다. “방학 동안 숙제 수십 개를 받아들고 개학날 검사받는 것처럼 모든 것을 준비해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새 정치 출발선에서 법률안이나 인재 영입 등을 맹렬히 준비하겠다는 의욕과 기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4·24 재보선 당선 동기인 새누리당 김무성(가운데)·이완구(오른쪽),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6월17일 오찬 회동을 갖기 전 손을 맞잡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안철수 발언들, 여전히 모호하고 선문답 같아

안철수 의원이 확 바뀌었다. 신중해졌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일부는 안 의원이 “간을 본다”고도 한다. 지난 4·24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지 50여 일이 지난 지금 ‘정치인 안철수’의 변화된 모습이다.

하루하루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새누리당·민주당 전체에 뒤지지 않는 대접을 받는 안 의원이다. 안 의원의 한 측근은 “조간신문에 나가는 비중이 새누리당 3분의 1, 민주당 3분의 1, 우리 3분의 1 정도인데, 의원 둘(안철수·송호창)이서 그 면을 다 채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급을 자칭한 행보치고는 안 의원의 움직임이 너무 조용한 감도 없지 않다. 적어도 전직 유력 대선 주자라면 한마디 말이나 움직임에서 임팩트를 줘야 한다. 그런 모습에서 국민들로부터 “음~ 역시!” 하는 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래 안 의원 스타일이 그런 탓이기도 하다. 주변의 전언이 그렇다. 안 의원은 저녁 모임을 잘 하지 않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주 특별한 일정이 아니면 오후 9?10시에 일과를 끝내고, 새벽형 인간도 아니어서 오전 8?9시는 돼야 일정을 시작한다.

50여 일 만에 윤곽을 드러낸 안 의원의 정책 네트워크 ‘내일’도 아직 물밑 태동 단계다. ‘내일’은 6월11일 열린 출범 심포지엄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토대로 한 중도 좌파적 이념 노선을 표방했다. 거대 여야 중심의 ‘단원주의’를 극복하고 대안 정당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국민 눈높이에 와 닿지 않은 선문답 같은 수준이다.

이날 심포지엄장에서 기자는 문득 한 사람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대선 직후 미국으로 떠났던 안 의원이 올 3월 재보선을 앞두고 귀국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만난 그의 대선 캠프 실무진 중 한 명의 말이었다. 그는 대선 후보를 문재인 민주당 의원에게 양보한 뒤 안 의원과 핵심 측근들이 논의한 향후 정치 활동 시나리오라는 것을 들려줬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6월16일 서울 북한산 둘레길에서 대선 당시 출입기자들과 등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문재인·YS-DJ처럼 애증 관계로?

내용은 이랬다. 도미할 때 안 의원은 4·24 재보선에 출마한다는 계획을 이미 갖고 있었다. 측근들은 안 의원에게 “반드시 서울에서 출마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서울이라야 전국 정당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계속해서 “재보선에 당선되면 안 의원은 연구소를 만들어 사람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했다. 당장 신당을 만들 수 없는 처지에서 대중에게 오픈된 싱크탱크를 만들어 인재풀을 늘리고 이슈 토론을 이끌겠다는 복안이었다. 다가올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이 어떻게 처신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연구소 설립까지는 ‘예고’대로 진행된 상태다.

정치인 안철수의 종착점은 분명하다. 친박계 한 핵심 의원이 “별짓을 다 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6월17일 김무성·이완구 새누리당 의원과의 ‘재보선 동기 모임’ 이후 안 의원은 ‘5년 뒤’란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은 한때 적장이었던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과 ‘공유’ 의식을 유난히 강조하면서도 한편을 먹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소주 회동’ 제의에 대해서는 시큰둥, 옥신각신했다. 두 번 실패를 막기 위해 어항 속에 새 물을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다. 문 의원도 슬슬 기대를 접는 분위기다. 자숙을 끝낸 그도 나름의 활동을 재개하며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문 의원은 6월16일 취재기자들과 함께한 산행에서 그동안 속으로 삭혔던 말들을 토해내며 워밍업을 했다. 역대 대선을 보면, 1000만표 이상을 얻은 대권 패배자가 다음 대선에 재도전하지 않은 사례는 없었다. 안 의원과 문 의원이 과거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관계처럼 애증 관계로 변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치밀한 안 의원이지만 분명한 한계도 엿보인다. 일단 새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기존 정치인과 차별화된 ‘낯섦’이 없다는 말이다. 안 의원이 말한 진보적 자유주의부터가 그렇다. 손학규·유시민 전 의원이 이미 써먹은 용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싱크탱크를 정치 세력화의 전초기지로 삼은 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배다. 1992년 정계 은퇴 후 영국으로 떠났다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재단)을 출범시켰다. 아태재단은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의 모태가 됐다.

실망도 뒤따른다. 신중함을 넘어 보신주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안 의원이 전병헌 원내대표에게 인사 왔을 때 공공의료 국정조사단에 넣어준다고 했더니 ‘송호창 의원과 상의해보겠다’고 미루더라. 그러더니 결국 안 한다고 하더라”며 “사람이 주관이 없어 보이고 뒤에서 간만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으로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해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안 의원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자는 국정조사에 민주당이 한 자리를 양보해준다고 했는데도 마다했다. 안 의원측이 “민주당이 덫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런 안 의원을 “반(反)정치로 기대를 얻었지만 이제 더는 거기에 기댈 수는 없는 게 안 의원의 한계”라고 꼬집었다.

물론 ‘5년 뒤’를 내다보는 사람에게 50일은 별 의미 없는 숫자일 수 있다. 정치인 안철수는 2017년 12월을 향한 긴 여정에서 겨우 첫발을 뗐을 뿐이다. 다만, 국민은 어항 속 금붕어가 잉어가 되고, 또 그 잉어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지, 좁디좁은 그 어항에서 무기력하게 부유하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볼 따름이다. 대통령은 그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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