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굼뜨니 안방 다 내 주지
  • 정덕현│ 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6.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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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종편 협공에 시청률 떨어지는 지상파 TV

JTBC의 한 고위 관계자는 비공식 자리에서 “하반기에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의 행보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손석희 사장이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점은 예견된 것이다.

보수 언론이 정체성 문제로 대중의 벽을 실감했던 종합편성 채널(종편)들로서는 JTBC의 행보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언론인 손석희씨가 JTBC에 영입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JTBC가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여전히 백안시하는 눈들이 있다. 살아남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지 실제 달라질 건 없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JTBC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늘 종편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정통성 문제에 대해서도 JTBC는 여타의 종편들과는 다른 입장을 일관되게 보였기 때문이다.

(위)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인 를 필두로 등 케이블·종편 프로그램(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이 지상파 시청률을 넘보고 있다. ⓒ JTBC·tvN 제공 (아래) 지상파 대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위)와 . ⓒ MBC·KBS 제공
JTBC의 <무자식 상팔자> <썰전>의 선전

JTBC는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사라졌던 TBC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탄생한 여타 보수 언론들의 종편과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지난 대선 때 다른 종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과도한 막말로 논란이 되곤 했던 윤창중 전 대변인 같은 인물을 출연시켜 이른바 ‘보수 장사’를 했을 때도 JTBC는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대선은 시청률 저하로 어려움을 겪던 종편들에게 1% 정도의 보수 지지층을 확보해줬다고 평가되고 있다. 또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 적극적으로 지상파와 케이블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MBN의 <황금알> 같은 집단 토크쇼는 대표적인 종편형 상품이다.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상은 전문가들이 벌이는 예능에 가깝다. 종편으로서는 2%의 시청률을 낸 이 형식이 말 그대로 ‘황금알’로 보였던지, 지금은 모든 종편에서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종편의 틈새 공략에서 가장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 역시 JTBC다.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는 무려 10%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히든싱어> 같은 프로그램은 4%의 시청률을 내면서 지상파 프로그램들과 비교되기도 했다.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유자식 상팔자>도 4%대의 시청률을 내고 있다.

무엇보다 JTBC의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프로그램은 <썰전>이다. 이 시사 토크쇼는 대단한 시청률을 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JTBC의 정치적 중립성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종편에서만 할 수 있는 틈새 아이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듯한 두 정치적인 인물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웃음으로 버무리는 시사 토크쇼 <썰전>과 지상파의 예능 전체를 대상으로 일종의 비평을 시도하는 <예능심판자>의 조합은 JTBC가 종편이기 때문에 가능한 아이템이다. 종편들 중 TV조선과 채널A가 보수 장사에 몰두하는 반면, JTBC는 이들과 거리를 두며 지상파에 가까운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정체성이나 프로그램 편성 모두에서 그렇다.

케이블TV는 확고하게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냈다. 먼저 <슈퍼스타K>가 케이블과 지상파의 벽을 허물었다. <응답하라 1997> <보이스 코리아> <푸른 거탑> <SNL코리아> 같은 일련의 프로그램은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워 케이블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케이블이 먼저 만들어내면 지상파가 그 형식을 따라 만든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는 CJ 계열 케이블 채널들을 중심으로 한 케이블들의 콘텐츠 경쟁력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상파는 어떨까. 한때는 특권이라고까지 여겨졌던 지상파의 위상은 추락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상파 시청률은 다양한 뉴미디어가 TV라는 올드미디어를 밀어내고 케이블과 종편이 콘텐츠 경쟁력으로 압박해오면서 반 토막이 난 상태다.

사극은 한때 50% 시청률을 보장하던 장르였지만 지금은 20%를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현대극이 15%를 넘기면 대박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최고다 이순신> <백년의 유산> 같은 주말극이 있지만 출생의 비밀 코드와 자극적인 설정의 막장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지상파 드라마의 퇴행적인 면을 말해줄 뿐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더 상황이 악화됐다. 주중 밤 11시대에 포진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 10%를 넘기가 요원한 상황이다. <놀러와> 같은 장수 프로그램이 폐지됐고, 한때 새로운 토크쇼로 각광받았던 <무릎 팍 도사>는 강호동의 복귀에도 시청률이 2~3%까지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인 주말 예능들은 무려 두 시간에 가까운 파격 편성에도 15% 시청률 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니 2~4% 시청률을 내는 종편과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지상파가 부진한 틈으로 종편과 케이블이 뚫고 들어오는 형국이다.

이렇게 된 데는 지상파 제작 책임자들의 안이한 대처가 한몫했다. <1박2일>(시즌 1) 같은 프로그램이 10% 시청률을 내고 폐지된 후 새 예능 프로가 나오지 않는 것은 제작 책임자들이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기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유명 MC 섭외에 목을 맨다는 것이다.

지상파, 기득권 포기·새로운 시도 어려워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 저하는 잘못된 시청률 추산 방식이 야기한 측면도 크다. 지금처럼 모집단을 TV 본방을 본 사람으로 한정해 시청률을 추산하는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다. 프로그램을 TV 앞에서 그 시간대에 맞춰 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보고, 또 지나간 방송을 IPTV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롭게 보는 시청 패턴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들의 시청 패턴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의 시청률 추산은 결과적으로 지상파 콘텐츠를 기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지금의 시청률 집계 방식 때문에 중·장년 세대에 맞춘 콘텐츠들이 양산된다는 것이다. 이미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이런 경향이 짙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공영성 때문에 지상파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종편이나 케이블이기 때문에 가능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JTBC의 <썰전>, 19금과 정치 시사를 묶어낸 tvN의 <SNL코리아>가 그렇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지상파에서라면 당장 공영성 논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종편이나 케이블은 으레 그런 것인 양 넘어가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역차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상파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잣대가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상파 프리미엄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금은 지상파이기 때문에 오히려 못 하는 것이 많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지상파는 기득권을 포기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굼뜰 수밖에 없다. 이 틈을 타고 케이블은 이미 상당한 위치를 확보했다. 종편도 조금씩 세를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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