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민어회는 어부를 모독하는 것
  •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7.0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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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숙성해야 최고의 맛…어획량 줄어 귀한 생선 대접

여름이다. 복날이면 또 난리가 날 것이다. 한국인이면 꼭 먹어야 하는 복날 음식이 있고, 이 음식을 내는 식당 앞은 난장이 될 것이다. 삼계탕집이 제일 북적일 것인데, 싸고 누구나 즐기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장어집도 있다. 장어 가격이 너무 올라 예전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산 장어가 수입된다 하니 그 맛이며 가격이 어떨지 궁금하다. 콩국수도 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의 처지에서는 시장 좌판에서 들이키듯 먹는 시원한 콩국수가 더위를 식히는 데 제격이다.

민어가 서울 양반의 복날 음식?

복날 음식으로 여기까지 알면 그냥 보통의 한국인이다. 한 입맛 한다 싶으면 하나 더 읊어주어야 한다. 바로 민어다. “서울 양반들은 말이야, 복날에는 민어탕을 먹었어. 개장국은 천한 것들이나 먹는 것이고. 여름이면 민어를 먹어줘야지.” 민어탕·민어회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내용은 다 안다. 어쩌다가 민어는 서울 양반들의 여름 별식이 된 것일까.

민어는 배에서 잡자마자 아가미 밑의 물렁뼈를 눌러 피를 빼고 비닐에 담아 갑판 밑 얼음 창고에 넣는다. 그러면서 숙성된다. ⓒ 황교익 제공
민어를 복날 음식처럼 여기게 된 것은 여름에 민어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서울 양반들이 민어를 복날 음식으로 여겨 여름에 특히 민어를 많이 잡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민어는 여름이면 황해에 가득했는데, 남쪽의 전남 해안에서부터 북쪽의 압록강 입구까지 바글바글했다. 황해의 여러 어항에는 여름 민어 파시(波市, 바다 위 생선시장)가 열렸다. 그러니 황해를 접하고 있는 어느 지역에서든 여름이면 민어를 먹었다. 복날이라 민어를 먹은 것이 아니라 여름에 많이 잡혀 민어를 먹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에서도 이를 가져다 먹었다.

1970년대 이후 민어가 이상해졌다. 전남 남쪽 바다 정도에서만 머무르고 그 위로 올라오는 양이 확 줄었다. 조기와 비슷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민어는 조기와 같은 민어과 생선이다. 생김새가 비슷하고 생식 활동과 회유 경로도 유사하다. 조기는 제주도 인근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서서히 황해로 북상해 멀리 발해만까지 올라간다. 민어는 조기보다 몇 달 늦게 북상한다. 조기가 ‘황해의 봄’을 알리는 생선이라면 민어는 ‘서해에 여름이 왔음’을 알린다 하겠다.

민어는 서해의 여름 바다에서 산란을 하고 찬바람이 불면 다시 제주 근처의 바다로 내려간다. 그런데 민어든 조기든 근래에 북상하는 어군이 많지 않다. 신안 앞바다 정도에서 멈추고 만다. 그러니 민어가 귀하고 비싸졌다. 민어를 두고 서울 양반 복날 음식이라 여기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귀해지니 옛날에도 그랬을 것이라 여기게 되고, 그 귀한 것을 먹으려면 조선에서는 서울 양반 정도는 돼야 먹을 수 있겠다 착각하게 된 것이다.

①민어굴비. 바짝 말린 민어를 찐 것인데, 살이 깊어 촉감이 좋다. ② “어제 막 신안에서 올린 민어에요.” 숙성이 덜 되었다. ⓒ 황교익 제공
서울에서는 민어탕 즐겨

옛날에 민어가 흔했을 때, 황해의 여러 지역 사람들처럼 서울 사람들도 민어를 넉넉하게 먹었을 것이다. 서울의 것은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민어일 터인데, 인천 앞바다에도 민어 파시가 섰다. 서울에서는 특히 민어탕을 먹었다 한다. 옛날의 물류 사정으로 보아 민어회를 먹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민어탕도 지금의 민어탕처럼 싱싱한 민어로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염장해서 꾸덕하게 말린 민어로 끓인 탕이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옛날 서울 사람들은 어떤 민어를 먹었을 것인지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민어가 잡히는 계절이 여름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마 기간도 포함돼 있다. 이런 날씨면 민어는 갑판 위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 생선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얼음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피를 빼는 것이다. 피는 생선이 죽자마자 바로 상하기 때문이다. 피를 잘 빼자면 살아 있을 때 아가미 밑을 찔러야 한다. 민어잡이 어선 주변으로 바다가 붉게 물들었을 것이다. 그 다음은 내장을 제거해야 한다.

바닷물에 씻어 그대로 말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른 계절이면 몰라도 여름이면 이도 어렵다. 염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염장을 해 말리는 작업이 아예 배 위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것이면 그 배로 곧장 한강을 거슬러 마포나루까지 올라왔을 수도 있다. 마포나루에서 우마차에 싣고 애오개 넘고 정동고개 넘어 종로 시전으로 운송됐을 것이다. 인천 앞바다에서 잡힌 민어가 종로 시전까지 오는 데 아무리 빨라도 사흘은 걸린다. 그런 민어를 서울 사람들이 먹었다.

염장한 것이니 회로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다. 회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여름이니 운송 중에 파리가 알을 깔 수도 있고 상한 냄새를 풍길 수도 있다. 굽거나 끓이거나 찌거나 하는 조리법으로 이를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꾸덕하게 말린 민어는 굽거나 찌면 참 맛있다. 그럼에도 서울 사람들은 탕을 선택했을 것인데, 조금의 민어로 여러 사람들이 즐기자면 탕이 으뜸이기 때문이다. 또, 민어가 짰으니 탕이 적당할 수도 있다. 서울의 민어탕은 그 정도의 음식이었던 셈이다.

근래에 복날 음식으로 민어가 이름을 얻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활민어회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민어는 수조에서 잘 사는 놈이 아니다. 억지로 살려 이를 바로 잡아 회를 쳐 먹는다. 방송 때문이다. 여름이면 방송에 꼭 이런 장면이 나온다. 그림은 좋을지 모르겠으나 이건 민어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절대 아니다.

한국인의 잘못된 음식 습관 중 하나가 ‘활어회 신화’다. 생선은 죽자마자 사후 경직이 일어난다. 그래서 활어회는 생선의 살이 질기다. 한국인은 이를 두고 “싱싱해 쫄깃하다” 하는데, 질기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생선은 피를 뽑고 덩이 살로 발라낸 후 섭씨 5도 정도의 온도에서 숙성을 해야 살이 탄력 있고 차지게 된다. 또 숙성하는 과정에서 생선살에 이노신산이 만들어져 감칠맛이 더해진다.

민어 맛을 아는 황해의 어민들은 민어의 덩이 살을 랩으로 돌돌 말아 냉장고에 두고 몇 날 며칠을 먹는다. 3일째가 제일 맛있다는 말도 있고 일주일까지는 맛있다는 말도 있다. 활민어를 바로 먹는 일은 민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민어를 애써 잡은 어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어제 막 신안에서 올린 민어예요”라며 자랑스럽게 내놓는 숙성 덜 된 민어회를 앞에 두고 있자니 어찌 보면 우리 조상들이 민어를 더 맛있게 먹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입맛이 쩝쩝 다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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