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싸우고 침묵과 투쟁한다
  • 미국 샌안토니오=이민규│중앙대 신방과 교수 ()
  • 승인 2013.07.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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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세계탐사보도총회 참관기…국제 협력과 서사적 탐사가 화두

1976년 애리조나 리퍼블릭(Arizona Republic) 신문기자였던 돈 볼레스(Don Bollas)는 취재 권역인 피닉스를 넘어 뉴욕·시카고·디트로이트 지역과 연계된 조직범죄, 그들과 연결된 마약 관련 정치 스캔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내 한 호텔에 취재원을 만나러 가면서 당한 차량 폭발 사고로 며칠 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폭발물 때문이었다.

볼레스 기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탐사보도협회(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 미국 전역의 23개 신문사에 있는 수십 명의 기자는 피닉스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볼레스가 미처 끝내지 못했던 작업을 계속해갔다. 결국 애리조나 주 전체에 만연하고 있던 부정부패를 해결하게 된다.

2013 세계탐사보도총회 모습과 키노트 스피커로 나선 멕시코의 마르셀라 투라티 기자. 이민규 제공
“멕시코에서 탐사보도 기자 수십 명 살해”

매년 탐사보도협회가 주관하는 연차 총회는 이처럼 숭고한 정신을 담고 있다. 올해는 6월19일부터 23일까지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샌안토니오(San Antonio)에서 열렸다. 세계 1200명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모여 탐사보도의 현재와 미래의 협력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상호 연대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이번 탐사총회의 하이라이트인 탐사보도상 시상식에는 키노트 연사로 멕시코의 전설적인 여기자 마르셀라 투라티가 초청됐다. 그와 함께 참석자들은 탐사보도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투라티는 “멕시코에서는 지난 10년간 최소 17명의 언론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72명에 달하는 탐사보도 기자들이 살해당했는데 어느 한 사건도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서 마약을 취재하는 탐사보도 기자는 종군기자처럼 행동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표면적으로는 마약에 연루된 조직폭력 세력이 언론인을 납치·감금·고문하고 살해하지만 그 뒤에는 부패한 정부 관료의 묵인과 방조, 심지어는 협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그런 현실을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탐사보도 기자의 취재 활동은 곧 죽음과의 싸움이며, 사라지건 살해되건 사회 어디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멕시코의 열악한 취재 환경을 호소했다. “침묵과 투쟁하고 있는 가운데, 기자의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개탄하는 투라티는 앞으로 전 세계 탐사보도 기자들이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기를 호소했다.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Don’t abandon us)”라고 눈물로 간청했고, 1200명의 기자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글로벌 시대에 탐사보도의 주제는 지역적인 문제를 떠나 전 세계의 어젠다로 부각되고 있었다.

급속한 기술 발전과 함께 지구촌은 점점 하나로 묶이고 있다. 마약, 환경 파괴, 인권 침해, 탈세 등은 지역만의 문제를 넘어 국경을 넘나드는 범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 탐사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더는 한 국가의 영역으로만 한정시킬 수 없게 됐다.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기자들의 뜨거운 공감대가 범세계 탐사보도 기자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었다.

이번 탐사보도총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기사 가운데 하나 또한 국경을 넘나드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국제탐사언론인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가 주관하고 한국의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인 뉴스타파도 공동 참여하고 있는 ‘조세 피난처 보도(Secrecy for sale: Inside the global offshore money maze)’였다.

이 프로젝트는 58개국 40개 언론기관에 속해 있는 112명의 탐사보도 기자가 참여하는 초대형 지구촌 프로젝트다. 외형적인 규모만 봐도 역대 최대다. 내용적으로 평가해도 생전 알지도 못하고 문화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100여 명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진실’을 추구하는 정신 하나로 뭉쳤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조세 피난처 보도와 관련해서는 총회 기간 내내 ‘어떻게 하면 국경을 뛰어넘어 협력할 수 있을까(Collaborating across borders)’라는 거시적인 주제부터 ‘전 세계 금융 문제를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Global financial trail: Tracking assets)’라는 작은 주제까지 다양한 사례와 기법들이 소개됐다.

공동 취재를 하는 방법만 논의된 것이 아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과의 협조, 재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The latest on philanthropy for nonprofit news and media organizations)’라는 문제,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기자들의 탐사보도 교육과 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Best-practice lightning round presentation)’라는 문제에도 여러 세션이 할당됐다.

매체도 많고 뉴스를 볼 수 있는 플랫폼도 다양한 시대다. 무수히 많은 기사와 헤드라인이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취재 보도, 특히 탐사보도에서 서사적인 요소가 탐사보도 기자들에게 취재보다 더 중요한 요건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권위 있는 시사 잡지인 <뉴요커(New Yoker)>의 새러 스틸맨(Sarah Stillman) 기자는 2006년 경찰이 호숫가에서 죽은 시체를 발견하자 취재를 시작했다. 발견 당시 그 누구도 시체의 이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스틸맨이 사망한 여인의 유족을 만나면서 취재는 급속하게 진전됐다. 가족은 “그녀는 경찰에게 마약 관련 비밀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으로 활동하면서 아무런 보호나 훈련을 받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탐사보도와 관련해 여러 세션이 진행됐다. 맨 아래는 의 새러 스틸맨 기자(왼쪽)와 이민규 교수. 이민규 제공
취재보다 더 중요한 서사적 글쓰기

그냥 흘려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스틸맨은 서사적인 탐사보도를 시작했다. 취재 결과 마약과의 전쟁 때 경미한 전과를 가지고 있는 많은 젊은이가 위험한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 가운데 정보원들이 빈번하게 죽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상당히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서사적인 글쓰기를 통해 이 문제는 전국적인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 기사는 큰 상을 받았다.

미래의 탐사보도는 발견된 사실들을 조합해서 엮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보도의 핵심은 기자가 발견한 충격적인 사실들을 얼마나 잘 구성해 전달하는가에 달려 있다. 서사적인 글쓰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각 개인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취재 대상과 동일시할 수 있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게 다가왔다. 다양한 플랫폼과 상호 협력 그리고 글과 비디오, 오디오 등을 함께 통합해 멀티미디어 형태의 서사적 글쓰기로 새로운 탐사보도를 모색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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