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가슴속 응어리 푸는 곳”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7.0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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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8월의 축제>로 대학로 소극장에 돌아온 배우 손병호

드라마는 TV·영화·연극을 통해 소비된다. 배우가 TV에 나가면 탤런트라는 이름을 얻고, 영화에 나가면 영화배우, 연극에 등장하면 배우가 된다. 배우들은 연극을 좋아한다. 가장 기본인 장르이고 관객의 에너지를 직접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는 어렵다. 때문에 연극에서 기본기를 다진 배우를 TV나 영화 쪽에서 캐스팅하는 일이 잦다. 지금 충무로에서 최고라 불리는 송강호·황정민·김윤석은 모두 연극에서 숙성된 배우다.

TV나 영화 장르로 옮겨가 이름과 돈을 얻은 배우들은 고향인 연극판을 그리워하고, 때로는 귀향한다. 연극은 이들의 가세로 홍보에 도움을 받고 배우는 연극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영화 <파이란> <흡혈형사 나도열> <야수>, 드라마 <꽃들의 전쟁> 등에서 악역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손병호도 7월11일부터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막을 여는 <8월의 축제> 무대에 선다.

그는 정통 극단으로 불리는 목화 출신 배우다.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로에서 청소, 전단 붙이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1990년 동아연극상 대상을 탄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에 출연해 연극판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어 TV와 영화로 진출해 눈매가 매서운 악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경제적인 안정도 찾았다.

그가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은 것은 영화 속 이미지와는 아주 먼 코믹한 재능 때문이다.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 쇼에 나가 선보인 ‘꼭짓점 댄스’ ‘손병호 게임’이 안방극장을 초토화시켰다. 배우로서의 센 이미지와 예능 쇼의 폭소 유발자 사이의 넓은 간극은 그가 천성적으로 유쾌한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면서 연극 공부를 많이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신이 센 이미지로 비치는 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연극은 눈을 크게 떠야 하는 작업이다. 관객이 내 눈에 빨려들어오게, 집중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연극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게 에너지로 표출되는 무대다. 나 스스로 가난하고 아픔이 많아야 무대에서 표현해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눈이 무서워지고 세졌다. 게다가 영화나 TV에서는 클로즈업이라는 기법을 쓰다 보니까 처음에는 에너지 넘치는 악역으로만 캐스팅된 것 같다.”

ⓒ 시사저널 임준선
“변신을 할 줄 알아야 배우”

<파이란>(2001년)의 용식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그의 악역은 <야수> (2005년)에서 주먹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유강진 역에서 정점을 찍었다. 배역을 위해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몸무게를 11kg이나 뺀 그는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올 것같이 징그러웠다’는 평을 들었다. 최근 들어 그는 ‘순한 역할’도 많이 맡고 있다. 최근 사극으로 스펙트럼을 넓힌 그는 액션에 대한 관심도 많다. “변신을 할 줄 알아야 배우”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 대해 대중이 모르는 면모도 많다. 극단 ZIZ을 만들어 비언어극 실험을 하기도 했다. ZIZ은 몸짓의 바로 그 ‘짓’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육체 언어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이는 춤 공연 연출로 이어졌다. 그의 부인이 창무회 소속 무용가다. 창무회와 극단 목화가 협업을 하다 부인을 만났다. 결혼 후 그는 무용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연극에 몸짓을 도입한 작품을 직접 제작·연출해 무대에 올리는 등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영화 연출도 언젠가는 할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손병호는 TV와 영화판에 정착해 자리를 잡은 뒤에도 2~3년에 한 번씩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연극 무대에 더 서고 싶다. TV 드라마나 영화는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연극은 돌이킬 수 없는 작업이다. 공연 기간 동안 80% 이상 컨디션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최소 두 달 정도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시간적 제약 때문에 자주 서지 못하는 게 아쉽다.”

연극 한 장면. ⓒ 매미가 우는 숲 제공
코믹한 예능감과 악역의 자유로운 변신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연극을 그는 왜 하려고 할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배우라는 존재감을 얻고 싶어서 연극을 한다. 연극 무대는 라이브다. 내 몸짓이나 말,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끼고, 그런 긴장에서 오는 재미가 정말 좋다.” 연극 복귀작으로 <8월의 축제>를 고른 이유에 대해 그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잔잔한 웃음 속에 감동이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죽은 딸을 볼 수 있는 아버지로 등장해 극을 이끈다.

그는 자신이 연극에 나오는 게 ‘민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명세를 타고 잠깐 무대에 끼어드는 것은 연극하는 사람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홍보 효과는 있겠지만 그들이 출연료까지 챙겨 가면 진짜 연극만 하는 사람은 더 힘들어진다. 융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좋은 작품과 좋은 극단이 있다면 그런 작품에 유명인이 들어가는 게 바람직하지, 그 반대는 곤란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에너지가 넘쳤다. “어디를 가든 자리를 주도했고 내가 가면 왁자지껄한 웃음이 넘쳤다”는 그는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을 쥐락펴락하던 오락부장이었다고 한다. 인생을 즐겁게 살고자 하는 그의 위트는 두 딸의 이름에서도 확인된다.

마흔에 결혼한 그에겐 11세, 5세 된 두 딸이 있다. 큰딸 이름은 지오, 작은딸은 지아. 이름만 연결하면 의류 브랜드 이름과 똑같다. 둘째 애를 가졌을 때 아들이 나오면 ‘다노’로 이름을 지으려고 했단다. 이 역시 의류 상표가 된다. 큰애를 얻은 후 아버지, 큰형, 장인 등 주위 어른을 연이어 잃는 상사를 겪은 뒤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무력시위’를 벌여 둘째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둘째를 반대하던 아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한 달 만에 셋째를 낳자고 하더라”며 웃었다. 셋째가 아들로 나온다면 이름이 확정됐지만 또 딸일 경우 그가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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