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마피아의 파워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07.16 14: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충일인 6월6일 증권시장에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한국의 대장주인 삼성전자를 걸고넘어진 것입니다. JP모건의 “갤럭시S4의 판매량이 줄고 있다”는 한마디는 가공할 위력을 보였습니다. 보고서 한 장에 다음 날 우리 증시가 패닉 상태에 빠진 겁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하루 동안 15조2000억원이 증발했습니다.

7월5일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매출 57조원에 영업이익 9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입니다.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습니다. 이번에도 JP모건이 ‘재’를 뿌렸습니다. 삼성전자가 실적을 발표한 날 “하이엔드(고급) 스마트폰의 판매 모멘텀이 약해져 하반기에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 겁니다. 노무라 등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삼성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한 신문은 “90점 맞고 1등을 했는데 100점을 못 맞았다고 야단맞는 격”이라고 썼더군요. 보고서 파문 이후 한 달 만에 삼성전자 주가는 20%나 빠졌습니다.

두 차례 보고서를 보면서 JP모건의 파워를 실감했습니다. JP모건의 전망은 정확할까. 과거를 들여다보곤 돌팔이가 떠올랐습니다. 아니면 고도의 전략이거나. 2009년 1월29일 JP모건은 ‘삼성전자가 올해 영업적자를 낼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그해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으로 11조5776억원의 영업이익을 냅니다. JP모건은 2009년 3월16일 ‘삼성전자가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할 것’이라며 목표 주가를 올립니다. 한 달 보름여 만에 이런 냉탕과 온탕이 없습니다. 이 전망으로 누군가는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겼을 것입니다. 부정적 전망에 서둘러 주식을 내다판 개미들은 주가가 치솟는 걸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았겠죠. JP모건은 100년 넘게 월가를 지배해온 금융 마피아입니다. 모건하우스는 US스틸, 제너럴일렉트릭(GE), 제너럴모터스(GM), 듀폰 등 거대 다국적 기업을 설립했거나 주거래 은행입니다(<미국의 금융파워>, 박태견).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새삼 느낍니다. 글로벌 금융 자본이 환란 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의 부정적 보고서→삼성전자 주가 하락→한국 기업들 주가 동반 추락→외국인 자본 이탈→외환위기. 끔찍한 시나리오지만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시사저널>이 CEO스코어와 함께 삼성그룹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조사해봤습니다. 2012년 말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은 국내 GDP의 23.8%를 차지합니다. 시가총액은 전체 주식시장의 26.76%에 이릅니다. 500대 기업의 당기순이익 중 삼성의 비중이 36%입니다. 세계 경제력 15위인 나라의 현주소입니다.

외국계 자본은 한국을 가두리 사냥터쯤으로 여깁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이들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배를 채웠습니다. 달러가 궁한 우리 처지를 이용해 은행, 부동산, 기업을 사들인 뒤 몇 배의 차익을 챙겨 유유히 떠났습니다. 우린 ‘먹튀’라고 욕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입니다.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져야 합니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여럿 나와야 공격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특정 기업을 이용해 시장을 교란하거나 나라 경제를 흔들지 못합니다.

 

 

▶ 대학생 기사 공모전, '시사저널 대학언론상'에 참가하세요. 등록금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