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안 하면 처벌한다고?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7.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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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 부작용, 법으로 막겠다는 중국의 고민

#1. 7월 첫째 주 주말,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시 요하오(友好)양로원. 광저우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호화로운 양로원인 이곳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자녀가 부모를 뵙기 위해 찾아와 북적였다. 40대 후반의 허(何) 씨 부부도 선전(深?)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달려왔다. 허 씨는 팔순을 넘은 고령인 어머니 리(李) 씨에게 “다음부터는 매주 찾아와 뵙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준비한 진수성찬을 꺼냈다. 두 달 만에 찾은 아들 부부의 뜻하지 않은 ‘호의’에 당황한 리 할머니는 그저 “하오(好), 하오”를 연발했다. 요하오양로원 관계자는 ‘광저우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주말 자녀 방문객이 1580명에 달해 6월 마지막 주 1200명보다 30%나 늘어났다”며 “지난 수년간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2. 최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淘寶)에는 부모를 대신 방문해주는 상품(代看望老人)이 등장했다. 가격은 방문 시간당 10~25위안(약 1880~4700원)으로 노인의 말벗이 되어주거나 같이 산책하는 등 고객 요구에 따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확인된 상품만 50건이 넘는다. 서비스 지역도 베이징·상하이·헤이룽장(黑龍江)·저장(浙江)·광둥·허난(河南)·샨시(陝西)·쓰촨(四川) 등 중국 전역을 커버한다. 한 상점은 도시 지역이 아닌 시골 오지까지 내려가 대신 부모를 모실 수 있다고 선전했다.

중국 텐진의 한 양로원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노인들. ⓒ 연합뉴스
“부모 자주 찾아봬라” 강제하는 중국 정부

7월1일 중국 정부는 노인들의 생활 안정과 권리 도모를 위해 ‘노인권익보장법’을 개정해 시행했다. 관련 법규는 1996년 처음 만들어졌다. 내용은 대체적으로,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국가는 노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개정된 법률 내용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조항이 50개에서 85개로 대폭 늘어났고, 여러 가지 강제 조항이 신설됐다. 특히 일부 조항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은 부모의 정신적인 요구를 무시하면 안 된다. 분가한 자녀는 부모를 자주 찾거나 문안드려야 한다. 고용 사업장도 관련 국가 규정에 따라 자녀가 해야 할 도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규정한 제18조가 대표적이다.

당장 부모를 찾는 자녀들이 대폭 늘어났다. 아직 법 시행 초기라서 정확한 통계를 내기 힘들지만, 각 지방 언론의 기사를 살펴보면 부모를 방문하는 자녀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일이 바빠 부모를 뵙기 힘든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중국 정부가 법률을 개정하면서까지 노인 공경을 강제로 규정한 이유는 고령화 문제에 있다. 2010년 현재 중국의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1억19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9%에 달한다. 유엔은 중국 내 고령자 수가 2015년에는 1억5000만명, 2033년에는 3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80세 이상 초고령자도 2000만명을 넘어선 상태다.

고령자 인구의 증가는 의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평균 수명 연장으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중국의 기대 수명도 1970년 62세에서 2010년 75세로 크게 올라갔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1970년에는 4.3%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중국의 고령화 속도는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빠르다. 특히 개발도상국 가운데 으뜸이다. 인구학적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13%면 고령화 사회, 14~19%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프랑스는 115년, 미국은 73년, 캐나다는 65년이 걸렸다. 이에 반해 중국은 25년(2001~26년)으로 예측돼 한국(18년), 일본(24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기간은 10년(2026~36년)에 불과해 최고령 국가인 일본(12년)을 추월할 전망이다.

고령화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핵폭탄보다 위협적이다. 고령자 인구 규모 자체가 엄청난 데다 저소득층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11년 말 60세 이상 인구는 1억849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7%에 달한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인구를 합한 수치와 비슷하다. 2035년에는 중국 인구의 4분의 1인 3억8639만명이 60세 이상으로 추정돼 미국 전체 인구보다도 많아질 전망이다.

‘부유하기 전에 먼저 늙어버리는 것(未富先老)’도 중국 정부의 우려를 낳고 있다. 선진국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5000달러에서 1만 달러인 시점에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에 반해 중국은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2001년 1인당 GDP가 2000달러에 불과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8% 이상인 시점에서 각국의 1인당 GDP를 비교해 보면 한국은 2만1000달러, 미국은 1만2000달러인 데 반해 중국은 5000달러에 겨우 안착했다. 경제 능력이 전혀 없고 장기 요양이 필요한 노인만도 2010년 현재 3300만명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인구 팽창을 막기 위해 1970년대 말부터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해왔고 그 결과 중국의 평균 가정 구성원은 3.1명에 불과하다. 노인들을 돌봐줄 자녀는 많지 않은데 사회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0년 고령자 1명을 부양하는 젊은 세대는 5명이지만, 2020년에는 3명이 1명을 모셔야 한다. 이미 중국은 자녀를 출가시킨 후 홀로 남은 ‘쿵차오(空巢) 노인’ 현상이 대세다. 이들은 재취업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집 안이나 공원에서 이웃 노인과 담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법정 퇴직 연령도 낮아져 현재 남성은 60세, 여성은 50세다. 실제 도시 인구의 평균 퇴직 연령은 2011년 현재 남성이 58.3세, 여성이 52.4세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현실을 고려해 한동안 정년 연장을 추진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강력한 저항과 심각한 대졸자 취업난에 직면하자 계획을 접어야 했다.

“왜 국가의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나”

노인권익보장법 시행 후 중국 2030세대는 한목소리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 황제처럼 받들어야 하는 아이 양육비·교육비 등을 해결하기 위해 날마다 낮밤 없이 일하다 보면 부모를 찾을 시간이 없다. 여기에 드넓은 대륙을 오가야 하는 거리 문제와 불편한 교통 사정, 두둑한 용돈과 묵직한 선물을 가져가야 하는 중국 특유의 문화는 부모를 자주 방문하기 어렵게 만든다.

불만의 근본 원인은 국가가 젊은 층에게 짐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유명 소설가인 위화(余華)는 “문화대혁명 당시 효를 억압했던 중국공산당이 정책적인 목표를 위해 젊은 세대에게 효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1997년 연금 제도를 개혁하고, 2011년 사회보험법도 시행했지만 그 수혜 대상은 도시 지역 내 일부 노인들에게만 한정돼 있다.

노인권익보장법은 명확한 시행 세칙이 없어 중국인 개개인의 일상생활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문제는 이 법률이 국가의 책임은 방기한 채 인민에게 의무만 뒤집어씌우는 중국 정부의 수준 낮은 인식과 대응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경제 발전에는 고수(高手)이지만 인권과 복지에는 까막눈인 게 중국 정부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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