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공권력’ 향해 폭탄을 던지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8.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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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관리요원 ‘청관’의 폭력에 분노하는 중국 서민층

지난 7월20일 저녁 중국 베이징의 관문인 서우두(首都) 공항 제3터미널. 국제선 입국장 앞에서 휠체어를 탄 한 남자가 손에 쥔 뭔가를 높이 들고 외쳤다. “이건 폭탄이다. 가까이 오지 말고 멀리 떨어져라.” 주변에 있던 공항 경비원들이 황급히 놀라 달려왔고 많은 시민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과 영상을 찍어댔다. 한 경비원이 폭탄을 든 남자의 손을 낚아채려 하는 순간 ‘꽝’ 하고 폭탄이 터졌다.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중국 심장부에서 터진 폭탄 사건이었다. 그 여파는 상당히 컸다. 베이징 시 정부는 즉시 모든 여객기의 이착륙을 금지했고 공항 일대에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다행히 폭탄은 사제로 만들어 조악했고 위력은 형편없었다. 휠체어에 탄 남자는 왼쪽 팔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고, 다가갔던 경비원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공안 당국이 재빨리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현장을 수습하자 공항은 곧 정상을 되찾았다.

같은 달 29일 베이징 시 차오양(朝陽) 구 검찰원은 이 폭파 사건의 혐의자 지중싱(冀中星·34)에 대한 체포를 승인했다. 형법 114조 폭파죄를 적용했는데, 징역 3~10년의 유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다. 그런데 폭파범인 지 씨에 대한 동정 여론이 지금 중국 전역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지 씨가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배경 때문이다.

7월20일 사제 폭탄이 터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사람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있다. 주변에 연기가 자욱하다. ⓒ Xinhua 연합
청관에게 저울추로 맞아 목숨 잃기도

산둥(山東)성 허저(河澤) 출신인 지 씨는 저학력자로, 일찍이 고향을 떠나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의 공장에서 일했다. 근검절약하며 악착같이 일한 끝에 오토바이 한 대를 겨우 장만할 수 있었다. 그 후 지 씨는 오토바이를 이용한 택시기사로 전업했는데,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손님을 태워주며 한 건당 3~5위안(약 550~920원)씩을 벌었다. 조금씩 늘어나는 수입에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지 씨에게 2005년 어느 날 불행이 닥쳤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정차하던 중 도시관리요원인 ‘청관(城管)’의 불심 검문을 받아 시비가 붙었고 집단 폭행을 당했다. 쇠파이프로 무장한 청관의 무차별 공격에 머리와 허리를 심하게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백주 대낮에 공권력이 한 가난한 농민공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었다.

한순간에 장애인이 되면서 지 씨는 모든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다. 억울한 심정에 행정기관을 찾아 호소하는 상팡(上訪)을 여러 번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법 당국에 자신을 구타한 청관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패소 판결만 두 차례 내렸다. 신문사와 방송사를 찾아가 자신의 사연을 토로했지만 귀 기울여주는 기자도 없었다. 아무도 지 씨의 말을 들어주질 않자, 그는 자폭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중국인이 지 씨에게 가지는 감정은 단순한 동정심만이 아니다. 청관이라는 공권력에게 때로는 욕을 듣고 때로는 치이며 살아야 하는, 같은 처지에서 오는 동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중국인에게 공안과 청관은 365일 24시간 밀접하게 만나는 공무원이다. 공안은 범죄자를 잡거나 범죄 예방 차원에서 거리를 순찰하는 선에서 그치지만, 청관은 다르다. 일반 시민의 일상생활과 좀 더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청관은 도로를 무단횡단하거나 인도에 쓰레기를 투기하는 행위 등을 단속한다. 번호판 없이 질주하거나 불법으로 주정차하는 차량을 잡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지 씨의 경우처럼 허가 없이 영업하는 오토바이를 단속하거나 노점상과 잡상인을 쫓아내는 일도 청관이 집행한다. 청관은 옛날부터 중국에 존재해왔지만, 지금과 같은 직무를 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다. 개혁·개방 정책 이후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수많은 농민공이 도시로 이주했다. 갑자기 늘어난 외부 인구의 관리를 공안 당국이 홀로 감당하지 못하자 일부 시와 구 정부에서 위생·공상 등 다른 기관의 업무까지 분리해 ‘도시관리집법국’이라는 독립 부서를 신설했다. 집법국은 1997년부터 중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넓은 업무 범위에 비해 청관의 법적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지방성 법규인 ‘도시 면모 및 환경위생 관리 조례’가 있긴 하지만 청관의 임무 수행 범위와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무소불능의 단속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소와 상황에 따라 ‘형법’ ‘치안관리처벌법’ ‘행정처벌법’ ‘공상관리조례’ 등을 마구 들이대며 권력을 휘두른다. 법적 기반은 부실하면서 주먹을 휘두르며 단속하는 청관을 두고 중국인들은 ‘제복 입은 깡패’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관이 저지른 폭력의 희생자는 지 씨만이 아니다. 지난 한 달간 일어난 주요 사건만 10여 건에 달한다. 피해자가 목숨을 잃는 사건도 발생했다. 7월17일 후난(湖南)성 린우(臨武) 현에 사는 50대 농민 덩정자(?正加) 씨는 집에서 재배한 수박을 팔러 도심에 나왔다가 노점상 단속에 나선 6명의 청관에게 적발됐다. 시비가 오가던 중 한 청관이 휘두른 쇠 저울추에 맞아 즉사했고 같이 있던 부인도 상처를 입어 병원에 실려 갔다.

하루 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시의 한 교차로에서는 수박을 팔던 농민 우(吳) 아무개씨가 청관이 마구 휘두른 무전기에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같은 달 23일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 시에서는 100여 명의 청관이 화훼시장 건물을 철거하면서 이를 만류하던 상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심지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까지 마구 때리고 권총까지 빼앗았다.

청관의 무자비한 폭력이 잇따르자 중국인들의 울분이 일제히 터졌다. 7월25일 산시(陝西)성 셴양(咸陽) 시 도시관리집법국 홈페이지가 해킹당했고 각 지방 정부 홈페이지는 시민들이 남긴 비난 글로 도배되었다. 해커의 공격을 받은 셴양 시 도시관리집법국의 홈페이지에는 “오늘부로 우리 기관을 셴양 시 흑사회(黑社會·조직폭력배)로 변경한다. 우리는 폭행·파괴·강탈·살인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무고한 시민과 노점상, 장애인, 노약자를 괴롭히는 업무도 처리한다”는 공고문이 반나절 동안 게시됐다.

7월 말 ‘중국청년보’가 네티즌 1만7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는 중국인이 가지고 있는 청관에 대한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응답자 중 40.7%가 “청관은 야만적인 법 집행의 대명사”라고 했고, 77%는 “청관의 직무 집행을 규범화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속한 도시화가 청관의 입지 강화시켜

끓어오르는 시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각 지방 정부는 청관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지중싱과 관련한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자 둥관 시 공안 당국과 법원은 전면 재조사에 착수했다. 덩정자의 목숨을 앗아간 청관은 구속됐고 담당 간부 2명은 면직됐다. 우(吳) 씨에게 중상을 입힌 청관도 정직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청관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청관을 제어할 사법적 움직임은 전혀 없다. 게다가 청관의 열악한 처우 역시 문제를 키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한때 청관은 인기 높은 직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상부 기관의 감시·감독이 강화됐고 월 급여는 1200~1400위안(약 22만~26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낮은 봉급에 항의해 7월8일 허난(河南)성 지위안(濟源) 시에서는 청관 20여 명이 시 정부 앞 광장에서 집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급속한 도시화와 끊임없는 재개발 사업으로 입에 풀칠하기 힘든 서민층이 늘어나는 현실도 청관을 둘러싼 문제점을 더욱 키워주고 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야 하는 하층민과 이들을 단속하는 청관의 숨바꼭질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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