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처남에게 1000억원 맡겨뒀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8.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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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기관 관계자 밝혀…검찰, 이창석씨가 조카들에게 500억원 주기로 한 문건 입수

요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은 초상집 분위기다. 관할 경찰서에서 철통 경비를 서고 있지만 집 앞에는 언론사 취재진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집 안 풍경도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예전 같았으면 가족들이 해외여행을 갔거나 측근들과 골프를 쳐도 몇 번을 쳤겠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전 전 대통령 부부도 바깥나들이를 한 지 오래됐다. 대신 장남 재국씨와 차남 재용씨 등 직계 가족들이 가끔 방문하고 있다. 검찰 비자금 수사에 대한 대책 회의 일환으로 보인다. 나이 지긋한 옛 부하들도 위로차 가끔 집을 찾고 있다. 이래저래 권좌에서 내려온 지 25년 만에 맞는 최대 위기다.

ⓒ 연합뉴스
검찰의 ‘전두환 비자금’ 수사는 전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를 사법 처리하겠다는 것보다는 최대한 압박해 추징금을 많이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검찰 수사는 이제 4부 능선을 조금 넘었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지금까지 재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교묘하게 세탁한 것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지금부터는 ‘심증’을 ‘물증’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은 압수수색 등을 진행하면서 의외의 수확을 거뒀다. 서울중앙지검 특별환수팀(팀장 김형준)은 전씨 친인척들의 자택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문건을 하나 입수했다. 처남 이창석씨가 전 전 대통령 자녀들에게 500억원을 주기로 합의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금고지기’인 이씨에게 ‘500억원’은 너무 적다는 의견도 있다. 꼬리 자르기를 염두에 둔 ‘미끼 문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창석-전씨 자녀들 연결 고리 찾아야

이창석씨는 ‘전두환 비자금’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20년 넘게 ‘재산 관리인’으로, 조카들의 ‘후견인’ 역할도 했다. 이씨의 입을 얼마나 열게 만드느냐에 이번 수사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씨의 재산 형성 과정을 보면 ‘전두환 비자금’의 규모와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사저널> 조사에 따르면 이씨는 2000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자산가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보면 의아한 점이 여럿 있다. 이씨는 대학 졸업 후 2년간 아버지 농장에서 나무를 관리하며 수박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런 그가 매형인 전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어디서 종잣돈이 생겼는지 1983년 철강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나이 서른두 살이었다. 현재는 전국 곳곳에 부동산과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 수도권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강원도와 제주도 등지에도 고급 콘도와 별장이 있다. 이씨는 무슨 돈으로 이 많은 부동산을 살 수 있었을까.

이 돈의 출처도 ‘전두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씨는 현재 부동산 개발업체인 ‘삼원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전두환 비자금은 금고에 들어 있지 않다고 본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그쪽 사람들이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다. 내가 보기에 ‘이창석’이 살아 있는 ‘금고’일 수 있다. 그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이 이창석씨에게 1000억원대의 돈을 맡기고, 나중에 자기 자식들에게 돌려주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창석씨가 조카들에게 땅을 헐값에 넘기고, 후견인 역할을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얘기를 전씨 비자금을 수사한 관계자에게 들었다고 했다.

검찰도 이창석씨를 비자금 사건의 핵심 인물로 보고 있다. 본격 수사 체제로 들어간 8월12일 그를 가장 먼저 소환해 조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검찰은 15시간을 조사하며 이씨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을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특히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에 있는 46만㎡의 ‘수상한 땅 거래’에 집중했다. 이씨는 2006년 12월 양산동 임야 95만㎡ 중 49㎡를 건설업자인 박 아무개씨에게 500억원에 팔았다. 나머지 46만㎡는 조카인 재용씨에게 28억원에 팔았다. 공시지가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다. 재용씨는 2년 뒤 이 땅을 건설업자 박씨에게 400억원을 받고 팔았다. 액면가로 보면 재용씨는 가만히 앉아서 372억원을 번 셈이다.

그런데 양산동 땅을 산 사람이 ‘동일인’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씨는 양산동 땅을 한꺼번에 건설업자 박씨에게 팔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일부러 한 단계를 거쳤다. 그것은 조카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누가 봐도 이상한 거래다. 이씨도 검찰 조사에서 “매형의 몫이 포함돼 있다”고 실토했다. 이씨가 이 땅의 일부 소유주가 전 전 대통령이라고 인정한 것은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이자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창석씨가 8월13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재산 관리인으로 조카 두 명 내세워

그 이상의 재산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숨겨놓은 재산도 없다”고 진술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씨는 조카인 재용씨가 설립한 비엘에셋을 운영할 때 100억원 정도를 제공했다. 그가 이렇게 큰돈을 선뜻 빌려준 것은 단순한 투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자금 증여의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창석씨는 이렇게 헐값에 땅을 팔면서 증여하거나 투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조카들에게 돈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이창석씨와 전씨 자녀들과의 연결 고리를 규명하는 것이 검찰 수사의 관건이다.

이창석씨 외에 주목할 또 한 사람의 재산 관리인이 있다. 전씨 누나의 아들로, 청우개발 대표인 이재홍씨다. 이씨와 청우개발은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조경업체인 청우개발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한 해인 1988년에 설립됐다.

이씨는 1991년 6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 ‘유엔빌리지’ 부지(578㎡)를 매입해 관리해오다 2011년 51억원에 매각했다.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당시 부지 매입 자금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것과 토지 매각 대금 중 일부가 전 전 대통령 측에 건네진 정황을 포착했다. 청우개발의 설립 자본금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고, 전씨의 장녀 효선씨의 한남동 고급 빌라와 장남 재국씨의 고가 미술품 관리에 이씨가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재홍씨도 검찰 조사에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부지를 매입했다가 팔았다”며 비자금 관리를 일부 시인했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하면 전씨 측은 가장 믿을 만한 친인척 둘에게 재산 관리를 맡겼다. 전씨 측에서는 이재홍씨, 이순자씨 측에서는 이창석씨다. 두 사람은 각각 조경회사와 부동산 개발업체를 운영하며 전씨 재산을 관리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창석씨는 조카들의 사업, 부동산 매입, 사업 자금 지원 등을 직접 챙겼다.

전씨 측은 치밀하게 비자금을 자녀들에게 증여했다. 비자금 통로는 크게 세 곳으로 압축된다. 현금 증여, 부동산 증여, 해외 송금이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은 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돈의 흐름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변변한 직업이 없던 전씨의 자녀들은 하나같이 부동산 갑부들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땅과 건물 등을 소유하고 있다. 종잣돈은 아버지인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된다. 출판 재벌인 장남 재국씨가 운영하는 시공사의 초기 자본금의 출처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의혹들은 검찰 수사에서 확인해야 할 것들이다.

최악의 상황 피할까

전씨의 재산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창석·이재홍 씨가 검찰에 소환되면서 전씨 측도 초초해졌다. 다음 수순은 전씨 자녀들이다. 재국·재용·재만·효선 씨가 차례로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맨 마지막에는 비자금 수사의 정점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 소환이 점쳐진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 등을 볼 때 전씨 가족에 대한 사법 처리는 시간문제다.

때문에 전씨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많지 않다. 자진 납부하거나, 수사를 받거나 둘 중 하나다. 전 전 대통령 측 정주교 변호사는 8월14일 오후 수사팀을 찾아 추징금 납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 측은 애매한 협상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미납 추징금 ‘1600억원 이상’을 환수 목표로 세웠다고 밝혔다. 추징금 일부를 낸다고 해서 수사를 접지는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검찰의 강성 기류에 전씨 측도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를 마냥 지켜볼 수도 없는 입장이다. 전씨 측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물밑 협상을 제안할 수 있다. 전씨 일가의 재산 규모가 1조원에 이르고 있어 1000억원을 내놓는다고 해도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힘들다.

전씨 일가는 지금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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