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린가스가 전쟁을 부른다
  • 최현석│이집트 통신원 ()
  • 승인 2013.09.16 15:33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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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아사드 정권 화학무기 사용 논란…아랍인들 다수는 물음표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다라의 작은 벽에서 한 낙서가 발견됐다. ‘국민은 정권의 전복을 원한다.’ 청소년들의 낙서는 지금까지 2만6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앙의 전주곡이었다. 많은 사람이 ‘아랍의 봄’ 영향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퇴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사드의 아버지는 아랍의 대부이자 시리아의 철권 통치자 하페즈 아사드. 아버지를 보며 정치를 배운 그는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처럼 맥없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

시리아 무너지면 중동은 이스라엘 손에

아사드 대통령은 어떻게 2년이 넘는 동안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해답은 인접 국가 리비아의 사례와 함께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리비아에는 많은 이권이 개입하고 있었다. 석유를 비롯해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는 리비아가 혼란 속에 접어들자 많은 서방 국가가 적극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했다. 카다피는 전쟁이 일어난 지 7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싸늘한 주검이 돼 본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실 리비아의 이권은 카다피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전쟁 중에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연락을 하며 공습 반대를 요청한 배경 역시 이권에 기댄 자신감 때문이었다. 카다피는 끝까지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2013년 8월21일, 한 시리아 노인이 사린가스 공격을 받고 죽은 가족의 주검을 보며 비통해하고 있다. ⓒ AP 연합
반면 시리아는 석유도 많지 않고 이집트처럼 미국과 긴밀하게 협조를 하는 사이도 아니다. 그런 시리아가 왜 혼돈의 핵으로 부상하게 된 것일까. 아메니 마싸우드 카이로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시리아는 중동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집트가 중동과 아프리카의 교두보라면 시리아는 중동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미국이 반정부군을 지지해 아사드 정권을 전복시킨다면 결과적으로 이집트를 제외한 모든 중동 국가가 그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데 그럴 경우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사드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지원하며 이스라엘과 적대적으로 맞섰다. 레바논에 친(親)이스라엘 정권을 세워 영향력을 행사하고픈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집트 다음으로 군사력이 강한 시리아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미국은 직접적인 개입을 원해도 명분이 없었다. 그런 찰나 아사드 정권 퇴진 운동이 벌어졌고, 정부군의 화학 가스 살포라는 완벽한 명분이 생겼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시기에 아사드 정권이 자신의 지지 지역인 다마스쿠스 근교에서 사린가스를 터뜨린 데 대해 또 다른 궁금증이 일고 있다. 아랍인들 대다수는 아사드 정권의 사린가스 공격을 의아해한다. 리비아에서 이집트 아인샴스 대학으로 유학 온 호데리 칼리드는 “아사드 정부가 제정신이라면 그런 행동을 했겠나. 사린가스가 유출된 그 시점은 유엔의 시리아 진상조사위원회가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날이다. 아사드가 아무리 다급하다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최근 이집트로 피신해온 시리아인 부트로스 시몬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아사드는 최근까지도 시리아의 국익을 위해 애썼던 사람이다. 희생을 막기 위해 물러나려고도 했다. 그런 사람이 사린가스 공격을 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사드가 화학무기 썼다고? 믿을 수 없다”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는 아랍권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카타르의 알자지라는 희생자들의 동영상과 시체를 보여주며 ‘아사드 정권의 만행’이라고 전했다. 반면 이집트 방송사인 알아라비아는 “모든 결과는 알카에다가 반군에 협조하면서 생긴 대참사”라고 보도했다.

아직까지 아사드 정권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확실한 물증은 없다. 외신으로 전해진 비디오에 희생된 시체들이 등장하지만 누가 주도한 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마싸우드 교수는 “만약 아사드 정권이 정말로 생화학무기를 동원했다면 이유는 한 가지다. 마지막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는 게 사린가스가 유출된 구타 지역은 내전 초부터 반군의 세가 강했던 지역이다. 반군과 정부군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본보기용으로 가스 공격을 감행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아사드는 이미 비슷한 경우를 배운 적이 있다.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아사드는 1982년 수니파 무슬림의 봉기를 막는 과정에서 이들의 세력이 강한 하마 지역에 네이팜탄을 쏴 1만여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하마 대학살’로 인해 하페즈 아사드는 시리아 전체, 그리고 아랍 세계에 강력한 리더로 각인됐다.

만약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반군에서 했다는 뜻인데, 그들이 사린가스를 살포할 여력이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브루킹스연구소 회의에서는 “1300여 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번 화학무기 공격에는 최소 50kg 이상의 사린가스가 필요한데, 반군은 그 정도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전직 이집트 군 장성 출신인 칼리드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칼리드는 “사린가스는 생화학무기라고 불리기 무색할 정도로 누구든지 제조할 수 있다. 기초적인 군사과학 지식만 있다면 사린가스 제조는 식은 죽 먹기다. 터키와 카타르에서 직·간접으로 원조를 받은 반군이 사린가스를 제조할 수 없다는 의견은 난센스다. 반정부군에도 전직 정부군 장성과 장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칼리드는 시리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최근의 양상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때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당시에도 미국의 명분은 ‘생화학무기 근절’이었다. 칼리드는 “미국은 이라크를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집어넣어버렸는데 만약 이런 일이 시리아에서 벌어진다면 시리아를 넘어 레바논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집트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랍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인 이집트인들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시리아 주변국 국민들은 시리아 반군이 아사드 정권을 종식시킨 후 평화적인 민주주의 정권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군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알카에다와 비슷한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 세력’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울 목적을 갖고 있는 세력’이 그것이다.

9월8일 미국 CBS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는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 AP 연합
“시리아 반군? 알카에다와 다름없다”

현재 이집트인들이 해답이라고 믿었던 무슬림형제단은 정권을 획득한 지 1년 만에 이집트 국민들에 의해 쫓겨났다. 리비아의 NTC의회의 무슬림형제단 또한 퇴출당했다. 튀니지와 요르단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을 향한 반대 시위가 거세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기보다 이슬람 왕국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반군 역시 수니파 무슬림으로서 알카에다, 무슬림형제단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반군은 시아파 무슬림인 아사드가 수니파 무슬림과 기독교 신자를 탄압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리아의 군 장성 중 대다수는 수니파 무슬림이며 상당수의 내각 구성원들은 기독교 신자다.

과연 누가 사린가스를 유포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 알 수 없다. 아사드 정권이 배수의 진을 치고 그랬을 수도 있고 외부 원조를 받은 반군이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 9월2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아사드 정권이 사린가스 공격을 명령했다. 로켓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디로 떨어졌는지도 안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 7월 러시아 전문가들은 “시리아 반군이 사린 신경가스를 제조해 사용했다”고 발표한 바가 있다. 진실 게임 속에서 무고한 주검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탄압 피해 이집트 떠나는 시리아인들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시리아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집트 과도정부가 이슬람 세력에 대한 공격을 전개하면서부터다. 2011년 ‘아랍의 봄’ 영향으로 시리아가 혼란에 빠질 때부터 최근까지 시리아인은 이라크·요르단·레바논·터키 등의 인접 국가보다 유독 이집트로 피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비행기표를 구입해 탈출이 가능했던 시리아 부유층으로, 이집트에서 자신의 사업을 펼치고 교외에 아파트를 임대해 생활해왔다.

최근 이들 시리아 피난민이 터키로 이동하고 있다. 카이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시리아인은 “이집트에 온 지 3개월이 됐지만, 더는 이집트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라아인에게 이집트가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올해 7월 이집트 과도정부는 보안 대책의 하나로 이집트에 들어오는 시리아인에게 비자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무슬림형제단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을 기반으로 들어선 무르시 정권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한 과도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이 시리아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이집트로 피난 온 이후에도 지난 2년 동안 370개 이상의 소규모 사업을 전개했다. 이집트 과도정부가 이런 모든 부분에 통제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최근 최소 200명 이상의 시리아인이 이집트에서 체포됐다. 이슬람 세력에 협력한 외국인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도 보고서에서 ‘7월 이후 이집트에서 구금된 시리아인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의 나디무 홀리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부대표는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집트 경찰과 군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리아인을 투옥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인의 이집트 탈출은 계속되고 있다. 시리아 피난민들 사이에서는 “현재와 같은 반(反)시리아인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연말에는 이집트에서 시리아인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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