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제거 프로젝트’ 6월부터 가동됐다
  • 조해수·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10.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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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7일 저녁 5시20분경, 법무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만한 진술과 자료를 확보했다”며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모든 게 간접 정황일 뿐 직접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박근혜정부가 직접 나서 ‘채동욱 제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의혹만 더 부채질하는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채 총장은 태생적으로 박근혜정부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는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된 5월부터 청와대·법무부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검찰총장 조기 교체설’이 6월부터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첫 단추부터 양쪽은 어긋나 있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6월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 채동욱 검찰총장이 들어섰다. 대검 간부들도 뒤를 따랐다.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들과 검찰총장의 상견례를 겸한 식사 자리였다. 채 총장이 의원들 앞에서 인사말을 했다.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검찰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기소 여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청와대·법무부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관심도 컸다. 그래서일까. 채 총장의 입만 바라보던 의원들 앞에서 채 총장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제가 언제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 참석했던 민주당 법사위 소속 관계자는 “채 총장의 그때 그 말이 상당히 소름끼치게 들렸다”고 말했다. 2년의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 임명된 지 단 두 달 만에 사석도 아닌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 앞에서 내놓은 이 말은 당시 청와대·법무부와 검찰 양쪽의 불편했던 정황을 보여준다. 실제 나흘 후인 6월7일 현 정권의 실세로 평가받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채 총장은 MB 정부가 임명한 것”이라고 밝혀 그 해석을 두고 논란이 분분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6월14일 검찰은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양쪽의 관계는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다. ‘채동욱 제거 프로젝트’가 여기저기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초 채 총장의 낙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박근혜정부가 상당한 부담을 무릅쓰고 이를 강행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그것. 그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렸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임기가 보장된 3대 사정 권력기관장 가운데 이미 경찰청장과 감사원장이 중도 하차했다. 김기용 경찰청장은 3월 말, 양건 감사원장은 8월 말 사퇴했다. 마지막 남은 검찰총장마저 중도에 옷을 벗기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여권에서도 제기됐다. 더군다나 채 총장은 박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9월27일 오후 5시20분께 법무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채동욱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기정사실화했다. ⓒ 뉴시스
“제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채 총장이 임명되던 순간부터 정계에서는 “채 총장은 현 정권의 ‘미운 오리 새끼’”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런 채 총장이 원세훈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이 결정적으로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채 총장은 현 정부에서 임명했지만, 전 정권에서 최종 후보 3인으로 추천된 인물 중 하나로 ‘태생’이 복잡하다. 지난 5개월여 동안 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던 그는 결국 석 달 전에 자신이 한 말처럼 ‘제 발’이 아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서초동을 떠나게 됐다.

박근혜정부 초대 검찰총장은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추천위원회(추천위)를 통해 결정됐다. 지난 1월 추천위가 구성됐고, 공모를 통해 7명의 후보군이 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2월에는 이 중 당시 김진태 대검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 채동욱 서울고검장으로 후보가 압축됐다. 최종적으로 법무부장관이 이 중 한 명을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애당초 분위기로는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제청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으나 절차가 늦어지면서 권 장관이 물러났고 결국 새 정부의 황교안 신임 법무부장관에게 바통이 넘어왔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권력층의 비리에 직접 칼을 댈 수 있는 조직은 사실상 검찰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검찰 수장만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면 정권 입장에서는 일종의 보험을 드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검찰총장은 추천위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정권이 원하는 사람을 임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장관의 제청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최종 후보에 원하는 인물이 들어오면  결국 청와대의 의중이 바로 반영되는 구조다. 다음은 총장 인선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국회 법사위 소속 한 관계자의 말이다.

“당시 MB 정권은 임기 내에 권재진 장관 체제하에서 특정 후보자로 총장 인선을 마무리해 퇴임 후의 사정 칼날을 피하려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검찰총장으로 밀려고 했지만, 최종 후보 3인에 포함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죽하면 후보 추천을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겠나. 하지만 이 또한 여론이 좋지 못해 포기해야 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우선 무난한 인사를 총장으로 세우고, 김학의는 법무부 차관으로 일단 앉혔다가 향후 기회를 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별장 성접대 동영상’ 파문이 터지면서 계획이 어긋나버렸다. 직속상관인 황교안 장관의 고교 1년 선배인 김학의를 그 아래 차관에 앉힌 것 자체가 사실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채 총장은 지난 4월 초 박근혜정부 초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됐지만 5개월 만에 검찰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 연합뉴스
여권 인사 “채동욱은 야권과 붙어먹은 총장”

최종 후보 3인 중 결국 임명장을 받은 이는 채동욱이었다. 세 사람 중 누구도 마음에 차지 않았던 새 정부가 당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위 관계자의 말처럼 그나마 ‘무난한’ 인물이었다. 당시 채 총장은 검찰 내 평판도 좋고, 야권의 인사청문회 과정도 어렵지 않게 뚫을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고향이 전북 군산이라는 점도 당시에는 호남 민심을 다독일 수 있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인사 파문으로 ‘청문회 노이로제’에 걸려 있던 여권은 이러한 점들 때문에 채 총장을 점찍었고, 채 총장은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의 ‘격려’ 속에 순조롭게 청문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과연 채 총장이 2년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까”라며 회의적으로 본 사람이 꽤 많았다.

채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100% 현 정권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한 야권 사람도 아니다. 한 여권 인사는 기자에게 채 총장을 “야권과 붙어먹은 총장”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야권도 ‘싫어하지 않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 관계자는 채 총장 청문회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후보들 중에서 그나마 좀 낫다’는 수준이었지 채동욱을 마냥 환영한다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만 해도 채 총장 청문회 준비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복잡한 계산속에서 탄생한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시작부터 불안한 조짐이 감지됐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 국정원이 불법 개입한 의혹을,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욕을 먹을 사건을 수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채 총장에 대한 외부의 흔들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6월부터다. 역시 국정원 수사가 문제였다. 당시 청와대와 법무부는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채 총장은 현 정권의 ‘하명’을 정면으로 거부한 채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였다. 청와대와 여당을 중심으로 “(채 총장은) 컨트롤이 안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공공연히 들리기 시작했다. “채동욱 총장은 MB 정부가 임명한 것”이라는 이정현 홍보수석의 발언은 채 총장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속내가 어떤지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권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포착됐다. 6월14일 검찰의 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및 정치 개입 사건 수사 발표가 있은 다음부터, 채 총장이 조기에 교체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와 더불어 청와대 핵심 비서진도 바뀔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는 채 총장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점도 포함돼 있었다. 데드라인은 박 대통령의 여름휴가 직후가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타임테이블도 곁들여졌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8월5일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을 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정무·민정·미래전략·고용복지 등 4개 분야 수석비서관 인선을 단행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김 실장은 말할 것도 없고, 홍경식 민정수석은 사법연수원 8기로 채 총장의 6기수 선배다. 여기에 황교안 법무부장관까지 모두 공안통이다. 이런 까닭에 채 총장을 고립시키기 위한 인사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6월부터 채 총장 조기 교체설 돌아

청와대 비서진이 개편된 후 채 총장은 완벽한 ‘섬’이 되고 말았다. 검찰 관계자는 “(채 총장이) 고립무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와 법무부, 여당 모두가 채 총장을 ‘왕따’시켰다. 역대 검찰총장 중 채 총장만큼 외로운 총장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채 총장 혼외 아들 보도가 터진 후 그 배후로 청와대가 지목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5월부터 서천호 국정원 2차장과 함께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벌여왔다. 곽 전 수석은 8월 초 해임되자 이 정보를 이중희 민정비서관에게 넘겼고, 이 비서관은 이를 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상의했다”고 폭로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냈던 천정배 전 의원은 “김기춘 실장을 중심으로 하는 공안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자신들의 권력 운용에 걸림돌이 되는 검찰총장을 제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등장하는 이유 또한 혼외 자식 보도에 나온 출국 기록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관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출국 기록은 국정원이 아니면 타 기관에서는 쉽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도 현재로선 검찰 내 일부와 야권에서 제기하는 의혹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시각에서 채 총장이 ‘미운 오리 새끼’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번 혼외 아들 파문으로 청와대가 잃을 것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령 혼외 아들 보도가 오보로 판명 나더라도 직접적인 책임은 해당 언론사가 다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채 총장은 사직서를 낸 후 다시 총장직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법무부는 9월27일 청와대에 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할 것을 건의했다. 현직 검찰총장 혼외 아들설, 불법 사찰 의혹 등 ‘막장 드라마’ 같은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어떤 이유로도 권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줬다. 이로써 박근혜정부 들어 임기가 보장된 3대 사정 권력기관장이 모두 낙마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열쇠 쥔 임 여인의 선택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는 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 아무개씨의 손에 쥐어져 있다. 유전자 검사만이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채 총장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채 아무개 군(11)이 미성년자여서 채군의 유전자 정보에 대한 양도 권리를 임씨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채 총장은 9월24일 <조선일보>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채군 측에서 빠른 시일 안에 유전자 검사에 응해달라”는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임씨는 9월10일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후 9월27일 현재까지 종적이 묘연한 상태다.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봐선 임씨가 자발적으로 유전자 검사에 응할 것 같지는 않다.

한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는 임씨가 채 총장과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한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당한 상태라, 검찰 수사로 진실 규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9월26일 ‘법조계바로정돈국민연대’는 “임씨가 진실을 밝히지 않아 검찰총장과 검찰 조직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과연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검찰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채 총장이 처벌을 원치 않으면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임씨가 채 총장 또는 검찰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행동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번 사태로 명예가 훼손된 쪽은 오히려 임씨 측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채 총장이 ‘친생자관계존부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실상 법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친자 확인 소송밖에 없다. 만약 이 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은 양측의 입장을 들은 후, 재판부 직권으로 유전자 검사를 명령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또한 임씨가 끝까지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가사조정법 67조에 따르면 법원의 유전자 검사 명령에 불복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또는 30일 이내로 감치할 수 있지만, 이후에도 당사자가 검사에 응하지 않는다면 유전자 검사를 더 이상 강제할 수 없다.

만약 유전자 검사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이번 논란은 채동욱 총장과 검찰, 임씨와 채군 등에게 상처만 남긴 채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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