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 여자가 1천억짜리 회사 가로챘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0.1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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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제지 창업주 큰아들, 노미정 부회장 고소 “불법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 낳은 뒤 아버지와 혼인신고”

‘현대판 신데렐라인가,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가.’ 올해 초 코스피 상장사인 한 중견 기업의 주식 변동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70년 판지 제조업체인 영풍제지를 창업해 40년 넘게 이끌어온 이무진 회장(79)이 지난해 말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 113만8452주(51.28%)를 35세 연하의 부인 노미정 부회장(44)에게 통째로 넘겨줬기 때문이다.

이로써 노 부회장은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주식 9만6730주(4.36%)를 합해 영풍제지 지분 55.64%를 확보하면서 하루아침에 이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됐다. 2012년 말 기준 영풍제지의 자산 총계는 1212억원이다. 매출액 1134억원에 영업이익이 165억원에 이르는 알짜 기업이다.

언론에서는 노 부회장을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부르며 화제의 인물로 부각했다. 재계에 전혀 알려진 바 없는 40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중견 기업 오너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노 부회장은 또 ‘주식 배당 여성 부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재벌닷컴이 3월5일 마감 기준으로 집계한 상장사 보유 주식 배당금 순위에서 그는 여성 중 5위를 차지했다. 노 부회장의 배당금은 24억원으로 1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2위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3위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부인 김영식씨, 4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 최기원씨 등 재벌가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노 부회장의 존재가 처음 외부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3월29일 영풍제지 2011년 사업보고서 공시를 통해서다. ‘임원 및 직원의 현황’에서 부회장으로 그의 이름이 올랐다. 하지만 노 부회장 개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출생 연월(1969.04), 담당 업무(경영 총괄), 재직 기간(1월) 등이 기재돼 있지만 다른 임원들과 달리 주요 경력은 공란이었다.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영풍제지 본사. 왼쪽은 이택섭 전 대표의 고발장과 소장.
회장 장남 “재산 노리고 접근했다”

상장 기업 부회장을 맡게 됐는데도 이력을 알 수 있는 정보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후 노 부회장은 영풍제지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해 8월22일부터 8월29일까지 그가 매수한 이 회사 주식은 9만6730주(4.36%)에 이른다. 이 사실을 공시한 자료에서도 노 부회장의 이력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다만 당시 최대 주주였던 이무진 회장과의 관계를 ‘친인척’이라고 게재했다.

노 부회장이 최대 주주 자리에 오른 후인 올해 상반기에 등기이사인 이 회장과 노 부회장에게 지급된 급여가 1인당 평균 8억5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 상반기 평균 임금 2억2300만원보다 278%나 증가한 수치다. 직원 평균 급여와 비교하면 28배나 많다. 노 부회장은 또 고액의 배당금도 챙겼다. 주당 배당금이 2000원으로 책정됐는데 이는 2012년 배당금 250원에 비해 8배나 많다. 이에 따라 노 부회장이 받은 총 배당금은 24억원에 이른다. 명실상부한 ‘여성 갑부’의 탄생이다.

재계에 화제를 몰고 온 인물인데도 노 부회장의 이력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지난 8월14일 공시된 영풍제지 반기보고서에서 주요 경력으로 ‘백석대학교 대학원 수료’가 추가됐을 뿐이다. 불과 1~2년 만에 40대 여성 CEO로 성공 신화를 쏘아 올린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노 부회장이 올해 3월 법원과 검찰에 고소·고발된 사실을 단독으로 확인했다.

고소·고발자는 이 회장의 장남으로 2002~09년 영풍제지 대표이사를 지낸 이택섭 전 대표(56)였다. 이 전 대표는 “노 부회장이 재력가인 아버지(이 회장)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뒤 불법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받아 쌍둥이 자녀를 낳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 부회장이 쌍둥이 자녀를 앞세워 우리 형제(자신과 동생)를 경영에서 배제시킨 뒤 회사까지 손아귀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가 고발장과 소장을 통해 밝힌 내용은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이에 따르면, 노 부회장은 2008년쯤 서울의 한 호텔 중식당에서 지배인의 소개를 받는 형식으로 이 회장을 처음 만났다. 노 부회장이 우연을 가장해 의도적으로 자신보다 35세나 연상인 이 회장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노 부회장은 이후 이 회장의 아이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 회장이 고령인 데다가 정관수술까지 받은 상태여서 자연 임신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노 부회장은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는 의학적 방법까지 동원해 임신을 시도했다. 노 부회장은 2008년 10월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불임클리닉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김 아무개씨로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을 수차례 받아 임신에 성공했다.

이 전 대표가 고소·고발을 한 대목이 여기에 있다. 당시 이 회장은 부인 이 아무개씨와 법적으로 부부 관계였는데, 정자를 기증한 이 회장의 배우자 이씨의 서면 동의 없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한 것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시술을 한 의사 김씨도 고소·고발했다.

불륜 사실 알게 된 부인, 충격으로 자살

노 부회장은 이듬해인 2009년 7월 쌍둥이 남매를 출산했다. 이때까지도 이 회장의 부인 이씨와 장남 이 전 대표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2010년이 돼서야 부인 이씨가 노 부회장과 쌍둥이 남매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에 큰 충격을 받아 수면제 300알을 삼키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의식을 잃어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갔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몇 달 후인 5월 초 자택에서 욕실 문고리에 넥타이로 목을 매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노 부회장은 상중에도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고, 이씨가 생전에 타던 고급 외제 승용차와 패물까지 물려받았다고 한다. 노 부회장은 이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남짓 지난 2011년 6월에 이 회장과 혼인신고를 했다. 이는 그동안 언론에서 노 부회장이 2008년에 이 회장과 결혼했다고 보도한 내용과 다르다.

당시는 이 회장의 부인 이씨가 살아 있을 때였다. 이 회장과 노 부회장 사이는 불륜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노 부회장은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인 2010년 4월과 12월에 이 회장으로부터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198㎡(60평형)대 아파트 두 채, 2012년 5월에 서울 광진구에 있는 231㎡(70평형)대 아파트 한 채 등 시가 40억원에 이르는 부동산 소유권을 증여받았다. 노 부회장이 2012년 8월 영풍제지 주식을 매수하는 데 들어간 15억원도 이 회장의 돈일 개연성이 큰 것으로 이 전 대표는 보고 있다.

이로써 노 부회장은 이 회장의 재산 대부분을 넘겨받은 것은 물론, 중견 기업의 경영권까지 차지하게 됐다. 이 전 대표는 “노 부회장의 친인척들이 비서실과 핵심 부서에 책임자로 들어와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이 전 대표가 고소·고발한 내용에 대한 노 부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가 출근한다는 영풍제지 서울사무실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10월10일 전화를 받은 비서실 직원에게 기자 신분을 밝힌 후 ‘노 부회장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자 “자리에 안 계신다”고 했다. 이 직원은 ‘고발 건과 관련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연락처를 남기자 “직접 통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메시지를 꼭 전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다음 날인 10월11일 오전에 다시 전화를 걸어 직원에게 재차 ‘노 부회장과 통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통화가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고액 임금과 배당금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 담당 책임자인 박 아무개 상무와 통화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다시 ‘고발 건으로 그러는데 노 부회장이나 이 회장과 통화할 수 없느냐’고 요청했지만 역시 “직접 통화하기는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노 부회장의 휴대전화도 연락이 닿지 않아 문자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노 부회장은 물론 박 상무로부터도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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