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과 안철수, 만나면 웃지만…
  • 차윤주│<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10.3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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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결별 세 가지 시나리오…결과 따라 지방선거 판세 흔들 듯

2013년 주요 정치 일정이 10·30 재보선을 끝으로 막을 내리면서 내년 지방선거가 서서히 예열되고 있다. 아직 반년 이상 남은 지방선거 대전이 달아오르고 있는 중심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있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두 정치 거물이 연대와 독자 세력화를 두고 계산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시장과 안 의원이 한 편에 서느냐, 완전히 갈라서느냐에 따라 지방선거 판도는 일찍부터 요동칠 태세다. 세 가지 시나리오로 짚어본다.

# 시나리오 1. 박원순의 안철수 신당 합류

정치권에서는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의원 간 통합 가능성을 낮게 보는 눈치다. 두 세력이 힘을 합할 경우, 정확히 말해 박 시장이 민주당을 뛰쳐나와 안 의원 쪽으로 붙는 경우 결과는 치명적이다. 정치 공학에서 가장 하수로 치는 이합집산이기 때문이다. 두 인물의 성품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박 시장은 변호사지만, 시민운동의 길을 죽 걷다가 딱 한 번 방향을 튼 것이 서울시장 출마였다. 밖에서 보면 방향을 튼 것이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박 시장의 정치 참여 의사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박 시장이 시민운동 활동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내용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한 단계 도약이란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박 시장의 정치행은 오래전 설계된 루트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다.

9월8일 수원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경기도민과 함께하는 안철수 동행 토크’ 행사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과 송호창 의원. ⓒ 연합뉴스
박 시장은 특히 원칙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남자 박근혜’라고도 부른다.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인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의미다.

정치 초년병이지만 안 의원도 정글과 같은 정치권에서 생존해야 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가장 높은 기대치를 품은 대선 후보라는 최정점에서 정치 역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안 의원이 매끄럽지 못하게 박 시장과 힘을 합치는 것은 자멸의 수다. 자신의 정치 이념인 ‘새 정치’와 거리가 먼 민주당 당적을 가진 박 시장을 품에 안는 것 자체가 희소성을 떨어뜨리는 처사로 비칠 공산이 크다. 모호하지만 참신한 정치를 벗어던지는 순간 정치인 안철수의 활동 반경은 급속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 2. 박원순과 ‘안철수 신당’ 제 갈 길

서울시장 독자 공천 방침을 밝히고, 박원순 시장더러 신당에 합류하라고 압박하던 안철수 의원 측의 움직임이 최근 눈에 띄게 둔해졌다. 앞서 안 의원의 최측근인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전국적인 선거에서 서울시를 빼고 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10월8일)이라고 밝혔다. 열흘 뒤엔 “박 시장이 우리와 함께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버리고 ‘안철수 신당’으로 오라는 손짓이다. ‘송호창발(發) 박원순 탈당 권유’는 여러 뒷말을 낳는다. 단순한 ‘발언 사고’라는 견해부터 지극히 고단수의 정치적 수사라는 해석까지. 여기서 고단수란 송 의원이 박 시장을 겨냥한 듯하면서 실상은 민주당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박 시장을 흔들어 동요하는 민주당 이탈자들을 ‘이삭줍기’해 신당의 틀을 다지려는 심산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사람 빼가는 게 새 정치냐”고 격노한 이유다.

이유야 어떻든 박 시장이나 민주당 주요 인사가 안철수 신당행을 택할지는 의문이다. 지방선거까지 뚝 잘라 냉정하게 봤을 때, 정치판에서 현재 안 의원의 의미는 장기판에서 ‘졸’(卒) 하나 정도다. 가진 세력도 없고, 반년 뒤 의미 있는 수준의 정치 세력을 확보할지도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특히나 박 시장의 경우 서울시장 재선을 발판으로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기반도 실체도 없는 신당에 몸을 의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박 시장이 설령 안 의원과 힘을 합치더라도 이는 안 의원을 위한 희생일 리가 없다. 자신의 대권 쟁취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정도다.

박 시장이 민주당 끌어안기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추측에 힘을 더한다. 박 시장은 민주당 원로들로부터 “집안에 서자를 들였는데 제사까지 지내줄 태세”라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에서는 술을 못하는 박 시장이 당 원로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이런저런 말을 경청한 뒤 이들이 모두 돌아가자 그 자리에서 엎어져 잠들었다는 일화가 회자된다. 이렇게 박 시장은 꾸준히 민주당 원로나 소속 의원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뒤늦게 합류했지만 자신이 민주당 적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 대안이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능력과 인지도가 있고, 머리까지 조아리는 박 시장이 기특하고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

안 의원 측도 일단은 이런 박 시장에 대한 미련을 접은 모습이다. 송호창 의원은 10월2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내부적으로 세력화 준비에 집중한다”며 “내년 선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검토된 것도 없고, 박 시장 탈당 발언은 인터뷰 사회자의 유도 질문에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의 한 측근은 “안 의원 측이 ‘같이하자’ 정도로만 했어도 박 시장이 알아들을 텐데 아직 그쪽 정치 감각이 부족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월22일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 시나리오 3. 박원순과 안철수 연대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의원이 아옹다옹하지만 이들의 진짜 맞수는 따로 있다. ‘기호 1번’ 집권 여당 새누리당 후보다. 새누리당이 박 시장의 수도 서울시장 재선 등극을 호락호락 방관하고만 있을 리 없다. 가뜩이나 최근 무상보육 예산 논란 등을 두고 청와대와 서울시청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청와대 코앞에 서 있는 박 시장을 다음 선거에서 ‘찍어내야’ 한다는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무상보육 여론전 때문에 박 시장이 박 대통령에게 완전히 찍혔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 심기가 새누리당에 전달돼 당에서도 박 시장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라고 전했다.

청와대의 현실적인 고민도 이런 분위기와 맞물린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실현을 위해서도 서울시장 자리는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철도 부지 위에 짓겠다고 한 행복주택과 같은 것이 지방자치단체장 허가 사안이다. 또 행복주택은 인구수가 많은 서울에 집중적으로 짓게 된다. 반(反)개발론자인 박 시장이 철도 주변 부지 사용 승인을 안 해주면 말짱 ‘꽝’이다. 그래서 요즘 새누리당에서는 “박원순을 꺾을 자는 박근혜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누가 서울시장 후보가 되더라도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박 시장과 맞서야 승산이 있다는 말이다. 당 핵심 당직자는 “박원순을 이기려면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인물이 출마해야 한다”며 “선거를 대비해 오래전부터 인재 영입을 해왔고 물밑에서 특정 후보에게 침을 발라놓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끝까지 안 의원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완전히 내치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 시장 홀로 박 대통령과 거대 여당을 상대하는 것은 힘에 부친다. 절박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 의원이 ‘아직은’ 필요한 것이다. 박 시장은 10월24일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란 게 시시각각 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안 의원과의 향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양측이 연대의 틀을 유지하다가 막판 후보 단일화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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