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배반’, 네가 이럴 수가…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3.10.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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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보다 30% 넘게 값 하락…부유층 저가 매수로 골드바 수요 늘어

#1.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가능성을 족집게처럼 예측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존 폴슨 폴슨앤컴퍼니 회장. 헤지펀드업계에선 거물이지만 요즘 굴욕을 맛보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금 펀드 손실률이 올 들어서만 60%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2. 최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은의 투자 실력이 도마에 올랐다. 2011년부터 금 보유량을 크게 늘렸는데 지금까지 손실이 1조2000억원에 달해서다. 경기 및 시장 예측 전문가 집단인 한은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국고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에서 의원들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힌다. 화폐 가치 하락에 대응할 수 있어 전쟁 등 위기 땐 어김없이 가격이 급등하곤 한다. 문제는 금값이 어떻게 움직일지 맞추는 게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폴슨 회장이나 한국은행조차 ‘금테크’에 실패하고 조롱을 받는 이유다.

우리나라 금값은 세계 금 시세 변화에 즉각 영향을 받는 구조다. 금을 활용한 재테크에 성공하기 위해선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돌발 변수, 환율의 움직임까지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금반지 구입 늘어나지만 골드뱅킹은 해지

올해 들어 국내외 금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황금시대는 저물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금값은 항상 일정 주기를 두고 ‘떨어졌다, 올랐다’를 반복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사이클을 잘 활용하면 훌륭한 재테크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즘 서울 종로의 금은방 거리에서 순금 한 돈(3.75g) 가격은 17만~18만원 정도다. 역대 가장 비쌌던 2011년 9월(25만원 선)과 비교하면 30% 이상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제 금값 하락이다. 세계 금 시세는 1970년대만 해도 1온스(28.35g)당 35달러였다. 1980년대 1차 오일쇼크 당시 850달러로 올랐고 2001년 9·11 테러 때는 1920달러까지 급등했다. 이후 한 번도 떨어지지 않은 금값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미국이 양적 완화(자산 매입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시작하면서 풀린 돈이 상품 시장으로 몰리자 금값은 더욱 뛰었다.

금시장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지속했는데도 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은 데다 미국 경기 역시 회복세로 접어들면서 안전 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최대 금 소비국인 중국과 인도가 금 소비를 억제하는 규제책을 발표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국제 금값은 미국이 양적 완화 축소 방침을 밝힌 지난 6월엔 온스당 1183.2달러까지 주저앉았다.

다만, 이후 “금값이 지나치게 떨어졌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저가 매수세가 붙었다. 국제 금 시세는 현재 온스당 13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향후 금값의 추이를 놓고 전문가들은 엇갈린 예측을 내놓고 있다. 다시 반등해 온스당 1600 선을 돌파할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최저 800 선 밑으로 추락할 것이란 비관론도 고개를 든다.

종합해보면 무게 중심은 하락 쪽으로 약간 쏠려 있다. 금값이 아직 덜 떨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유력한 귀금속 전문 컨설턴트인 폴 워커는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가 본격화하면 내년 중반께 온스당 1000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값을 전망할 때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변수는 달러 가치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금값은 오르기 마련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 또는 달러 중 택일해서 보유하려는 경향이 있어서다. 글로벌 증시의 ‘화두’인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져도 금값은 오를 수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금값이 단기 하락하자 국내 금시장에선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물인 골드바(금괴)를 찾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반면 골드뱅킹에 돈을 넣어둔 사람들은 잇따라 해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골드바와 골드뱅킹 모두 부유층이 투자하는 상품이지만, 거액 자산가들은 상대적으로 골드바를 선호한다.

1kg짜리 1개에 5000만원이 넘는 골드바 판매량은 올 들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금거래소의 골드바 판매량은 올 1월 7억원 선이었는데 3월부터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7월 42억원, 8월 40억원, 9월 32억원을 기록했다. 10월에는 50억원어치 이상 판매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골드바 거래량은 지난해에 비해 4배가량 많다.

금 업계 관계자는 “한참 올랐던 금값이 갑자기 떨어지자 저가 매수에 나서는 부유층이 늘어났다”며 “새 정부 들어 금융 소득에 대한 세무조사가 강화되자 실물 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부유층이 골드바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간단한 매입 절차와 세제 혜택이다. 우선 골드바를 매입할 때 별도 등록 절차가 필요 없다. 구입할 때 내는 부가가치세 10%와 수수료 5%를 제외한 매매 차익에 대해선 비과세다. 금융 소득 종합과세 기준 금액이 올해부터 1인당 2000만원으로 낮아지면서 고소득자들 사이에선 이런 비과세 상품이 더욱 인기다. 장기적으로 자녀에게 상속·증여하는 데도 유리하다. 금이 ‘대체 화폐’ 성격이어서 환금성이 좋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돌 반지 등 금 상품 구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상점에서 판매되는 순금 돌 반지·목걸이·팔찌 등의 상품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50% 안팎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반면 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이 취급하는 골드뱅킹 적립액은 줄어들고 있다. 골드뱅킹은 금을 0.1g 단위로 거래할 수 있는 예금 상품이다. 신한은행의 금 실물 매입 계좌인 ‘골드리슈’ 잔액은 올 1월 5063억원이었지만 현재 4400억원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국민은행의 ‘KB골드투자통장’ 상품 잔액도 연초 대비 10% 감소한 400억원 선이다.

금 계좌 유지에 따라 자신의 자산 규모가 쉽게 드러날 수 있는 데다 기획재정부가 골드뱅킹 거래 이익이 배당소득에 해당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던 점도 악영향을 미쳤다.

금 DLS 쏟아져…내년 현물거래소 설립

전문가들은 금에 투자할 땐 포트폴리오(자산 배분) 분산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금 가격을 예측하는 게 어려워서다. 다만 요즘 같은 저금리 기조에선 금을 기초 자산에 포함한 파생결합증권(DLS)에 관심을 둘 만하다고 조언한다. DLS는 기초 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사전에 정해놓은 수익률로 지급하는 상품이다.

금 DLS 발행액은 최근 들어 급증세다. 공모형 DLS 발행액은 지난 7월 690억원, 8월 1506억원을 기록한 뒤 9월엔 2280억원으로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수익률을 지급할 가능성을 높인 상품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예컨대 증권사들은 금값이 지금보다 35~40% 밑으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연 7~9%의 확정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을 판매 중이다.

‘금테크족(族)’에게 반가운 소식은 또 있다. 내년 초 금 현물거래소가 설립되면 세제 혜택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금 현물거래소는 주식처럼 실물 금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이다. 한국거래소가 중국과 터키 모델을 본떠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금 현물거래소의 초기 안착을 위해 부가세 10%와 배당소득세 15.4%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거래 수수료 역시 골드뱅킹보다 낮게 책정될 전망이다. 적격 생산업체가 만든 순도 99.99%, 중량 1kg짜리 실제 금괴를 거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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