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내려는 자와 버티는 자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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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 압박 받는 김광재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감사원이 철도시설공단에 대한 조사 및 감사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과거 레일패드 교체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밀어줬다는 의혹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특히 김광재 이사장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전해져 파장이 예상된다.

레일패드는 철도 레일 밑에 깔리는 패드를 말한다. 천연고무로 돼 있으며 레일과 침목 사이의 마찰을 방지하고 충격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레일패드는 레일을 고정시키는 레일 체결 장치의 구성 품목 중 하나로 P사와 V사가 각각 60%, 30%씩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김광재 철도시설공단 이사장과 공단 본사 건물. ⓒ 연합뉴스
철도시설공단은 경부2단계 공사 시 시공사로 하여금 P사와 V사의 납품가와 유지·보수 문제 등을 감안해 두 회사 제품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그 결과 국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오던 P사가 선택됐고, 이어 공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감사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P사에서 V사로 패드 공급업체가 바뀌면서 V사가 4000억원에 가까운 이득을 취하게 됐다.

문제는 교체 과정이 석연찮다는 점이다. 해당 분야가 전문적이고 특정 업체의 이권이 결부돼 있다는 점에서 원전 비리와 그 양상이 비슷하다. <시사저널>은 1·2·3차 감사 보고서와 각종 공문 등 입수한 내부 문건들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의혹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시사저널>, 감사 보고서와 청와대 보고서 입수

입수 문건에 따르면 S사는 처음에 ‘25% 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으나 5개월 후 입장을 바꿔 하자 보수를 위해 패드 30만장을 구입했다.
1차 감사는 2007년 8월 이뤄졌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청와대 보고용 문서에 따르면, 감사원이 당시 철도시설공단 이 아무개씨로부터 P사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를 입수해 감사를 시작했다. 당시 이씨는 V사 제품을 선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감사원 감사 담당자인 최 아무개씨와 그는 육군사관학교 동기다. 감사 결과 최씨는 “패드의 두께뿐 아니라 강성 변화도 고려하도록 패드 교체 기준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기존처럼 패드의 두께만으로 체결 장치 교환 주기를 설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철도시설공단은 철도기술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시행했고, 690일의 용역 후 2009년 10월 연구원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해당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연구원은 약 80KN/mm(킬로뉴턴 퍼 밀리·탄성치수를 나타내는 단위)를 교체 주기 기준 정적 스프링 계수로 정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명시했다. 정적 스프링 계수란 패드를 누를 때 가한 무게를 눌려진 깊이로 나눈 수치다. 낮을수록 기준이 엄격해짐을 의미한다.

그런데 감사가 이뤄진 지 얼마 안 돼서 2차 감사가 이뤄지게 된다. 감사에 참여한 감사관은 서울시 메트로 직원 김 아무개씨로 V사 제품에 대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V사 제품 특허 보유자가 P사 제품에 대한 감사에 참여한 셈이다. 김씨는 신제품이 아닌 설치된 제품 샘플 9개를 가져다 품질 확인 시험을 했다. 기자가 당시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를 확인한 결과, 해당 제품들은 모두 이전 감사를 통해 정적 스프링 계수로 결론 냈던 기준 80KN/mm를 크게 밑돌고 있었다. 그런데 김씨가 참여한 감사팀은 당시 이 기준이 아닌 새로운 기준을 등장시켜 문제점을 지적했다. 5년 동안 스프링 계수 변화가 기존 신제품에 비해 25% 이하가 돼야 한다는 기준이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언급한 ‘레일패드 25% 기준’이 바로 이것이다. 실시설계 자재 시방서에 들어갔다가 공사 계약 당시 빠졌던 걸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25% 기준은 세계적으로도 신제품 피로시험 후 적용되는 기준으로 알려졌다. 이미 사용 중인 제품에 대해 이 기준을 적용하는 사례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당시 철도시설공단 내부에서도 “25% 기준은 신품에 대한 피로시험 전후의 정적 스프링 계수 변화이고, 사용 중인 레일패드를 25%로 관리하는 경우는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2차 감사 후 감사팀은 “자재시방서 내용대로 레일패드의 자재 구매 제작 시방서를 재정비하는 등 업무를 철저히 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감사가 끝난 후 다시 3차 감사가 이뤄졌다. 이번에는 특정감사였다. 이때도 역시 서울 메트로 직원인 김씨가 함께 참여했다. 감사팀은 80만장의 P사 레일패드 중 터널·교량 등에서 9장을 수거해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야외 지반 및 교량 구간 샘플의 탄성 변화율이 25%를 넘어서는 것이 발견됐고, 결국 “레일패드 29만장을 교체하라”는 검사 결과를 내놓았다. 철도시설공단은 이 점을 들어 해당 공사 시공사인 S사와 E사에 29만개에 대해 교체 공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공문에는 ‘기한 내 공급원 승인 보완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행정 처리 등에서 당사가 불이익을 받을 경우 그 책임을 귀사에 전가시킬 것을 알려드린다’는 압박성 문구도 들어가 있었다. 당시 해당 업무를 주관한 궤도처장은 김광재 이사장의 영남대 동기인 ㄱ씨였다.

“V사 패드 검사 과정도 부적절”

S사는 처음에는 반발했다. 계약 조건에도 없던 25% 수치 때문에 하자 보수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S사가 김광재 이사장에게 보낸 공문을 확인한 결과, ‘공단과의 계약서에 정적 스프링 계수 변화 25% 초과 레일패드 기준을 명시한 바 없으므로 책임질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S사는 불과 5개월 만에 이를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자사의 공구 패드 교체에 필요한 수량이 19만장 정도였음에도 K 시공사 공구 공사에 쓰일 패드까지 추가해 총 30만장의 패드를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조사위는 25% 기준의 적정성과 함께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국토위 소속의 임내현 민주당 의원이 해당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임내현 의원은 “제보에 의하면 재시공을 하지 않을 경우 호남고속철도 사업에 대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좀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재시공할 이유가 없다던 업체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타 업체 물량까지 한꺼번에 매입한 부분과 관련한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철도시설공단은 P사를 배제한 배경으로 ‘P사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P사는 영국 본사 품질보증서 및 공인 기관 시험성적서를 첨부해 공단 측에 공문을 제출했으며, 품질 기준에 대한 보증을 하겠다고 문서를 제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철도시설공단의 주장과 상반되는 부분이다. P사가 직접 작성한 해당 공문에는 ‘경부고속철도 2단계 현장에 부설된 당사 제품이 터널 안에서 25% 이내의 탄성 변화율을 나타내고 있고 해외 부설 실적을 통해서도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당사는 호남고속철도에 사용될 레일패드에 대해 품질을 보증한다. 다만 노천 구간에서는 25%에 대한 국제적 기준도 없고 2개 사(P사, V사) 모두 25%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철도기술연구원에서 산정한 탄성 계수 기준 80KN/mm가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명기돼 있다.

V사 제품에 대한 시험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V사에서 공급할 예정이던 제품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것인데 유럽에서 사용되던 제품을 수거해 검사가 이뤄졌다. 중국산과 유럽산은 색깔과 패드 뒷면에 적힌 영문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직접 수거하는 방식이 아닌 V사에서 알아서 제출한 샘플을 받아서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P사 제품에 대한 감사 때 철로에 깔려 있던 제품을 직접 수거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임내현 의원은 “해당 제품이 야외에 부설됐던 것인지, 터널 내부에 부설됐던 것인지, 새 제품인지 아무런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한 것은 문제가 있다. 거기다가 호남고속철도 레일에 부설될 패드는 중국산인데도 출처가 불분명한 유럽산으로 실험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준을 내세워 한 업체를 배제하고 다른 업체 제품만을 사용하게 해서 4000여억원어치나 독점 공급을 하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레일패드 업체가 두 곳이다 보니 한 쪽이 수주하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고, 다른 쪽이 수주하면 또 다른 쪽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상황이다. (25%가 세계적으로 없는 기준이라는 점에 대해선) 그 문제를 충분히 대외적으로 설명했다. 다양한 기술적 문제는 있지만 우리도 기준을 갖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실시했으며 곧 그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조사 결과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11월 중순쯤 결론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했다. 감사원은 따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도 김광재 이사장에 대한 고발성 보고서가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김 이사장에 대한 투서 문건도 돌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그의 처신 및 인사 문제 등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이사장을 타깃으로 한 감사” 주장도

국토부와 감사원이 비리 의혹에 대해 조사에 나서자 정치권 일부와 철도시설공단 안팎에서는 “김광재 이사장에 대한 압박”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철도시설공단의 한 내부관계자는 “국토부 감사와 감사원 감사 모두 김 이사장에 포커스를 둔 것이다. 김 이사장과 관련한 의혹이나 논란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 역시 “김 이사장은 MB(이명박) 정권 때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그런 인사가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 물러나지 않고 있는 데다, 여권 실세 의원과의 친분을 과시하다가 (청와대로부터) 찍혔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공단에 대한 이번 감사 및 조사 대상은 사실상 김 이사장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들어온 후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가 엄격하고 단호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철도시설공단에 대한 조사 결과가 향후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내현 의원은 “이번 사태만 놓고 볼 때, 철도시설공단이 자체 연구 결과도 무시한 채 특정 업체를 밀어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국토부도 조사를 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조사를 진행해서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국민들께 알려드릴 것이다. 찍어내기 논란으로 자칫 김 이사장 체제에서 벌어진 내부 비리가 희석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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