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규제’ 방어선 구축하라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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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그룹 오너 배당 수익 분석…1·2위 정몽구 회장 부자, 3위 구본무 회장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재계의 최대 관심사는 일감 몰아주기였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오너들의 주머니가 얇아진다는 의미여서 재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10월2일 일감 몰아주기 시행령(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행위 세부 기준 등)을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들어가는 기업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의 43개 기업집단, 1519개 사다. 이 중 상장사는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공정위가 이를 바탕으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적시한 기업은 삼성에버랜드·현대글로비스 등 208개 사다.

ⓒ 시사저널 포토·임준선·박은숙
합병으로 대주주 지분 낮추기 활발

<시사저널>이 30대 그룹 오너들이 최근 5년(2008~12년) 동안 과세 대상 계열사(잠정)로부터 받은 배당 수익을 계산해봤다. 그 결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이번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 입법으로 불이익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정의선 부회장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 계열사로부터 2008~12년에 얻은 배당 수입은 1조2651억원에 달한다. 2위는 그의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으로 9895억원, 3위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으로 9108억원이었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은 의외로 배당 수입이 적은 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9억원으로 17위에 올랐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재벌그룹 오너들이 대거 순위에 오른 게 눈길을 끈다. LG·GS·두산그룹이 그런 예다. 그런데 GS그룹의 경우는 지주회사 체제임에도 그룹 회장의 평가액이 가장 많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GS네오텍 허정수 회장의 배당액이 가장 많았다. 두산에선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의 배당 수입이 가장 많았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은 동생인 허정수 회장보다 적었고,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은 조카인 박정원 회장보다 배당액이 낮았다. 허창수 회장은 심지어 사촌인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보다 배당 수입이 적었다.

지주회사를 둔 재벌그룹 오너들이 줄줄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에 들어가자 재계는 “지주회사의 특성상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정부가 사실상 이중과세를 하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계에 일고 있는 합병 바람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합병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 계열사 수를 줄이고,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은 계열사와 그렇지 않은 계열사를 합병시켜 과세 대상에서 탈출하려는 것이다.

지난 9월27일 삼성SDS와 삼성SNS는 합병을 발표했다. 두산그룹 지주회사인 ㈜두산도 지분 51%를 보유한 두산산업차량의 잔여 지분 매입을 통해 이 회사를 9월1일자로 자체 사업부로 편입시켰다. 세아그룹 계열의 세아로지스는 10월14일 ‘물류 전문 사업과 철강 유통 사업 간의 시너지 효과 창출 및 경영 효율 극대화’를 위해 100% 자회사인 해덕스틸을 1대 0 비율로 흡수 합병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삼성도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이 “네트워크 관련 사업을 하는 두 회사 간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두산이 두산산업차량을 흡수 합병한 이유도 ‘주주 가치 증대를 위해 안정적 수익과 성장이 기대된다’는 것이었다.

재계의 때 아닌 계열사 합병 바람

경제개혁연대에서 활동하는 채이배 회계사는 재계의 합병 열풍에 대해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정책의 하나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재벌그룹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계열사 간 합병도 그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재계가 자초한 면이 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일부 재벌그룹 오너가 대주주 오너 일가 명의의 회사를 세워 이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사전 상속 작업을 벌인 것. 재벌그룹 계열사가 오너 자녀가 대주주인 신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대주주에게 대규모의 이익 배당을 실시해 사실상 회사 돈으로 상속세를 내주는 수법이 유행하자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회사익 편취’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지난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논쟁이 가열됐고, 박근혜정부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 재벌그룹 계열사들의 잇단 합병 발표는 이런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른 재계의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SNS와 삼성SDS의 합병을 대주주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SNS의 지분 45.75%와 삼성SDS의 지분 8.81%를 갖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삼성SNS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삼성SNS(옛 서울통신기술)는 연 매출 5000억원대다. 재계에서는 삼성SNS와 삼성SDS의 합병을 일석이조 카드로 보고 있다. 일단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통합 삼성SDS의 지분율이 11.26%로 조정된다. 합병 전 삼성SDS의 지분을 각각 4.18%씩 갖고 있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지분율도 3.9%로 떨어진다. 이 세 사람의 지분을 더하면 19.06%가 된다. 합병 전 삼성SDS의 오너 일가 지분이 17.17%에서 19.06%로 늘어나지만 합병으로 인해 삼성SDS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선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 2세 3남매의 주식 평가액이 7609억원에서 1조1000억원으로 1.45배 뛴다”고 분석했다. 삼성SDS가 상장될 경우 평가액은 더욱 커지게 된다. 때문에 이번 합병의 최대 수혜자는 이 부회장 등 3남매라고 할 수 있다.

삼성SNS와 삼성SDS는 모두 내부 거래 비중이 워낙 높아서 합병해도 이를 낮추는 효과는 없지만 대주주 오너 일가로 인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오르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됐다.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합병 전 삼성SDS의 오너 일가 보유 지분 비율은 17.17%이고 삼성SNS는 45.75%에 달한다. 2008~12년 삼성SDS와 삼성SNS에서 총수 및 가족이 받아간 배당금은 각각 141억3600만원과 25억2500만원이었다. 이 기간 삼성SDS와 삼성SNS의 내부 거래 비율은 각각 72.45%, 55.62%였다. 삼성SDS는 지난해 매출액이 6조원을 넘는 대기업으로 매출액 중 계열사 의존도는 삼성SNS를 능가했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선 벗어나 있다. 일각에선 “매출액이 1조원 이상인 기업은 오너 일가 지분율이 5%를 넘으면 모두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의 경우 오너 일가 지분율이 6.96%에 불과하지만 2008~12 회계연도에 이들이 받아간 배당 총액은 6976억원에 달한다.

두산이나 세아그룹의 합병은 내부 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두산은 지게차 사업을 하는 두산산업차량을 합병했다. 업종 특성상 두산산업차량은 내부 거래 비중이 낮다. 채이배 회계사는 “지주회사 두산은 주로 그룹의 IT 서비스와 물류를 하는 곳이라 내부 거래 비중이 높다. 지주회사인 두산과 업무상 별 상관없는 연매출 6000억원대의 두산산업차량을 합병시킨 것은 내부 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세아그룹의 물류회사인 세아로지스와 해덕스틸의 합병도 적자가 난 해덕스틸을 이용해 세금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공정위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에 대해 재계 일각에선 이중과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야당이나 학계에선 일감 몰아주기 예외에 관한 세이프존 신설로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무력화됐다고 주장한다.

재벌그룹에서는 정부가 지배구조 투명화를 이유로 지주회사 체제를 권장해놓고 이제 와서 내부 거래 비중이 높다고 지주회사를 다시 규제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 채 회계사는 “지주회사를 정부가 권했다고 하지만 재벌그룹 스스로 경영권 안정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지주회사의 경우 세법상 ‘입금불산입’이라는 규정을 통해 이미 이중과세를 방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공정위가 시행령에서 효율성·보안성 등을 이유로 적용 예외 대상 규정을 신설해 재계가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를 해온 광고·SI·건설 등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은 업종에 대한 규제가 어렵게 돼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과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막기 힘들게 됐다”고 비판했다.

재벌 시스템이 가동된 제3공화국 이래 정부가 재벌기업의 절세와 오너 재테크를 정부 규제로 단속해 성공한 적은 없다. 박근혜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삼성의 건설 사업 어디로 가나 


삼성그룹 건설 사업은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삼성에버랜드 등 4개 계열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부동산 관리업을 하던 삼성에버랜드의 건설업 진출 속도가 빨라지는 게 눈에 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전자 공장 건설 등 플랜트 분야에 참여하면서 건설 쪽 매출액이 1조3000억원대에 달하는 등 에버랜드 매출 비중의 45%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삼성에버랜드에 일감 몰아주기 이슈가 몰려 있다는 점이다. 일반이 알고 있는 놀이공원 매출액은 삼성에버랜드 매출의 10%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단체급식 사업과 건설 사업군이 양분하고 있다. 이는 삼성에버랜드의 매출 대부분이 삼성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은 이재용 부회장이 25.10%를 갖고 있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각각 8.37%를 나눠 갖고 있다. 나머지는 삼성 계열사들이 조금씩 보유하고 있다.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인 삼성에버랜드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이슈가 불거지는 것은 삼성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삼성SNS와 삼성SDS의 합병도 이런 이슈 부각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부사장 간의 역할 분담도 마무리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최근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를 삼성에버랜드가 사들이면서 제일모직이 전자 계열사로 편입된 것도 의미 있는 사건이다. 삼성에버랜드의 사업 구조가 새로 짜이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부진 사장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의 건설 사업 강화가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2010년 말 이후 본격화됐다는 점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중공업과 삼성물산 건설 부문 인력을 대거 영입해 건설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석유화학 지분 33.2%를 소유하고 있다. 석유화학과 플랜트 사업은 관련도가 높다. 삼성물산이 올 하반기 들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조금씩 사들이면서 양 사의 합병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 3분기에 삼성엔지니어링은 746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일각에선 이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을 앞두고 부실을 털어내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건설 사업군을 합병할 경우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는 다시 한 번 요동치게 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3.51%), 삼성종합화학(38.68%), 삼성석유화학(27.27%), 삼성SDS(18.29%), 제일기획(12.64%) 등의 지분을 갖고 있어 지배구조 측면에서 삼성에버랜드만큼 중요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룹 지배구조를 전자 계열, 비전자 계열, 금융 계열로 재편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룹 지배구조의 두 번째 중추인 삼성물산이 포함된 건설 사업 재편은 이재용 부회장 남매간 교통정리 작업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삼성 수뇌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언제 수면 위로 올라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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