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연주하듯 그 뜻을 가지고 논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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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논어 백가락> 펴낸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77)의 집은 서울 북아현동의 비탈진 언덕배기에 있다. 1974년 이화여대 강의를 맡으면서 이사 온 지 40년이 다 돼간다. 1993년 3층으로 개축하고 하얀 페인트칠을 해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됐다. 언덕 위 하얀 집 2층 그의 연구실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지금은 고층 건물들이 전망을 가리고 있다. 남쪽으로 난 베란다에서 보니 공사가 한창인 아파트 건설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 서울의 변화상을 지켜보았을 황 선생. 그에게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여럿 있었다. 가야금에 대한 사랑이야 당연지사, 공자 말씀 되뇌는 버릇도 여전했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문장을 정리해 따로 ‘논어 명언집’을 만들어 품에 넣고 다닌다. 자신의 일상과 음악 인생에서 늘 음미하며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는 말씀만 모은 것인데, 이것을 안 출판사가 책으로 엮자는 요청을 해와 1년 정도 틈틈이 자신의 삶도 돌아보며 다시 정리했다. 출판사는 가야금 명인이 공자 말씀을 풀어썼다고 해서 <논어 백가락>이란 제목을 달았다.

ⓒ 시사저널 박은숙
말이란 뜻이 통하면 그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왜 <논어>를 그렇게 가까이 했을까.

“<논어>의 모든 구절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시대에 맞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런데 <논어>를 되뇌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뭔가. 공자 말씀은 구구절절 평범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니 지금도 사랑받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말이란 뜻이 통하면 그뿐이다’라는 <논어> ‘위령공’ 편의 구절을 되뇌었다.

보통 자신도 모르게 현학적으로 멋스럽게 글을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황 선생은 뜻이 통하면 그뿐인 말처럼 글도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쓴다고 쉽게 써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황 선생의 이 책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심지어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조차 사족이라며 생략했다. <논어>를 읽을 때처럼 부연 설명도 하지 않았고, 충고를 보태지도 않았다.

황 선생은 “잘 그린 동양화를 보는 것과 <논어>를 읽는 즐거움은 꼭 같다. 깨끗한 한지를 은은히 채운 담백한 선과 붓의 터치,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여백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논어>를 읽으면 강요하지 않는 여유로움과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게 하는 데서 묘미를 맛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또한 여백에서 시작하고 편하게 사색하듯 써내려갔다. 그는 ‘너무 평범해 초라한 느낌마저 든다’는 <논어>의 시작부터 그러하다며, 실생활에 옮기기에도 쉽고 유익한 철학임을 강조했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 문장의 묘미는 강요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에 있다고 본다.  ‘열심히’는 강요하는 어투인데 ‘때때로’는 ‘틈틈이’ 또는 ‘네가 하고 싶을 때’처럼 듣는 이에게 넉넉한 기분을 주는 부드러운 말투다. 그리고 ‘이것’ 또는 ‘이것이야말로’가 아니라 ‘이 또한’은 ‘다른 것도 있겠지만 이것도’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또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듣는 이의 의견을 묻는 형식을 취한 것은 참으로 민주적인 화법이라 하겠다.”

황 선생은 공자가 ‘아주 재미있고 고급스러운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를테면 공자가 제자들에게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다”고 말한 대목이 그렇다는 것. 달리 말하면 공자는 아무리 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덕보다는 여색을 더 좋아한다고 했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여색을 좋아한다는 것에조차 가치 판단을 일절 하지 않은 점이 절묘하다. 공자의 위대함은 바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에 덕을 비유함으로써 덕을 그처럼 자연스럽게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발분망식’ 경험한 일화 털어놔

황 선생은 <논어>에 나오는 고사성어인 ‘발분망식(發憤忘食; 무엇을 할 때 끼니마저 잊고 힘쓴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1999년 1월 초 서울대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은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링거 병을 주렁주렁 매단 카트를 힘겹게 밀면서 입원실 복도를 돌아다니며 회복 운동을 하던 어느 날 밤, 남쪽 창문으로 멀리 보이는 시계탑이 조명을 받아 꿈속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죽음에 직면하면서 비참한 지경에 달하니까 역으로 소녀처럼 아름다운 가야금곡을 작곡하고 싶은 발분망식의 충동이 일었다. 3주 만에 퇴원하자마자 악상을 가다듬어 가야금 독주곡 <시계탑>을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사람이 ‘발분’하면 더 뛰어난 정신 활동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로도 황 선생의 ‘발분망식’ 경험은 계속됐다. 그해 3월에는 수술 후유증으로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서도 여의도 영산홀에서 가야금 연주를 했으며, 5월에는 멀리 독일 하노버의 현대음악제에 참가해 가야금 독주를 했다. 그는 <논어> ‘태백’ 편 8장의 ‘사람은 음악에서 완성된다’는 문장을 인용해 자신의 음악 인생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예술은 신과 자연에는 없고 인간 세계에만 있는데, 예술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고 생명적인 것이 음악이다. 사람은 태어나기 이전 태아 때부터 심장의 맥박, 즉 리듬을 지니고 살다가 이 맥박이 그칠 때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생은 음악처럼 철저하게 시간적인 흐름인 것이다. 인본주의자이자 생명주의자인 공자가 ‘사람은 음악에서 완성된다’고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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