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대장’ 한신 타이거스 가나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11.13 16: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승환 보고서’ 긴급 입수 최대 8억 엔 베팅 가능성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요?”

11월 초, 일본 취재를 준비하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이하 한신)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한신이 오승환 영입을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도 잔뜩 연기만 피우는 게 아니냐?”고 떠봤다.

실제로 한신은 2008년부터 이대호(오릭스)·김광현(SK)·류현진(다저스)·이범호(KIA) 등 한국 선수들 영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2008년엔 단장이 나서서 “이대호가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릴 날만을 기다린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신에 입단한 한국 선수는 전무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한신은 연기만 피우고, 실속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온 답변은 진지했다. “지금은 다르지 않을까요?”라는 묘한 뉘앙스의 반문과 “오승환만한 대안도 없던데요”라는 솔직한 대답이었다.

한신의 오승환 영입 노력은 예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과거엔 일본 언론을 이용해 영입 의사를 슬쩍 흘렸다가 맛만 보고 뒤로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엔 국외 담당 스카우트뿐만 아니라 단장까지 방한해 오승환을 보고 갔다.

일본 야구계의 관행을 고려할 때 한신 단장의 방한은 ‘탐색’보다는 영입을 위한 ‘최종 관찰’에 가깝다. 실제로 9월10일, 11일 목동구장을 찾아 넥센-삼성 경기를 지켜본 나카무라 가즈히로 한신 단장은 귀국하자마자 모그룹에 “오승환을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장이 모그룹에 특정 선수 영입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은 ‘필요한 실탄을 지원해달라’는 의미다.

아니나 다를까. 한신은 한국시리즈가 끝나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신이 오승환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승환의 성공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러 루트를 통해 한신의 오승환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 첫 장부터 한신은 오승환을 ‘한 시즌 35세이브 이상이 가능한 특A급 마무리’로 평가했다. 한신이 이처럼 오승환을 높게 평가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오승환의 강속구다. 오승환은 일본 야구 관계자 사이에서 ‘최고 시속 157km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로 잘 알려져 있다. 오승환 정도의 강속구 투수는 일본에도 드물다. 정작 오승환이 더 높게 평가받는 건 속구 구위다. 한신은 보고서에 ‘올 시즌 오승환의 속구는 초당 회전 수가 48rps였다. 이는 강속구 투수 후지카와 규지(시카고)의 전성기 시절 속구 초당 회전 수 46rps보다 높은 수치’라고 명기하고 ‘이 정도 속구 회전 수라면 일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구 데이터 전문가 송민구 야구 칼럼니스트는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리면 걸릴수록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공이 포수 미트 끝까지 힘 있게 날아간다”며 “공의 회전 수가 많을수록 ‘묵직하다’는 평을 듣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한신은 오승환의 속구를 후지카와보다 더 묵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두 번째는 오승환의 컷패스트볼이다. 사실 오승환의 국외 진출이 회자됐을 때 국내 야구 전문가들은 “일본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있어야 한다”며 “포크볼이나 체인지업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야구계 “오승환, 한 시즌 35세이브 가능”

하지만 오승환은 포크볼이나 체인지업에 능한 투수가 아니다. 그는 다른 변화구 대신 시속 140km 중반대의 컷패스트볼을 즐겨 던진다. 분명 컷패스트볼은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신은 오승환의 컷패스트볼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슬라이더처럼 오다가 빠르게 우타자 앞에서 외곽으로 꺾이는 컷패스트볼은 일본에서도 흔한 구종이 아니다. 이를 던지는 투수도 거의 없고, 던진다손 쳐도 완성도가 떨어진다. 반면 정확하게 구사하면 큰 소득을 얻는데 올 시즌 요미우리 자이언츠 신인 투수 스가노 도모유키는 컷패스트볼을 주 무기로 삼아 13승6패 탈삼진 155개 평균자책 3.12를 기록했다.

스가노의 성공으로 한때 일본에선 컷패스트볼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원체 강한 악력을 필요로 하는 구종이기에 웬만한 투수들은 이 공을 던지는 데 실패했다.

한신은 보고서에서 ‘올 시즌 오승환은 속구처럼 오다가 외곽으로 날카롭게 꺾이는 시속 145km 이상의 컷패스트볼로 많은 삼진과 땅볼 아웃을 기록했다’며 ‘일본 타자들을 상대로도 매우 유용하게 쓰일 구종’이라고 칭찬했다.

세 번째는 일본 야구계의 마무리 품귀 현상이다. 올 시즌 한신이 속한 센트럴리그 세이브왕은 42세이브를 기록한 요미우리의 니시무라 겐타로였다. 주니치 드래건스의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는 36세이브를 올리며 2위에 올랐다. 놀라운 건 두 선수를 제외하면 30세이브 이상 올린 마무리 투수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20세이브 이상도 히로시마 도요카프의 캄 미콜리오(27세이브)를 더해 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

한신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아 14세이브의 후쿠하라 시노부가 팀 내 세이브 1위다. 뒷문이 약한 통에 올 시즌 한신은 경기 후반마다 고전했고, 최소 10경기 이상을 내줬다. 한신 관계자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24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후지카와가 올 시즌 메이저리그로 떠나며 어느 정도 공백은 예상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수준급 마무리 투수 확보 없이 팀의 미래도 없다는 게 구단의 확고부동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 뒤져도 오승환만한 마무리 없었다”

애초 한신은 2년간 최소 7억 엔(약 75억원) 이상의 고액이 드는 오승환 영입을 주저했다. 대신 그보다 몸값이 낮은 수준급 외국인 마무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미국 전역을 둘러보고 내린 결론은 ‘오승환만한 마무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한신은 예상을 상회하는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승환 영입에 올인하기로 결심했고, 내부적으로 최대 8억 엔(약 85억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8억 엔이면 역대 일본 진출 한국 선수 가운데 최고액이다. 이전까진 2012년 이대호가 기록한 2년 7억 엔이 최고였다.

일본 야구계 관계자는 “한신이 가네모토 도모아키, 히야마 신지로 등 팀 내 베테랑들이 은퇴하는 바람에 여유 자금이 생겨 오승환 쟁탈전에서 과감히 베팅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오승환에게 8억 엔을 투자할 구단은 한신밖에 없다”고 밝혔다.

몸값을 제외하고도 한신은 소프트뱅크나 오릭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인기 구단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한신과 요미우리가 움직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실례로 한 시즌 홈 관중만 300만명에 달한다.

일본 야구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오승환이 아직 젊기 때문에 2년 후를 기약할 필요가 있다”며 “오릭스 같은 비인기 구단보단 한신 같은 인기 구단에서 뛰는 게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정은 오승환의 몫이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한신 유니폼을 입을지, 다른 구단에 둥지를 틀지는 순전히 오승환이 결정할 문제다. 중요한 건 오승환이 미국 메이저리그보단 일본 프로야구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오승환은 일본 경험이 풍부한 한 선수에게 “오사카에서 살기 좋은 동네가 어디냐?”고 물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