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정치력 부재’ 자인할 셈인가
  • 박명호 |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
  • 승인 2013.11.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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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주도해 만든 ‘국회 선진화법’ 1년 만에 폐기하려는 건 자기모순

정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자가당착이란, ‘같은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의 앞뒤가 어긋나 모순되는 경우’다. 자기모순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지금 집권 여당 새누리당의 모습이 그렇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1년 전 주도해 만들어놓은 법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그 법은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이다.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 다수당이 법안 등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소수당이 이를 막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면서 빚어지는 국회 폭력 사태와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개정한 국회법 85조를 말한다. 날치기와 몸싸움을 없애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대폭 강화하면서 신속처리법안 지정 요건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으로 강화한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9월 ‘국회 선진화법 개정을 위한 국회법 정상화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7명의 율사 출신 의원으로 구성된 TF팀은 최근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에 관한 구체적 법리 검토를 더 집중적으로 하기로 했다”며 “국회법을 개정해서 보편적인 의회주의 원리, 다수결 원리가 작동될 수 있게 하되 여야가 대화와 타협의 공간을 넓혀갈 수 있는 쪽으로 개정안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 청구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법 개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 개정 가능성 희박

하지만 새누리당이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물론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 제기가 필요하다면 이는 언제든 가능하다. 법률 개정 후 드러나지 않았던 위헌적 요소가 발견된다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기도 하고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수정 보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심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기본권 침해’ 여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소원은 기본적으로 법률을 포함해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不)행사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었을 때 제기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회 선진화법의 경우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침해받는 기본권’이 불분명하고,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 절차 등과 관련된 권한을 기본권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 새누리당이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면, 집권 여당이 ‘공권력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된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어려운 것이다.

나아가 입법기관이 헌법소원을 낸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다고 국회 선진화법 개정도 쉽지 않다. 현재 국회 선진화법이 유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회 선진화법의 개정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 볼 때, 필요하다면 법 개정도 할 수 있고 위헌심판 또는 헌법소원 제기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국회 선진화법의 경우, 국회의원이 헌법도 모르고 위헌이 되는지도 모르고 법을 통과시켰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난해 국회 선진화법 개정 당시에도 새누리당 내에서 위헌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든가, 다수결 원리에 위배된다든가 하는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대다수가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국회 선진화법을 반대하면 반(反)개혁적인 사람으로 취급돼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의원들은 마지못해 찬성표를 던졌고, 반대하는 일부는 아예 표결에 불참했다. 결국 국회 선진화법은 처음부터 자가당착의 정치로 전락할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 것이다.

2010년 12월8일 여야는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벌였다. 국회 본회의장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시사저널 포토
집권 여당, 국회 다수당 역할 스스로 부정

정치는 ‘자기부정(自己否定)’이다. 자기부정이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다. 자기부정의 정치에서 조금 더 나가면, 그것은 ‘자해(自害)의 정치’가 된다. 지금 새누리당의 모습이다.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려는 집권 여당이자 국회 다수당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치의 논리로 풀어야 하는데 그 해결을 주도해야 할 집권 여당이자 국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역할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 손으로 만든 법을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는 것이 바로 스스로 정치를 부정하는 것이고, 집권 여당이자 국회 다수당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집권 여당이자 국회 다수당의 정치력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1년 동안 국정원과 검찰이 정치 중심에 섰고, 여당이 뒷바라지와 지원 사격을 하는 꼴”이라는 내부의 비난에 공감하는 여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국회 선진화법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대표적 정치 쇄신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당시에도 집권 여당이자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 주도로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재적 192명, 찬성 127명, 반대 48명, 기권 17명으로 통과된 것이 국회 선진화법이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은 1년 전 국회 선진화법이 총선이 끝나고 임기 마감을 앞둔 레임덕 국회에서 처리돼 부실 심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낙선했는데 이들이 국회 선진화법 표결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국회 선진화법을 둘러싸고 문제가 될 것들을 당시에 충분히 세밀하고 치밀하게 검토하지 못했다는 게 새누리당의 변명이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별생각 없이 국회 선진화법을 처리했다는 얘기다. 그때의 새누리당과 지금의 새누리당이 다르다는 ‘자기부정의 정치’다.

물론 새누리당이 국회 선진화법을 지적하고 나선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여당 원내대표의 언급처럼 지금이 “야당의 불참으로 결산심사가 파행을 겪고 있고, 예산안 처리도 불투명해졌으며, 민생경제 입법의 적기 처리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는 무엇보다 여야의 극한 대치와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국회 의사 일정이 줄줄이 밀리면서 나타난 ‘정치 파행의 결과’다. 이렇게 된 데에 국회 선진화법이 일정 부분 기여한 측면이 있다. 국회는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가 없으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자기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1년 만에 국회 선진화법을 개정하려 시도하거나, 위헌심판 또는 헌법소원 대상으로 고려하는 것은 ‘자가당착의 정치이자 자기부정의 정치’다.

정치는 ‘자기 고백(自己告白)’이다. 자기 고백이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검토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정치력 부재의 고백’이다. 대화와 타협의 합리적 야당을 전제로 한 국회 선진화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정치는 자기반성을 통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역할에 만족하는 사람은 31%에 불과하다. 53%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복원을 위해 ‘비(非)정상의 정상화’가 새누리당에서부터 필요하다는 반증이다. 첫출발은 지도부의 정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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