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도쿄지점 부당 대출 5000억 달한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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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20여 개 업체에 대출…100억 리베이트설도

“어떻게 단일 해외 점포에서 1700억원이나 부당 대출을 했다는 건지…. 은행원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알겁니다.” 오랜 기간 은행에 몸담으며 지점 영업과 본점 근무를 모두 경험한 한 인사는 KB국민은행(이하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 대출 관련 사고에 대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실제 액수는 17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까지 1700억원으로 알려져 있는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한 대출 규모가 건실한 여신들까지 모두 합하면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감독 당국 내부 관계자 ㄱ씨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 대출액 1700억원은 비교적 부실한 여신만 따진 것이고, 비교적 건실한 여신까지 합하면 5000억원 가까이 된다.

대출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국민은행 도쿄지점이 있는 덴키 빌딩. ⓒ 연합뉴스
대표이사가 같거나 관계된 업체들에 대출

은행은 여신, 즉 대출을 취급할 때 돈을 빌린 사람의 상환 능력이나 거래 내용에 따라 5단계(정상·요주의·고정·회수 의문·추정 손실)로 나누어 관리한다. ‘정상’에서 ‘추정 손실’ 등급으로 갈수록 부실하다. 보통 ‘고정’ 등급부터 ‘추정 손실’까지를 ‘고정 이하 부실 여신’으로 분류해 은행의 부실 책정 기준으로 삼는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애초 부당하게 취급한 혐의가 있는 대출액이 5000억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확인한 후 이 중 부실로 드러난 1700억원을 가려냈다. 나머지 3000여억원은 비교적 건전한 여신으로 판단했으나 부실 위험이 적을 뿐이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3000여억원에 대해서도 리베이트가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로 들어온 비자금은 기존에 알려진 20억원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ㄱ씨는 “부실 여신인지 건전 여신인지에 대한 문제와 해당 여신이 범죄와 연관됐는지는 별개다.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1700억원에 해당하는 부분이지만 건전하다고 분류된 나머지 3000여억원에 대해서도 국내로 리베이트가 건너온 게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에 대한 조사는 간단히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금감원 및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사 인력을 철수하지 않고 일부가 현지에 남아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수사는 검찰로 넘어가야 이뤄지지만 기본 조사는 금감원이 맡고 있다. 해당 대출은 현재까지 20여 개 이상의 일본 현지 업체들에 대해 이뤄졌으며, 대표이사가 동일 인물이거나 특수관계에 있는 업체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전 도쿄지점장 이 아무개씨와 팀장, 그리고 직원 등 3명이 부당 대출을 해주고 수수료를 챙겼다는 사실과 이 돈이 국내로 흘러들어온 정황을 파악했다. 그 규모는 처음엔 20억원으로 알려졌지만, 조사 과정에서 추가 비자금이 계속 드러나면서 100억원에 이른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 돈 중 일부가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하는 데 쓰인 것으로 확인했다.

천문학적 부당 대출 규모로 볼 때 이번 사건은 단순히 지점장과 직원 몇 명이 저지른 일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보통 은행의 해외 지점 영업은 현지인이 아닌 교포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영어가 좀 서툴러도 일을 하는 데 불편이 없어 해외 지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만,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는 해외 현지 은행들에 비하면 규모나 인지도 등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실상 현지 영업이 힘들다고 한다. 금융권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는 “해외 점포가 굴지의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 교포를 상대로 영업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해당 (부당 대출) 액수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준이다. 그 정도 액수를 (부당 대출) 했다는 것은 지점장 전결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건은 지점장 및 직원 비리가 아니라 본사 경영진이 개입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2010년 7월13일 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취임식 당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 시사저널 박은숙
“4대 은행 MB맨 솎아 내기” 주장도

이번 금감원 조사 여파는 국민은행의 경영진에까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전 KB금융지주 회장을 주목하고 있다. 금융지주의 평가보상위원회는 11월19일 어 전 회장의 성과급 지급과 관련한 논의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도쿄지점 부당 대출 건에 대한 금감원 검사가 완료된 이후로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민은행 내부에서도 어 전 회장과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선 이 전 지점장이 도쿄지점장을 하던 시기와 어 전 회장의 임기가 겹치는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이 전 지점장은 2010년 1월부터 도쿄지점장으로 발령받았는데 그 기간은 대부분 어 전 회장의 임기였다. 또 어 전 회장이 도쿄지점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것도 논란이다. 업계에 따르면 보통 해외 점포 지점장 자리는 매력적인 곳으로 꼽힌다. 한번 해외를 거치고 돌아오면 해외 출신인 점을 감안해 조직에서 키워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영업보다는 본사에서 높은 사람이 해당 국가를 방문했을 때 수행이나 의전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체로 ‘잘나가는 사람’이 가는 보직인데, 정확히 표현하면 일 잘하는 사람보다는 ‘위에서 믿는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도쿄지점장 자리 역시 전형적인 ‘노른자위’ 자리였다고 한다. 이 전 지점장은 과거 검찰 조사를 받았던 인물인데, 도쿄지점장 발령을 받고 승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국민은행 내부에서도 윗선 누군가가 돌봐줬을 거라고 보는 이가 많다.

한편 최근 이뤄지고 있는 4대 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일련의 검사가 ‘MB맨’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국민은행뿐 아니라 하나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 역시 금융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하나은행은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미술품을 사들여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금융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파이시티 신탁상품 불완전 판매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으며, 신한은행은 2010년 정치인 및 고위 관료들의 계좌를 불법 조회했다는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관련 금융 비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금융이 공공의 영역이 아니라 정권의 놀이터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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