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꿀려서 ‘한국 흔적’ 맹렬히 지우나
  • 대마도=최준필 기자 (choijp85@sisapress.com)
  • 승인 2013.12.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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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현지 르포…<천년한 대마도> 출간 등 국내 관심에 일본 ‘예민’

11월16일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이 대마도(일본명 쓰시마)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 기업의 쓰시마 토지 구입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대마도가 일본의 해상자위대 본부가 들어서 있는 등 군사 전략지로 중요한데, 여기에 한국 세력이 들어오고 있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황당한 발언이었다. 때마침 국내에서도 인기 작가 이원호씨가 역사적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대마도는 원래 우리 영토였다는 사실을 고증하는 소설 <천년한 대마도>(맥스교육 출판)를 펴내면서 한일 양국 사이에 대마도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11월22일 대마도를 찾았다. 부산에서 뱃길로 불과 1시간 남짓이면 대마도의 히타카츠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일본 본토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다. 현재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 현 부속이다. 섬 전체가 나가사키 현 쓰시마 시에 속해 있다. 과거 탐라(제주)와 함께 우리나라의 ‘양발’이라 기록된 대마도가 어떤 연유에서 오늘날 일본 땅이 되어버린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대마도에 가려면 도쿄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권이 있어야 한다.

섬 곳곳에 우리 문화재 살아 숨 쉬고 있어

‘한국과 일본 간 영토 문제’라고 하면 모두들 ‘독도’를 주목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독도는 지켜야 할 자존심이다. 반면 ‘쓰시마’란 명칭이 더 익숙한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최근 출간된 <천년한 대마도>는 눈길을 끈다. 이 책은 해동지도 등 다수의 고지도를 근거로 1876년 일본이 대마도를 강제 편입하기 전까지 엄연한 조선 땅이었음을 밝히며, 한국전쟁 등으로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진 ‘대마도’를 되찾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취재진이 대마도에서 2박 3일간 머무르며 우리 조상의 숨결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을 모델로 삼은 한국전망대를 비롯해, 대마도 곳곳의 사찰에서 신라 불상, 고려 불상, 조선 시대 범종을 볼 수 있었다. 또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신라 왕자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처형당한 박제상의 순국비, 조선통신사가 일본 본토 방문을 위해 대마도를 경유할 때마다 숙소로 사용했던 서산사, 옛 이즈하라 성문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려문, 조선 숙종 때 조난당해 목숨을 잃은 조선 역관사(譯官使) 108명을 기리는 역관사비, “왜놈들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버틴 구한말 위정척사운동의 거두였던 항일 의병장 면암 최익현의 순국비, 정략결혼으로 대마도주 아들과 결혼한 덕혜옹주(고종 황제의 딸)의 결혼봉축기념비 등 대마도에는 우리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다. 수많은 한국의 유산을 접하면서 이곳이 일본 땅인지, 한국의 외딴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마도에 위치한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에는 한글로 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왼쪽 위 사진은 . ⓒ 시사저널 최준필
최근 몇 년 전부터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일본이 대마도 곳곳에 산재한 한국 관련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대마도가 조선 땅이었음을 증명하는 관련 문서들과 자료, 유적들이 대다수 폐기되거나 은폐됐다. 백제에서 유래한 수령 15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 옆에 설치된 새 표지판도 ‘백제’라는 단어를 쏙 빼버리고 단지 ‘긴의 큰 은행나무’라는 내용만 적혀 있다. 대마도가 백제의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조치다. 이즈하라 항 부근에는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표시한 표지판이 새로 세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였음을 나타내는 자료들은 아직도 무수히 많다. 1592년 일본인이 제작한 ‘조선팔도총도’와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 등 여러 고지도에 대마도는 명백한 조선의 영토로 표기돼 있다. 또한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은 무려 60여 차례나 대마도 반환을 일본에 공식 요구했다. 최근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대마도를 방문하는 한국인 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 시사저널 최준필
대마도 주민들은 ‘한국 흔적 지우기’에 소극적

그러자 일본에선 최근 부쩍 한국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나섰다. 앞서 일본 방위상의 돌출 발언도 있었지만, 11월19일자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에서 출간된 <천년한 대마도>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 책의 타이틀인 ‘천년한’은 박근혜 대통령이 올 3월1일 3·1 독립운동 기념식에서 연설했을 때 언급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1000년의 역사가 지나도 바꿀 수 없다’는 발상과 ‘대마도는 옛날부터 한국의 영토다’라는 작가의 주장을 담고 있다. 책의 뒤표지에 ‘일본은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보라, 천년 동안 한민족을 침탈한 악마의 진상을’이라는 내용이 있다. 일본에게 ‘대마도는 한국 영토’라는 주장 이상으로 황당무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북한과 힘을 합쳐 일본을 공격한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정작 대마도 주민들의 반응은 일본 본토의 호들갑스러움과 다소 차이가 난다. 한국 관광객들 덕에 호텔·음식점·상가 등 현지의 모든 비즈니스가 활성화됐고, 한국과의 교역이 없으면 경제에 직격탄을 맞는 대마도 주민들은 이러한 ‘한국 흔적 지우기’와 ‘한국 자극하기’에 소극적이다. 취재진과 함께 대마도를 방문한 임영주 창원시 대마도의날 추진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은 “독도는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대마도는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아쉽다”며 “지금은 전 국민이 대마도에 관심을 갖고, 대마도를 우리의 고토로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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