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제거 작업, 작년부터 준비”
  • 감명국 기자·이승열│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 ()
  • 승인 2013.12.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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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주석궁’은 철옹성 과시…김정은 친정 체제 확고해질 전망

미세 먼지만큼이나 탁한 혼돈의 기류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를 뒤덮고 있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으로 중국이 일본은 물론 한국과도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한동안 잠잠하던 평양발 뉴스가 또다시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북한 ‘권력 2인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실각설이 그것이다. 국정원은 12월3일 “장성택 최측근 2명이 공개 처형을 당했으며,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최근 대선 개입 수사와 국회 국정원개혁특위 등의 이슈를 불식시키기 위해 내용을 과도하게 부풀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보면 장성택의 실각설은 틀리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된 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미 김정은 체제가 공식화된 순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으며, 다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가 관심사였다”고 밝혔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 또한 “일찍이 ‘장성택은 그의 부인 김경희 당비서가 사망하기 전에 권력의 중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며 “사실 지난해부터 장성택에 대한 검열이 들어갔고, 다만 이런 문제가 외부로 공식화된 시기가 예상보다 좀 더 빨라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북한 참전 열사묘 앞에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뒤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왼쪽 두 번째)과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따라가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의 대다수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의 실각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는 12월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 때 장성택이 모습을 드러낼지 여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섣부른 단정을 피하기도 하지만, “설령 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장성택의 힘은 이미 꺾였다고 보는 게 맞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고유환 교수는 “장성택이 완전히 숙청당한다기보다는 과거 김정일 권력 이양기 때 그의 숙부인 김영주가 명예직만 유지하면서 서서히 사라졌듯이 장성택도 그런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의 핵심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리룡하 당중앙위원회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의 죄명은 구체적으로 ‘월권’과 ‘분파 행위’ 그리고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 거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장성택의 뒤에 숨어서 당 위의 당으로, 내각 위의 내각으로 군림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경제 과업 관철 및 군사 분야에까지 관여하려 책동했다’고 비판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부 득세하리란 전망은 설득력 떨어져”

출범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고려할 때 장성택 실각설은 북한 체제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장성택 실각의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첫째, 집권 2년 차를 맞는 김정은의 친정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2010년 9월 김정일은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기 4개월 전, 매제인 장성택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리고 장성택의 최대 정적인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했다. 장성택을 김정은 후계 체제의 후견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김정일은 또한 선군 혁명의 대표 주자로서 리영호 총참모장을 김정일과 김정은 사이에 앉게 했다. 1980년 6차 당대회 당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을 김일성과 김정일 사이에 앉게 했던 것과 똑같이 백두 혈통의 수호자로 리영호를 지목한 것이다.

김정일의 이러한 조치는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으로 권력 기반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아들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체제를 구축할 때까지 안정적인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엘리트 집단 간의 충성 경쟁을 유발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7월15일 리영호에 대한 전격 숙청은 자연스럽게 군부의 약화와 더불어 장성택과 당의 권력 강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북한 권력의 핵심인 정책 및 인사 등이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러한 흐름은 10월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11월 장성택의 실각으로,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후견 체제가 집권 2년 만에 모두 무너지고 김정은의 친정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발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둘째는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자 지명과 2010년 9월 김정은의 후계자 공식화 이후 북한 엘리트 집단 중 당을 기반으로 하는 체제 보위 집단과 선군 혁명을 내건 군부 집단 간의 권력투쟁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당과 군부의 경쟁은 특히 경제 정책을 둘러싼 의사 결정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장성택은 무엇보다 경제 주도권을 군부에서 당과 내각으로 가져오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4월6일 김정은은 ‘4·6 담화’를 통해 군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의 권한을 내각으로 이전하도록 명령했다. 같은 해 6·28 조치를 단행해 기업과 협동농장 등에 대한 자율권을 대폭 강화해 군부와 연결된 중앙과 지방의 ‘전주’들 자금을 당과 내각으로 끌어당겼다. 장성택의 투자 유치 위주 경제 정책은 군 단위별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군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상당한 불만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최룡해 총정치국장 또한 군부의 일원으로서 장성택과의 협력 관계에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는 평가를 낳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장성택이 최룡해 등 군부 세력과의 파워게임에 밀려 실각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성택 실각에 따른 빈자리를 최룡해가 메우며 ‘2인자’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대해 정성장 위원은 “최룡해는 전형적인 당 엘리트로서 총정치국장 직책을 가지고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를 보장하고 있다. 최룡해는 단순한 ‘군부 세력’이라기보다는 ‘반당반군(半黨半軍)’ 엘리트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전통적인 군부 엘리트인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의 위상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계속 하락해 현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은 당 중앙위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직도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장성택이 군부 세력과의 파워게임에 밀려 실각했다는 주장은 북한 현실과 괴리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장성택 부위원장이 집무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은, 젊은 군 엘리트 완전 장악”

관심을 끄는 것은 장성택의 공백이 북한, 나아가서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다. 장성택의 실각은 김정은 2년 집권 동안 있었던 엘리트 숙청 및 교체 과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것은 로열패밀리 안에서 이루어진 권력투쟁이며, 특히 북한 당과 군부의 대척점에서 일부 엘리트를 이끌었던 장성택이 제거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 권부는 그동안 당과 공안 및 군부에 넓게 포진했던 장성택 라인을 제거하려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군부가 국가안전보위부, 조직지도부와 함께 숙청 과정에 깊이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숙청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자연스럽게 군부가 선군 정치의 기치를 들고 새롭게 권력 중심으로 들어올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룡해의 역할이 주목받게 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

정성장 위원은 “리룡하와 장수길 모두 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이므로 이들의 ‘반당 혐의’에 대한 조사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장성택 측근의 공개 처형에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장성택의 실각으로 지난해 파워엘리트 중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장성택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수행했고, 올해는 가장 많이 수행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확실한 2인자 자리를 굳히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최룡해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그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간부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국내 일각에는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과 장성택의 복귀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존재한다. 탈북자 출신으로 조선일보 기자를 지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김정은에게 장성택은 견제의 대상이지만, 완전한 제거로 가기에는 여전히 부담이 남을 수밖에 없다. 현재 군부와 당에서 양대 권력을 유지하는 장성택과 최룡해는 김정은 권력 초기 안정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군부 경험이 없는 최룡해가 야전파 핵심 장군들을 무더기로 숙청하면서 군부 권력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부글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성택이라는 한 축이 무너진다면,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자칫 권력 견제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장성택이 ‘친중파(親中派)’라는 점을 들어 중국의 배경을 등에 업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윤걸 소장은 “중국 현지에서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평양에 ‘장성택을 제거하지 말라’고 만류한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이제 더는 장성택에 가려지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는 강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 군부의 움직임이 심상찮을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도 고유환 교수는 “이미 군 고위 간부에 대해서는 김정은 집권 2년 동안 잦은 교체를 통해 완전히 힘을 빼놓았다”며 “오히려 주목되는 그룹은 군부 3·4세대 젊은 엘리트들인데, 이들은 김정은이 완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장성택의 실각은 큰 틀에서 보면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로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장성택 복권 가능성 희박하다”  


과연 장성택은 이번에도 재기할 수 있을까. 그동안 장성택이 세 번이나 실각했던 이유는 대체로 부인 김경희와의 관계 혹은 김정일 정권 시절 ‘2인자’ 행세를 한다는 이유 등이었다. 그래서 숙청이라기보다는 정신을 차리라는 차원에서 경고의 의미가 더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무엇보다 장성택의 실각과 함께 공개 처형을 당한 최측근인 리룡하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북한에서 가장 무거운 ‘반당 혐의’로 처형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장성택의 자형(?兄)인 전영진 주(駐)쿠바 대사가 가족과 함께 소환되었고, 장성택의 조카인 장용철 주말레이시아 대사도 소환되면서 장성택 일가에 대한 숙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북한 권력사에서 반당 혐의는 최고 존엄에 대한 죄로 엄격하게 처리돼왔다.

특히 주목되는 인물이 장성택의 부인이면서 만경대 혈통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김경희 당비서다. 평양 주석궁에서 김경희의 존재는 북한 로열패밀리의 대모로서 만경대와 백두 혈통인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권력 정통성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비교적 젊은 당내 소장 그룹과 모의해 장성택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결국 혈통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김경희의 동조가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현재 김정은은 평양을 떠나 외곽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에 장성택의 실각과 주변 인사들에 대한 처형을 진행한 것을 보면, 김정은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장성택에 대한 숙청을 감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진행된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장성택이 복권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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