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레이스, 너도나도 불안하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엄마 서둘러 ‘사교육 출발’…돈 쓴 만큼의 효과는 나중 문제

시사저널이 ‘4교시 수업’을 준비했다. 사교육 전문가 및 관계자들이 지금 사교육 시장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과연 사교육은 성적 향상 효과가 있는지를 살폈다. 실제로 성적을 올리는 사교육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었다. 오래 곪아온 사교육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방향도 짚었다.

과목은 국어-수학-과학-사회 순이다. 수업 내용 중에 과목 특성과 어긋나는 것이 끼어 있더라도 그리 문제될 건 없다. 바야흐로 21세기 교육의 화두는, 통섭과 융합의 가치다.

2014학년도 수능 다음 날인 11월8일, 대치동의 한 논술학원 앞에 수강 신청을 하려는 학부모와 수험생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연합뉴스
■ 1교시 국어

“지금 입시는 총성 없는 레이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특유의 난해함으로 수험생들을 괴롭혀온 시인 이상의 <오감도> 첫 행이다. 국어 문제집에서는 이 시를 ‘현대인의 불안 심리와 두려움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가르친다. 거리를 질주하는 ‘아해’(아이)의 이미지가 입시 전쟁을 치르는 학생들과 유사해서일까. 학원 관계자들은 입시 문화의 변화상을 흔히 ‘달리기’에 빗대 설명한다. 불안 심리와 두려움이 섞인 달리기다. 비유와 상징을 동원한 그들의 설명은 이렇다.

“과거 입시에는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있었다. 공교육이 중심이 되고 사교육이 이를 보완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시 교육에서 사교육이 공교육의 영역을 대체하고 나섰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좋은 사교육을 자녀에게 최대한 빨리 제공해줘야 자녀가 공부를 잘할 거라 생각하게 된다.

지금 입시에는 총성이 없다. 시작 신호가 없는 경주를 상상해보라. 처음엔 주변 눈치를 본다. 점점 불안해진다. 일단 서둘러 출발해야 경주에서 이길 것 같다. 결국 너도나도 빨리 뛰기 시작한다. 사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이 레이스가 장거리 경주라는 것이다.

일찍 뛰었다가 나가떨어지는 아이들이 생긴다. 타고났든 훈련의 결과든 고강도의 레이스를 견딜 수 있는 아이들만 살아남는다. 과도한 조기 사교육과 선행 학습이 유행하게 된 지금 상황이 딱 이 꼴이다.”(최영석 송파 청산수학원 원장)

사교육이 공교육을 위협하게 된 상황이 학생들이 더욱 힘들게 공부를 해야 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학생들은 그렇게 힘들게 공부한 만큼의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일까.

■ 2교시 수학

숫자로 본 사교육 효과와 영향

12월1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종단 자료를 통해 본 사교육의 장기적 효과’라는 제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05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학생 6908명이 만 30세가 되는 시점까지 교육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한국 교육 종단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국·영·수 사교육 여부가 1년 후의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해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어 과목의 성적 향상 효과는 없었다. 영어와 수학은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점수가 올랐다. 조사 대상 학생들의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이 5~6시간인데, 오른 성적은 0.05로 표준편차 내외였다. 학생들의 평균점수가 100점이고 표준편차가 10점이라고 가정했을 때, 1주당 5~6시간 사교육을 받은 결과 수학·영어 과목 점수가 0.5점 올랐다는 뜻이다.

연구 결과만 놓고 보면, 적어도 중학교 수준에서 사교육의 성적 향상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전해들은 학부모가 사교육의 효과를 부정할 수 있을까. 한 학원 강사는 “사교육은 효과를 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완전히 엇갈릴 수 있다.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평균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 학부모들에게 그리 중요하겠나. 아마 자녀에게 더 좋은 사교육을 제공해 효과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3교시 과학

성공하는 사교육을 위한 ‘화학식’

박재원 노워리상담넷 소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 상담을 진행했다. 열심히 사교육을 받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사례를 많이 봤다. 공부가 성공의 발판이 아니라 실패의 이유가 되는 현실을 수도 없이 맞닥뜨렸다.

“시간에 노력을 더해 실력으로 바꾸는 행위.” 박 소장이 제시하는 공부의 정의다. 그렇다면 사교육은 시간과 노력에 ‘돈’을 더해 실력으로 바꾸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시간·돈·노력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실력으로 바뀌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촉매가 필요하다. 바로 ‘자발성’이다. 스스로 자신이 모르는 점을 궁금해하고 지적인 호기심을 발휘하는 학생이 결국 입시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지금 많은 학부모가 ‘돈’을 공부의 촉매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대치동 신화’에 거품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학생의 성공을 마치 대치동 전체의 것인 듯 포장하는 게 문제다. 똑같이 많은 양의 사교육을 받는다 해도, 결국은 그것을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소화하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는다. 많은 돈을 들인 몰입식 사교육이 반드시 입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 4교시 사회

사교육 문제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사교육 문제를 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 ‘게임 이론’을 응용한다. 정 원장은 자신의 저서 <협동의 경제학>에서 “사교육 문제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에 해당하기에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면 둘 모두가 최악의 결과를 맞도록 설계된 상황을 말한다. 두 명의 죄수가 협동하면 가장 적은 형량을 받을 수 있음에도, 상대가 배반할 가능성을 계산해 행동하다 둘 다 가장 많은 형량을 받는 상황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학부모에게는 ‘사교육을 시킨다’와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라는 두 선택지가 있다. 다른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킨다면 내 아이가 뒤처질 것이 우려돼 사교육을 시킨다. 다른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면 내 아이가 조금 더 좋은 성적을 얻을 기회라고 생각해 사교육을 시킨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교육을 시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 원장의 설명이다. 사교육 시장을 그대로 방임하면 학부모들은 모두 ‘사교육을 시킨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과열된 사교육을 진정시키기 위한 해법은 하나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해소하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두 죄수가 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결국 나와 남이 모두 사교육을 안 시킨다는 합의가 상당 부분 진전돼야 한다.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자는 것이 정 원장의 주장이다. “선행 학습 규제, 학원 교습 시간 제한, 학원비 상한제 등의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과도하게 팽창한 사교육계를 적절히 공교육의 틀 속으로 흡수해나가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