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 예산 277억 어찌 썼는지 ‘감감’
  • 이규대 기자, 삼척·강릉=이석 기자 ()
  • 승인 2013.12.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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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감사원 감사 중…‘3년 졸속 공사’가 화 불러

2008년 2월10일 숭례문이 화마(火魔)에 휩싸였다. 한 50대 남성의 방화 때문이었다. 목조 건물인 문루 상층의 90%, 하층의 10%가 소실됐다. ‘국보 1호’의 상징성을 지닌 문화재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국민의 충격은 컸다. 관리 부실을 질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4개월여 동안 화재 현장 수습이 진행됐다. 그해 5월20일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 기본 계획’을 발표한다. ‘숭례문 중건과 변천 과정 등을 면밀히 고증 조사하고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옛 모습대로 복원해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훼손된 육축과 양 측면의 성곽도 함께 복원하기로 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기술 지원부터 공사 진행까지 모두 스스로 총괄하는 ‘국가 직영 추진 방식’을 천명했다. 주무 관청인 문화재청이 숭례문 복원 전 과정을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2008년 6월부터 2009년 12월까지는 ‘조사-발굴-고증-설계’ 단계였다. 현장의 부재 조사와 분석, 발굴 및 고증 조사, 복구공사 계획 확정이 이어졌다. 복구공사의 관건은 핵심 부재인 목재 확보였다. 현행 법령에서는 목조 문화재 복구 시 ‘육송’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래종 소나무다. 국내 각지의 소나무를 검토하던 문화재청은 강원 삼척시 준경묘 일대의 금강송을 낙점했다. 2008년 12월10일부터 한 달여에 걸쳐 20그루를 벌채했다.

민간 건설사에 복원 공사 위탁

그런데 복원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단계에서 ‘국가 직영 추진 방식’을 내세웠던 문화재청의 방침이 바뀐다. 2009년 12월8일 복원 사업을 담당할 시공사로 민간 업체인 명헌건설이 선정된다. 그로부터 3일 뒤 공사 실무를 담당할 장인들이 분야별로 위촉된다. 복원 공사는 문화재청이 시공사 명헌건설에 총공사비 167억8500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용역을 주고, 다시 명헌건설이 각 공정을 담당하는 장인들과 계약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복원 공사가 한창이던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약 한 달간 공사 중단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공사 과정에서 신응수 대목장에게 “목재 가공 등 공정 전 과정에 전통 방식을 적용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인건비 계약 당시 명헌건설과 신 대목장은 이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 인해 명헌건설과 목수들 사이에 인건비에 대한 견해차가 생긴 것이다. 갈등은 아무런 조건 없이 기존 계약대로 공사를 재개하는 것으로 봉합됐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 일대에 펼쳐진 금강송 군락지. ⓒ 시사저널 임준선
2012년 3월8일에는 건물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후 진행되는 상량식(上梁式)이 열렸다. 복원 공사가 75% 이상 진행된 것이다. 이후 기와 올리기, 단청 공사, 방재 시스템 구축 등의 단계를 차례로 밟아 숭례문 복원이 마무리됐다. 화재 이후 5년, 본격적인 복원 공사가 시작된 이후 약 3년 만의 일이었다. 2013년 5월4일 대대적인 준공식이 열렸다.

그러나 불과 5개월이 지난 10월 단청이 벗겨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후 문루 하층부 새로 쓴 부재와 기존 부재의 이음새 10여 곳이 제대로 결합되지 않는 현상, 상층 누각의 기둥과 서까래에 균열 발생 등이 추가로 드러났다. 숭례문 복원 사업이 총체적 부실 의혹에 휩싸였다. 관리 책임 관청인 문화재청이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산 기둥’ 의혹까지 불거지고 말았다.

문화재청이 지난 4월29일 공개한 ‘숭례문 복구 예산’에 따르면, 총예산은 276억7000만원이었다. 국비가 245억원, 기탁금 등 기타 예산이 31억200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복구 예산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12월13일 “현재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어서 구체적인 지출 내역을 밝히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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