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아파트가 달궈졌다
  • 박일한│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13.12.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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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비수기 ‘이상 집값 상승’ 4·1 및 8·28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 영향

부동산 시장의 12월은 연중 주택 거래량이 가장 적고 집값도 내리는 전통적인 비수기로 통한다. 국민은행이 조사한 1986년부터 2012년까지 27년간 평균 월별 주택 가격 변동률 자료에 따르면 12월은 1년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변동률(-0.02%)을 기록한 달이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2월3~9일 서울 주간 아파트값은 4주 만에 상승세로 반전했다. 11월 하반기부터 하락세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아파트값이 상승 반전해 0.02% 올랐다. 서울에서는 강북 지역이 오름세를 주도했다. 전주(0.02%)보다 0.06%포인트 높은 0.08%나 뛰었다. 이는 최근 7주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아파트값 회복세는 수도권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평균 아파트값은 최근 몇 주간 오름폭이 줄어들면서 침체에 빠지나 싶었으나 12월3~9일은 전주(0.02%)보다 0.03%포인트 오른 0.05%가 올랐다. 전국 아파트값도 0.09% 상승해 전주(0.05%)보다 0.04%포인트 뛰었다.

주택 시장 비수기에 아파트값 상승세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2월3일 정부가 발표한 ‘4·1 및 8·28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의 영향이라는 것이 시장의 판단이다. 지금 상황에서 정책 변수 외에 집값이 뛸 다른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관악드림타운 임대아파트. ⓒ 시사저널 최준필
파괴력 큰 1%대 초저금리 ‘로또’ 대출

이번 후속 조치는 정부가 1%대의 ‘공유형 모기지’(집값 변동에 따른 손익을 정부와 나누는 장기 주택담보대출), 2~4%대의 ‘정책 모기지’(국민주택기금 대출, 보금자리론 통합 장기 주택담보대출)를 통해 저금리로 주택 마련 자금을 지원해주겠다는 게 핵심이다. 전세 수요를 매매로 돌려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택기금을 활용해 저리로 무주택 서민에게 주택 마련 자금 대출을 해주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12월은 ‘양도소득세 5년 면제’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취득세 면제’ 등의 세제 혜택이 끝나는 달이다. 전세난에 시달리던 무주택 서민이라면 올해 안에 저리에 집을 사고 취득세 및 양도세 혜택을 노려보면 어떨까 하는 유혹을 받을 만한 상황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내년에도 전세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무주택 서민이라면 이 기회에 내 집 마련에 나서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무엇보다 1%대 ‘로또’ 대출로 통하는 ‘공유형 모기지’의 파괴력이 가장 크다고 본다. 정부는 이번에 공유형 모기지를 지난 시범 사업 때의 3000가구보다 5배 많은 1만5000가구로 확대하기로 했다.

공유형 모기지는 지난 10월 시범 사업 때 5000명 선착순 접수 한도(심사를 통해 2000가구는 탈락)가 54분 만에 마감됐던 인기 대출 상품이다. 임대주택 가운데 가장 저렴한 공공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것보다 공유형 모기지 대출을 통해 주택을 사는 것이 오히려 자금 부담이 덜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주택 서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곽창석 ERA코리아 부동산연구소장은 “공유형 모기지 이자는 물가상승률보다 저렴해 20년간 유지할 경우 오히려 돈을 버는 셈이라서 일명 ‘로또’ 대출로 통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다. 시범 사업 때 인터넷 접수를 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우리은행 창구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대출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공유형 모기지 신청 접수 기관인 우리은행에 따르면, 지난 12월3일 정부가 4·1, 8·28 대책 후속 조치를 발표한 직후부터 대출 상담 건수가 콜센터로만 하루 500여 건, 영업점 방문 기준으로는 하루 3500건이나 된다. 공유형 모기지의 경우 실제 접수 첫날인 9일부터 12일까지 하루 평균 500여 건의 대출 신청이 이어져 2000건 수준에 달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예년대로라면 비수기인 12월에 주택담보대출이 갑자기 늘어날 리 없는데 올해 분위기는 다르다”고 전했다.

공유형 모기지 대출 대상인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하 무주택자 가운데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올해 안에 아파트를 사면 취득세 완전 면제 혜택이 주어진다.

공유형 모기지 신청을 서둘러 12월 말까지 대출을 받아 잔금 납부를 완료하면 취득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공유형 모기지 대출을 신청하면 6~8일 이내 대출 여부가 확정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연구위원은 “지난 10월 공유형 모기지 시범사업 때처럼 주택 수요자가 12월 안에 대출을 받으려고 대거 몰릴 가능성이 크다”며 “대출 대상 주택 지역의 중소형 아파트값이 일시적으로 ‘들썩들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토교통부 도태호 주택토지실장이 12월3일 4·1, 8·28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상승 분위기, 내년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

최근 국회에서 그동안 미뤄왔던 각종 주택 규제 완화 법안 처리가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호재다. 여당과 야당은 주택 ‘취득세율 영구 인하’ 계획을 정부 대책 발표일인 8월28일부터 소급 적용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안을 12월10일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시켰다.

시장에선 취득세 인하 적용 시점이 확정되지 않아 주춤하던 주택 거래에 숨통이 트였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곽창석 소장은 “지난 몇 개월간 취득세 적용 여부가 불확실해 거래를 미루던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연말에 각종 세제 혜택과 저금리 대출 상품 출시가 이어져 주택 시장에서도 12월 특수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회는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층수를 3층 이상 높이고, 일반 분양을 15% 늘릴 수 있는 ‘수직 증축 리모델링’ 관련법도 통과시켰다. 수직 증축과 일반 분양을 하게 되면 사업성이 좋아져 사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도권 1기 신도시와 강남 지역 아파트 주민의 기대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 분당 등 리모델링 대상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에는 벌써부터 시세를 묻는 전화가 늘어나고 집주인의 호가(부르는 값)도 들썩이고 있다.

분당구 정자동 느티마을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하루에 한두 통도 오지 않던 시세 문의 전화가 수직 증축 리모델링 관련법 통과 소식이 전해진 후 10여 통으로 늘어났다”며 “벌써 호가를 조금 올리자는 집주인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대부분 12월에 갑자기 활기를 띠고 있는 주택 시장의 상승 분위기가 내년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힘들다고 본다. 1000조원 이상인 가계 부채 문제나 국내외 경기 상황 등이 여전히 좋지 않기 때문이다. 취득세 영구 인하 효과도 당장 크게 나타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취득세가 영구 인하돼서 더 이상 취득세 한시 감면 시기에 맞춰 주택 구입 시기를 조정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갑자기 거래량이 늘어나거나 거래가 소강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택 거래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당장 시장이 반응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연말 주택 시장에 각종 혜택이 집중돼 잠재적 실수요자가 움직일 수 있는 큰 시장이 열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국내외 경기 여건과 주택 수급 동향 등을 고려할 때 내년까지 주택 시장 활기가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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