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담이 별일 없이 안방에 쑥 들어왔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12.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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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마녀사냥> 인기 비결… 남녀 연애 심리와 성 직설적으로 다뤄

어떤 이성이 나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신호를 보낸다. 과연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걸까. 이런 상황을 요즘 젊은이들은 ‘그린라이트’라고 표현한다. ‘그린라이트가 켜졌다’는 건 상대가 나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을 느끼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JTBC 토크쇼 <마녀사냥> 때문에 퍼진 유행어다.

이 프로그램은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출발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지상파의 토크쇼들이 초약세에 머무르고, 종편에선 중년을 겨냥한 집단 토크쇼가 맹위를 떨칠 때 이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애초 위에선 안전한 집단 토크쇼를 주문했지만 제작진이 <마녀사냥>을 선택했다고 한다.

경쟁자가 워낙 막강했다. 바로 오디션 바람을 선도하며 케이블TV의 역사를 새로 쓴 <슈퍼스타K>가 동시간대에 버티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앞날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메인 MC인 신동엽은 마지막에 “별일 없으면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언제 폐지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지경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출연진들이 입담을 과시하며 방송하고 있다. 왼쪽부터 허지웅·신동엽·성시경·샘 해밍턴. ⓒ JTBC 제공
하지만 <마녀사냥>은 시청자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시청률이 3%에 육박하며 <슈퍼스타K>를 제쳤는데, 실제 인기나 화제성은 시청률 수치보다 훨씬 세다. 지난 11월에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16위에 올랐을 정도다. <마녀사냥>은 종편 예능 프로그램치고는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의 새로운 경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서도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마녀사냥>은 신동엽·성시경·허지웅·샘 해밍턴 등 고정 출연진과 초대 손님이 남녀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수위가 심상치 않다. 그전부터 TV 방송에서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강호동 등이 진행했던 <야심만만>을 들 수 있겠다. 이런 프로그램에선 언제나 남녀의 애정 심리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눴다. 성적인 부분은 방송에서 완전히 배제됐던 것이다.

<마녀사냥>은 바로 그 ‘성’을 이야기한다. 실제 남녀 관계의 중요한 한 부분이지만 방송에선 모른 척했던 바로 그것(?) 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라도 TV 카메라 앞에선 절대 금기로 함구해야 했던 그것을 말한다.

방송인 모두를 영원히 아동기에 고착되도록 만든 가장 강력한 금기, 바로 섹스다. 이 프로그램은 그 금기를 깼다. 출연자와 시청자가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던 바로 그것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녀의 연애 심리와 성 이야기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사랑과 섹스’ 토크쇼라고 할 만하다. 바로 여기에 시청자가 반응했다. 처음엔 과도한 수위 때문에 연예인들이 출연을 꺼렸지만 인기가 치솟자 서로 출연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까지 됐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개방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TV에서 절대로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욕망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아동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된다. 과거엔 시청자가 성을 말하는 사람을 추하고 더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성 담론을 ‘섹드립’이라며 솔직한 자기표현 정도로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발라드를 부르는 성시경도 TV에서 성을 이야기하며 ‘욕정 발라더’로 인기를 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마녀사냥>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시청자의 참여다. 주 시청층인 젊은 층의 참여가 두드러지는데, 이 젊은 시청자들은 출연자나 제작진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개방성을 보여준다. 스튜디오와 시민들과의 화면 연결을 통해, 이성 친구와의 성적인 고민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밝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이 그렇게 스스럼없이 공개적으로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과거엔 찾아보기 어려웠다. 개방성이 커진 시대라는 점을 바로 <마녀사냥>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허심탄회하고 유머러스하게 연애담 전개

2000년대 들어 TV는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리얼리티’의 시대다. 토크쇼는 막말, 직설 화법, 폭로로 흘렀다. 젊은이들은 몸과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로 나선 노출족들이 바로 그런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솔직한 방송과 당당한 욕망이라는 두 가지 흐름이 만나는 건 필연이다.

그것이 케이블TV에서 현실화된 건 지상파보다는 케이블TV가 개인성이 강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예능은 아직까지는 ‘온 가족이 다 함께 본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케이블TV는 ‘세분화된 집단이 저마다의 취향대로 골라서 본다’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성적인 이야기처럼 민감한 소재는 케이블TV에 더 어울렸다.

최근 대중문화계에선 자극성이 급속히 강해지고 있다. 얼마 전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가학성 진화가 결국 출연자 부상으로까지 이어졌다. 토크 부문의 자극성도 강해져 결국 서로 씹어대는 막말 토크쇼 <라디오스타>, ‘섹드립’ 토크쇼 <마녀사냥>이 각각 지상파와 케이블TV를 이끌었다.

물론 <마녀사냥>이 단지 성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무조건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적나라하게 섹스담을 펼쳤다면 남녀 시청자가 모두 등을 돌렸을 것이다. 남성은 어차피 방송 토크 수준에 자극을 못 받을 뿐더러 연애담 따위에 큰 관심이 없고, 여성은 그런 적나라한 내용을 애초부터 싫어하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은 마치 심야 라디오 방송처럼 아기자기한 토크쇼로, 어른들의 연애담을 매력적인 남성들이 오밀조밀 허심탄회하고 유머러스하게 나누는 포맷을 취했다. 바로 이것이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이런 내용은 그전부터 여성 잡지에 빠지지 않던 필수 아이템이다. 성을 부드럽게 가미한 연애담에 반응하는 여심을 TV가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마녀사냥>은 ‘딸과 엄마가 함께 보는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정확히 이야기하면 어머니 쪽은 좀 더 질펀한 집단 토크쇼를 선호하고, 딸은 성과 로맨스 판타지를 버무린 <마녀사냥>을 선호한다고 하겠다.

요즘엔 젊은이들이 연애를 배우려는 시기이기도 하다. 초식남·초식녀들이 실제적인 연애를 못하기 때문에 연애 강사를 따라다니며 연애를 글로 배우려 한다. 연애에 목마르고 이성 관계가 궁금한 시대에 <마녀사냥>은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가 후배들에게 조언해주는 느낌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남녀 관계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되고 개방성과 솔직함, 자극성의 흐름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19금 토크쇼’의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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