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올해의 인물] 촌놈들이 신촌 몰려와 국민 열광시키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12.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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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청춘들의 좌충우돌 상경기’ tvN 드라마 대폭발

문화 분야 올해의 인물에는 화제를 모은 드라마가 선정됐다. 그것도 지상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 방송에서 만든 드라마여서 의외다. 지난해 여름 온 국민을 ‘응칠앓이’에 빠뜨리며 신드롬을 일으킨 tvN 화제작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에 이은 ‘응답하라’ 시리즈 2탄,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은 막장 드라마만 양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재벌이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신데렐라 스토리도 빈번하고 악역이 얼마나 극악무도해질 수 있는지 실험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 드라마는 작가 퇴출 서명운동까지 불러일으켰다.

이에 반해 <응사>는 별로 주목받지 못할 것 같은 추억의 에피소드나 따뜻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시청률이 지상파를 압도하며 다양한 채널의 존재 이유를 새삼 돌아보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 ⓒ tvN 제공
<응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응답하라’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트렌드가 되고 있다. 또 극 중 배우들의 1990년대 패션이 유통가를 들썩이게 할 정도다.

케이블이 지상파 코 납작하게 해

<응사>는 1994년 서울 신촌의 한 하숙집에 전국에서 올라온 지방 출신 대학생들이 모이면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서울 상경기다. 20년 가까이 지방에서 살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대한 환상을 품고 상경한 하숙생들. 이들이 좌충우돌하면서 펼쳐놓는 에피소드들은 웃음을 안기면서도, 부모와 떨어져 타지에서 겪는 외로움과 하숙생 친구들과의 우정 등과 버무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94학번 새내기들의 풋풋했던 캠퍼스 생활을 재현하고 농구대잔치, 서태지와 아이들 등 당시 신드롬을 일으킨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추억을 자극해왔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응칠>이 부산 사투리로 대사의 구수한 맛과 향수를 극대화했는데,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응사>에선 다양한 지방 출신의 캐릭터가 등장해 사투리 열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경남 마산 출신으로 농구 스타 이상민에게 열광하는 ‘성나정’ 역을 맡은 고아라, 성나정과 허구한 날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경상도 남자 ‘쓰레기’ 역의 정우, 7명의 주인공 중 유일하게 서울 출신이자 여심을 사로잡는 야구선수인 ‘칠봉이’ 역의 유연석, 경남 사천에서 올라온 감성 가득한 ‘삼천포’ 역의 김성균, 전남 순천에서 최초로 오렌지족 소리를 들었을 만큼 유행에 민감한 ‘해태’ 역의 손호준, 충북 괴산 출신의 빙그레 미소가 잘 어울리는 바른 생활 사나이 ‘빙그레’ 역의 바로, 전남 여수 출신이자 평소엔 조용하지만 한 방이 있는 서태지 추종자 ‘조윤진’ 역의 민도희 등 개성 넘치는 7인7색 팔도 청춘들의 열연이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아라는 진주, 정우는 부산, 손호준은 광주, 김성균은 대구, 민도희는 여수가 출생지여서 시원시원한 사투리 연기가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응사>에 앞서 2012년 7월24일~9월18일 방송된 <응칠>은 9주 연속 케이블TV 동시간대 1위, 드라마 OST 음원 차트 석권, 동명 소설 초판 매진 등 여러 분야에서 진기록을 세웠다.

10%를 넘나드는 <응사>의 시청률도 논란거리다. 케이블협회는 지난 11월30일 밀워드브라운에 조사를 의뢰해 전국 15~59세 남녀 484명을 대상으로 tvN <응답하라 1994>의 시청 여부를 묻는 전화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현행 시청 점유율 22%(닐슨코리아)보다 11%가 높은 33%가 <응답하라 1994>를 시청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 tvN 제공
<응칠>은 16화로 끝났는데, <응사>는 좀 길게 가는 것 같다.

원래는 20화로 기획했는데 한 회 분량을 두 개로 쪼갠 것이 생겨 21회로 끝낼 예정이다.

시즌 3에 대한 기대도 나온다.

지난해에도 그런 말이 나왔다. <응칠>에 대한 호응이 없었다면 <응사>를 기획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걸 마무리하는 게 바빠 다음 건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할 얘기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하는 거지, 지금 인기가 높다고 다음을 생각하고 그러진 않는다. 할 얘기가 없는데 억지로 할 수는 없는 거고.

<응칠>과 <응사>를 만들 때 분위기가 달랐을 텐데.

<응칠>이 아기자기한 면이 많았다면 <응사>에서는 전체적으로 이야기나 촬영 사이즈가 커졌다. <응칠>은 부담감 없이 하다 보니까 편하게 즐기면서 했다. 그런데 <응사>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는데 더 큰 사랑을 받으니까 부담이 더 커졌다.

다양한 시청자층을 확보하면서 국민 드라마라는 얘기도 듣고 있다.

많은 국민이 접근할 수 있는 방송이 아니라서 그런 칭호는 과분하다. 어쨌든 작가나 나나 따뜻한 코드를 좋아하는 것이 잘 맞아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일 뿐이다.

드라마가 성공한 배경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전의 역량이 새로운 토양을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프라가 부족한 신생 방송국이라는 열악한 채널 환경이지만 KBS라는 제약이 없는 자유스러움이나 유연함 같은 것이 또 장점이다.

이우정 작가가 94학번인데 두 사람이 94학번인 것은 우연인가.

일부러 같은 학번을 찾을 이유가 없었는데, KBS에서 알게 돼 2005년 <남자의 자격>도 같이 하면서 몇 작품 잘해와서 <응칠>에 이어 <응사>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공감을 일으키는 재주는 타고난 것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따뜻한 게 끌리더라. 마음 불편한 건 싫고. 주입식으로 웃기고 슬프고 그러는 것이나,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공감해야만 파괴력이 생기는 시대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걸 찾으려고,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사람을 가운데 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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