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김황식·경기-정몽준 카드 만지작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12.3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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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 다급해진 여권, ‘수도권 프로젝트’ 가동

2013년 12월 어느 날, 비공개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게 쏟아졌다. 그 가운데 한 최고위원의 ‘뜬금없는’ 제안이 회의석상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정몽준 의원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차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한 관계자는 “언뜻 납득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MB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김 전 총리를 친박계가 주류인 현재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우는 것도 그렇지만, 서울 지역구의 7선 의원이자 차기 대권 후보군으로 끊임없이 거론되는 정 의원을 서울시장도 아닌 경기도지사로 차출해야 한다는 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해프닝성일 수도 있지만 오는 6월 치러질 지방선거를 앞둔 여권이 지금 얼마나 다급한 상황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여권 입장에서 지방선거 성패는 수도권의 승리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그런데 수도권에서 여권은 후보 기근 현상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당선 가능성이 큰 거물 정치인들을 교통정리하지 못하면 수도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왼쪽 사진)와 정몽준 의원. 새누리당에서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의 수도권 차출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자영업자 등 전통 지지층 붕괴 이어질 수도”

2013년 12월23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2014년은 박근혜정부가 출범 2년 차를 맞는 해다.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이 첫 시험대에 오르는 해이기도 하다. 6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갖는 의미는 크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등 야권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불통’으로 치닫는 박근혜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가 현 정부의 명운이 걸린 선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완패할 경우, 정국 운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려는 박근혜정부의 집권 2년 차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당의 지방선거 패배는 조기 전당대회 등 새누리당 내부의 분열을 낳고, 박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 분수령이 바로 서울·경기 등 수도권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40%대로 떨어졌다. 여당으로서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박 대통령의 전통 지지층이 붕괴되는 징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선거 전략에 밝은 새누리당 친박계의 한 인사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50%대 국정 지지도가 무너진 것보다 여권에게 더욱 불안한 상황은 실물 경제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박정희 시대 향수를 자극하면서 박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자영업자 등 전통 지지층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야권 분열을 통한 3자 구도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기획하고 인사 영입을 주도하는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연일 안철수 신당을 겨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는 2013년 12월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의원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실행위원 10명 중 3명이 전·현직 민주당 출신이라는 한 언론 보도를 보니 초록은 동색이 아닐까 우려된다. (안철수 신당이) 결국 민주당의 대체 세력임을 자임하고자 하는 것이다. 새 정치가 ‘도로 민주당’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것이 과연 안철수식 새 정치인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3자 구도가 곧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승리를 보장해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야권이 분열한다고 해도 수도권 지방선거가 여당의 의도대로 결론 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야권 연대가 무산돼 3자 구도로 수도권 선거가 치러지더라도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모두 선거 패배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 막판에는 후보 사퇴 등 구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권으로서는 수도권에서 대중적인 인지도와 함께 중량감 있는 거물급 인사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전략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끊임없이 거물급 정치인의 차출설이 부각되는 이유다.

서울시장의 경우 ‘김황식 전 총리 추대론’이 최근 들어 급부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당내에서는 이혜훈 최고위원이 유일하게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고 정우택 최고위원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때 이름이 거론됐던 조윤선 여성가족부장관과 원희룡·나경원 전 의원 등은 서울시장 출마의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준 의원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꾸준히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았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이미 ‘선당후김(先黨後金)’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당에서 먼저 후보를 물색해보되 마땅한 인물이 없으면 김 전 총리를 추대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김 전 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한 듯한 분위기다. 민주당의 박원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후보로 김 전 총리가 최적의 카드라는 것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김문수 지사 3선 도전 가능성 재점화

이런 움직임에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전 총리 추대론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측에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당협위원장은 “당내 일각에서 김 전 총리를 추대 형식으로 내세워서 서울시장 후보로 옹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김 전 총리 또한 추대 형식이라면 몰라도 경선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는 더더욱 문제다. 현직 시장도 경선을 거쳐야 하는 판인데, 정치 경험이 전무한 일개 후보자가 추대가 아니면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혜훈 최고위원이 이미 경선 출마를 선언한 마당이어서 혹시 당내 경선에서 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부담감이 있는 모양”이라며 “그런 정도의 의지라면 설사 본선에 나가더라도 박 시장에게 백전백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지사는 그동안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병국 의원과 원유철 의원 등이 적극적인 출마 의사를 비쳐왔고, 친박계 핵심인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도 자천 타천 거론돼왔다. 하지만 정 의원과 원 의원은 당내 여론조사에서 좀처럼 수세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장관에 대해선 대통령 최측근으로 대통령을 보필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방선거 차출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물난에 허덕이다 보니 서울시장 후보 교통정리 차원에서 ‘김황식 서울, 정몽준 경기’ 구상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거의 꺼진 것처럼 보였던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의 3선 출마 가능성이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이를 타진하는 당내 움직임도 실제 감지된다. 수도권 승리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김 지사가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 지사 측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3선 출마를 요구하는 것은 김 지사에게 더 이상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출마 가능성을 일축했다. “(김 지사의 3선 출마를 부추기는 여권 지도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수도권 차출설이 거론되는 거물급 인사들이 모두 ‘비박(非朴)’ 일색이다 보니 친박 진영의 불만 기류도 감지된다. 현재 차출론이 거론되는 세 명의 인사 중 김 전 총리와 정 의원은 출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게 당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김 전 총리와 정 의원 측 모두 당내 일부 보좌관들을 대상으로 영입 제안을 하는 등 이미 선거 캠프를 꾸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지방선거 출마에 뜻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막상 선거 분위기가 가열되면 참여할 것이다. 정 의원은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고, 김 전 총리 역시 마냥 추대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이 단순히 ‘간을 보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흥행을 위해 김 전 총리와 정 의원이 경선에서 맞붙어주기를 원하지만, 이는 두 사람에게 서로 부담일 수밖에 없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김 지사 쪽은 여전히 “출마 불가” 기조가 강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서울-경기 안배’ 의견이 결코 황당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그럴 경우 또 하나의 ‘변수’는 이혜훈 최고위원이 될 전망이다. 2013년 ‘5·15 전당대회’에서 황우여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만만찮은 당내 세력을 바탕으로 경선을 주장하고 있어 김 전 총리나 정 의원 모두 내심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래저래 여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김기춘·김용환·서청원도 뛰어?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의 운명을 가늠할 2014년 6·4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른바 친박계 ‘막후 정치인’들의 움직임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 격인 7인회 멤버들과 최근 원내로 진입한 서청원 의원 등이 지방선거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의 ‘충북도지사 출마설’이 회자되고 있다. 나 전 의원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새누리당이 나 전 의원을 충북도지사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는 설이 갑작스럽게 나오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의 충북도지사 출마설을 7인회 멤버 좌장 격인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과 연결 짓기도 한다. 충청 지역 맹주인 김 고문이 충북 영동이 고향인 나 전 의원의 부친과 교분이 있던 사이로 알려진 데다, 나 전 의원과 김 고문도 그동안 충청향우회나 지역의 정치 관련 행사에 자주 동반 참석해 이러한 배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13년 10월 경기 화성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원내 재진입에 성공한 서청원 의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움직임이 주목받는 막후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경기도 내 기초단체장 선거 출마 희망자들이 서 의원의 원내 진입 이후 서 의원 측과 교분을 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새누리당 내부에 돌고 있다. 특히 일부 기초단체장 선거에는 서 의원의 측근 인사들이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양상을 보여 서 의원 측이 교통정리를 하는 데 진땀을 빼고 있다는 이야기도 당내에서 나온다.

7인회 멤버이자 정권 2인자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방선거 막후 역할설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새누리당의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김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와 교감을 나누는 상황이라, 김 비서실장의 입김이 당내 선거 전략과 후보 영입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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