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산 ‘우리’의 공감을 담았다
  • 허남웅│영화평론가 ()
  • 승인 2013.12.3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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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으로 데뷔한 양우석 감독

2013년 12월18일 개봉한 <변호인>의 흥행 기세가 놀랍다. 12월24일 하루에만 45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크리스마스이브 흥행 신기록을 갖고 있던 <마이웨이>(2011년, 33만명)를 제쳤다. 그 기세를 몰아 개봉 이후 12월25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300만명이 넘는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이는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이상 2012년)보다 빠른 흥행 속도다.

많은 사람이 <변호인>의 흥행을 두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980년대 변호사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극장을 잘 찾지 않는 50대 이상 중·장년층까지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 요컨대, 방점은 ‘노무현’이다. 다만 노무현이 지향한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어 ‘<변호인> 티켓 테러’와 같은 괴소문이 심심찮게 나돌기도 한다.

ⓒ NEW 제공
논란의 중심에 서다

확실히 <변호인>은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다. <변호인>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그 때문에 많은 매체에서 인터뷰를 원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홍보사에 따르면, 양우석 감독은 일체의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하 수상한 시국에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던 영화이니만큼 아무래도 감독의 말 한마디가 어떤 파장을 미칠지 몰라 염려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해볼 따름이다.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으로 데뷔한 신인 감독이다. 그는 원래 웹툰 작가였다. <변호인>의 흥행으로 양우석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그가 웹툰 작가 시절이던 2011년에 연재했던 <스틸레인>이 덩달아 화제를 모으고 있을 정도다. <스틸레인>은 김정일의 사망을 예견했던 웹툰으로 더 유명하다. 2013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하자 북한 내 정치 세력 간에 파워게임이 발생하고 그 때문에 남한과 전쟁 직전까지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틸레인>은 남북 간의 파국을 막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로 이야기하는 작품인데, 이에 대해 양우석 당시 웹툰 작가가 밝힌 의도가 의미심장하다. 젊은 세대가 북한과 통일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메시지의 성격은 <변호인>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양우석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같이 고민하며 지금의 10·20대에게는 공감을, 그 세월을 경험한 분들에게는 회상하고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변호인>은 잘 알려진 대로 1981년 부산에서 벌어졌던 ‘부산 학림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줄여서 ‘부림 사건’으로 부르는데 당시 전두환 정권이 부산 지역 지식인과 학생들이 주도한 독서 모임을 국가 전복을 꾀한 반국가 단체라며 압제한 사건이다. 벌써 32년 전의 사건이지만 왠지 낯설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불온서적(이라고 정부가 임의로 지정한 책)을 읽었다고 빨갱이로 몰리고 그런 이들을 변호했다고 종북주의자로 매도되는 극 중 묘사가 2013년 한국의 현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방점은 바로 ‘우리’

결국 <변호인>은 노무현의 과거를 추억하는 영화는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철도노조가 파업을 했다고 그 주동자를 잡겠다며 수천 명의 경찰력을 동원하고 정부의 이념과 정책에 반하면 무조건적으로 종북 좌파라는 가시면류관을 씌우는 이 정권의 비상식과 야만성을 부림 사건을 가져와 에둘러 고발하기 위해서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양우석 감독은 “영화가 갖고 있는 이야기 구조와 팩트는 실제 부림 사건과 다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실 이 영화의 방점은 노무현도, 부림 사건도 아닌 바로 ‘우리’에 있다.

극 중 송우석 변호사의 이름이 배우 송강호의 ‘송’과 양우석 감독의 ‘우석’을 합친 이름인 것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를 대표하기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좀 더 큰 틀에서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려는 양우석 감독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변호인>은 치열하고 뜨겁게 살았던 우리들의 과거가 녹아 있는 작품이다. 지금,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계신 관객분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감독의 말처럼 <변호인>은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넘는 관객의 ‘공감’을 사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에 대해 공감을 보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극 중 송우석이 노무현을 연상시키고, 부림 사건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장의 대자보로 촉발된 열풍에 휩싸여 있다. 대학생들은 기록적으로 치솟은 고액 등록금에, 취업 준비생은 스펙을 쌓아도 얻을 수 없는 직장에, 부모님들은 은퇴할 나이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고통스러움 속에서 ‘안녕들 하십니까?’가 어떤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상식. <변호인>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생각했던 변호사가 비상식적인 사건을 접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힘을 쓰는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가 1980년대를 끌고 오지만 많은 이의 공감을 산 건 우리가 여전히 상식을 수호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하 수상한 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추억을 향수하는 종류와는 거리가 멀다. 양우석 감독은 과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아 <변호인>을 만들었지만 거기에서 현재를 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해답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어떤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다. <변호인> 자체가 양우석 감독의 입장이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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