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러시아 소나무' 의혹 수사, 신응수 대목장 겨냥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1.0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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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금강송 빼돌린 의혹 관련해 ‘우림목재’ 압수수색

시사저널이 2013년 12월13일 ‘숭례문 기둥에 러시아 소나무 썼다’는 기사를 통해 국보 1호인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일부 기둥과 대들보 등에 우리나라 금강송이 아닌 수입산 러시아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을 제기한 이후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인 경찰이 숭례문 복원공사를 총감독한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제재소에 대한 압수 수색에 들어가면서 목재업체 쪽으로 수사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월3일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우림목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숭례문 복구공사에 사용된 목재의 상당량이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제재소에서 공급된 데 따른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실제로 숭례문 복구 공사에 사용된 목재는 일부 기증한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전부 우림목재에서 공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태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숭례문 복원공사 목재 수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숭례문 복원공사에는 10명의 기부자가 제공한 목재(입목 21주와 원목 338개)와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제재소인 우림목재에서 공급된 목재가 쓰였다. 이 자료에는 ‘(숭례문) 복원공사에 사용된 목재는 우림목재에서 공급됐다’고 나와 있다. 여기에는 2009년 12월 우림목재가 약 10만재(1재는 가로 3cm×세로 3cm×길이 3.6m)에 가까운 국내산 육송을 2억3470만원에 납품하기로 계약했다고 돼 있다.

숭례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를 맡은 신응수 대목장.© 연합뉴스

경찰은 현재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목재상의 숭례문 복원공사에 대한 반입 내역과 숭례문 공사 이외에 다른 공사를 수주한 내역을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우림 목재에 대한 압수수색 자료까지 더해지면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우림목재가 숭례문 복원공사에 써야할 금강송을 빼돌려 다른 공사에 사용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포착된다면 신 대목장은 금강송뿐만 아니라 엄청난 금액의 공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사게 된다.

숭례문 복원공사가 시작된 이후 목재 구입에 들어간 비용은 2009년 계약 단계에서는 2억3000만원대였다. 최근 숭례문 복원공사 시공사인 명헌건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총 7억57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찰은 목재 구입에 들어간 비용을 13억원 대로 보고 있다. 여기에 가짜 소나무가 쓰였을 경우에 생기는 차익을 고려한다면 ‘소나무 바꿔치기’로 횡령한 액수는 수억원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이와 관련해 명헌건설 관계자는 "13억원은 2010년 2월 계약 당시 목재비와 인건비를 합친 것으로 목재값에만 든 비용은 총 7억5700만원이 맞다”라고 밝혔다.

“신응수, 명예 팔아 나무 장사 하고 있다”

“한 대목장이 문화재 복원 및 보수공사의 총 감독을 맡게 되면 그가 운영하는 목공소에서목재를 수급하는 수의계약을 맺는다. 그 때문에 좋은 나무를 가지고 있는 목재상들은 경쟁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한옥재를 취급하는 한 목재상이 전하는 국내 문화재 목재 수급 실태다. 이 목재상은 “신응수 대목장이 자신의 명예를 이용해 ‘나무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업계 내에 공공연히 퍼진 사실”이라며 “연간 문화재 복원 및 보수 작업에 들어가는 목재량이 80만재가량인데 신 대목장의 영업장에서 납품하는 수량이 평균 60만재에 달한다고 보면 된다. 신 대목장이 맡은 공사의 목재 수급은 신 대목장 제재소와 수의계약 형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전체 거래 내역을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신응수 대목장은 숭례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목조 건축의 총감독)로서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했으며 숭례문 공사에 들어가는 목재 선정 또한 그가 도맡았다. 그 외에도 경주 불국사, 수원 화성, 창덕궁, 경복궁, 광화문까지 국내 대표적 문화재와 전통 건축물 복원 작업에 빠지지 않고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문화재 관련 업계 종사자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신 대목장은 감독을 맡은 복원공사에 들어간 목재 대부분을 자신이 운영하는 제재소와 수의계약을 맺어 수급했다. 실제로 숭례문과 광화문 공사뿐만 아니라 현재 신 대목장이 참여하고 있는 울산 태화루 건립 공사 모두 우림목재에서 다듬어진 나무를 가져다 썼다.

시사저널은 우림목재의 국내 문화재 공사 관련 수주 물량을 파악하기 위해 김태년 의원실을 통해 문화재청에 ‘문화재 복원 및 개보수 공사의 목재 구입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 그런데 김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는 2009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최근 5년간 문화재청 직영 사업단에서 발주한 공사의 목재 구입 현황’만 나와 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실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직접 발주하는 공사는 직영 사업단이 관할하는 궁궐 개·보수 작업과 관련된 것밖에 없고 나머지는 국고보조사업으로 지정돼 해당 지자체 등에 국고보조금을 보내서 진행한다”며 “전체 문화재 개·보수 공사에 들어간 목재 내역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목재 구입 현황 자료’는 문화재청 직영 사업단이 발주한 공사 가운데 공개경쟁 입찰로 공고한 것만을 취합한 것인데, 2009년부터 집계된 것은 9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우림목재는 문화재청과 2건의 계약을 맺었다. 문화재청의 공개경쟁 입찰 공고가 난 뒤 개찰 결과를 살펴보면, 우림목재와 유독 자주 경합을 벌이는 업체가 눈에 띈다. 바로 신응수 대목장의 아들이 운영하는 ‘세동목재’다. 이와 관련해 기자는 “신 대목장이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 명의로 제재소를 만들어놓고 끼리끼리 입찰 경쟁을 벌이며 수주를 따내 관련 업체의 피해가 크다”는 제보를 접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해 12월18일 우림목재가 위치한 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 위치한 제재소 단지를 직접 찾아가 봤다.

우림목재와 세동목재는 한 사무실을 쓰고 있었고 나무 창고만 따로 둔 상태였다. 우림목재와 세동목재의 공동 사무실 안 게시판에는 현재 신 대목장이 참여하고 있는 태화루 공사에 대한 목재 수급 현황 등이 표기돼 있었다. 아버지인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우림목재와 아들의 세동목재는 사실상 한 업체였던 것이다.

주변 제재소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림목재와 세동목재는 모두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제재소다. 우림목재는 신 대목장이 1991년에 세웠다. 세동목재는 몇 년 뒤 우림목재 바로 옆에 설립했다. 한 제재소 관계자는 “이곳에 제재소라고 해봤자 6개밖에 없다. 그런데 가장 규모가 큰 두 업체를 신 대목장이 운영하고 있다”며 “신 대목장의 아들은 세동목재의 대표로 명의만 올려놓고 실제로는 자신을 전무라고 말하고 다니며 일을 한다.

두 업체의 사업 수주 등 주요 실무를 신응수 대목장이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문화재청 관련 공사라고 하면 (업체들이) 우선 거리를 둔다. 문화재 쪽에 신 대목장 파워가 막강하다 보니 영세한 사업장은 경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문화재 공사에 들어가는 목재 수급은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이뤄지고 있다. 매년 40만~80만재 정도 물량이 나오면 그중에 (문화재청이) 입찰을 띄운 것은 1만재 정도밖에 안 된다”며 “그런데 그 입찰에도 (신 대목장이) 우림과 세동을 내세워 경쟁에 뛰어든다. 수의계약부터 경쟁 입찰까지 (신대목장이) 완승하는 구도라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한 제재소가 육송 수십만 재 조달은 ‘어불성설’

그렇다면 국내 주요 문화재 개·보수에 필요한 국산 소나무를 한 업체에서 원활하게 조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전문가들은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한 목재 전문가는 “각재·판재 등 다양한 용도의 육송을 10만재 납품하려면 적어도 목재를 가공하기 전 동그란 상태의 원목 20만재를 다듬어야 한다. 25톤 트럭에 원목을 잔뜩 실으면 8000재가 되는데, 이는 25톤 차 25대를 채울 원목이 있어야 10만재의 상품을 납품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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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실적으로 강원도 강릉 지역의 한제재소에서 수십만 재나 되는 엄청난 양의 육송을 어떻게 구할 것이며, 구한다고 해도 그 나무를 한 곳에서 다 말릴 수도 없다”고 밝혔다.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제재소와 관련된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월2일 기자는 직접 신 대목장에게 전화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신 대목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어떤 질문에도 응하지 않겠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숭례문 기둥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는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영업장으로 좁혀지고 있다. 현재 경찰은 문화재청에 의뢰해 숭례문 복구에 사용된 부재와 강원도 삼척 준경묘의 금강송 샘플을 채취해 동일 수종 여부에 대한 유전자와 나이테 분석에 들어간 상태다. 결과는 이르면 1월 중순쯤 나올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의 거래 내역을 가지고 횡령 혐의 등을 파악하는 작업은 (유전자와 나이테 분석)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숭례문 기둥에 쓰인 소나무가 수입목인 것으로 확인된다면 경찰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국산 금강송의 유통 경로가 경찰 수사로 밝혀지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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